대구시 북구 복현동(伏賢洞)의 지명유래는 특이하다. 927년 후백제 견훤은 신라에 침입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신라의 왕으로 삼게 된다. 이 때 거사를 성공하고 돌아가는 길에 고려 태조 왕건이 군사를 이곳에 매복시켰다. 견훤은 금호강을 사이에 두고 추격하는 군대와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이후 ‘견훤덤’, ‘복현듬’, ‘복현암’, ‘복현리’, ‘복흥동’ 등으로 불리어 현재의 복현동으로 불린다.
이러한 복현동에 위치한 지금의 경북대학교 정문과 북문 사이에 작살(作殺)고개가 존재했다. 옛 지명인 작살고개는 경북대학교 정문 언덕 고갯길이라고 전하기도 했고, 1739년경에는 마을 사람들이 작미(作米)고개라고도 불렀다. 한편 경북대학교 체육관과 이전 경상북도 도청 사이의 언덕 고갯길이라고도 하여 작살고개에 대한 두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작살고개에 대한 전설은 옛 배채못(배지못) 부근에 살던 한 장수가 야심을 품고 병기를 준비하여 대구 관아를 치기 위해 진격했다는 말에서 시작한다. 반란군이 이 고개 마루에 도달했을 때 관군이 이미 진을 치고 있어 한바탕 격전이 벌어졌다. 그 결과 반란군이 처참하게 전멸 당한 후로 이곳을 작살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짐승과 도둑이 자주 출몰해 혼자 넘다가는 작살난다고 해서 작살고개라고 불렸다는 설도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위과정에서는 경북대학교 학생들이 북문 언덕으로 진출하다 전경의 최루탄과 지랄탄으로 곤욕을 겪은 곳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경북대학교 정문 경비실과 그 앞에 즐비한 상가에 들러 작살고개에 대한 옛 지명을 들어본 적이 있냐는 질문을 했지만 모두 들어본 적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잊혀진 옛 지명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대구지역 발전의 발판이 되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