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옛 지명을 찾아서] 오포산
[사라진 옛 지명을 찾아서] 오포산
  • 우남희 기자
  • 승인 2022.02.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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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가 없던 시절, 포를 쏘아 시간을 안다
대구에도 오포산이 있다

벌건 대낮에 계산성당에서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굳이 시간을 보지 않아도 오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 때, 밤에는 경루가 있으나 낮에는 시간을 알기 어려워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만들었다.

일반 서민들은 어떻게 시간을 알았을까? 일제강점기 때는 포를 쏘아 정오를 알렸다. 목포, 여수, 인천 등 전국에서 오포를 쏘았고, 대구에서도 진산인 오포산에서 포를 쏘아 정오를 알렸다. 봉산의 동쪽인 제일중학교 뒤편 일대가 그 오포산이다.

봉산은 봉우리가 동그란 산이었으나 6.25 전쟁 때 미군통신대가 주둔하면서 봉우리를 밀어 현재와 같은 언덕모양이 되었다. 이 산은 정월대보름이면 산 위에서 달맞이를 했다고 해서 월견산(月見山), 정상에 자라(거북)바위가 있다고 자라바위산, 돌 거북이(자라)가 머리를 남쪽, 꼬리를 북쪽으로 묻어 비슬산의 지맥을 연결시킨다고 연구산(連龜山), 정오에 포를 쏘아 시간을 알렸다고 해 오포산이라고 불렀다.

오포산은 현재 제일중학교가 들어선 그 일대로 연구산이라고도 한다    우남희기자
오포산은 현재 제일중학교가 들어선 그 일대로 연구산이라고도 한다 우남희기자

오포산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조선 말 순종 때부터다. 대구부민들에게 시간을 알리기 위해 들판 가운데 우뚝 솟은 이 산에서 정오를 알리는 포(午砲)를 발사하였기 때문이다. 흔히 배꼽시계로 시간을 알 수 있다고는 하나 일정치 않아 때를 놓치기가 십상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했고 포를 쏨으로 인해 시계를 대신했음이다.

오포는 포탄 없이 화약만 넣고 포를 발사하는데 목포의 경우 1회 발사시 화약 소비량이 30량이라고 한다. 포를 쏘는 소리가 사방 15 리까지 들렸으며 낮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고자 정오를 기해 포를 쏘면 부민들은 일을 하다가도 점심때가 되었음을 알고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제일중학교의 정문으로 다른 곳에 비해 지대가 높다   우남희 기자
제일중학교의 정문으로 다른 곳에 비해 지대가 높다 우남희 기자

1930년대 이후에는 소방서가 생기면서 사이렌으로 대신했는데 사방 2~30리까지 들렸다고 한다. 6.25전쟁기간 공습경보 사이렌과 구분이 되지 않아 국민들의 불편이 심해 결국 사라지게 되었으며 산 이름도 점점 잊혀 기록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