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 에워싼 봉우리 한 쪽으로 물 흐르고
초가 지붕엔 온종일 구름과 안개가 젖어드네
질양석의 도사는 지금 어디에 계신지
낙안봉에 노닐던 신선 인연따라 떠났네.
보이지 않는 가는 티끌 오솔길에 내려앉고
밤새 비춘 밝은 달 돌머리에 잠들고
봄이 왔다고 복사꽃 핀 물가로 떠돌지 말게
부질없는 낚시꾼이라 알려질까 두렵다네
[ 산수정(山水亭), 소강(小剛) 최익주(崔翼周)]
한시와 계곡이 패션을 완성했다. 남산(南山) 계곡은 경북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산68-32번지에 있다. 예로부터 나라의 도읍지가 있었던 곳에는 남산(南山)이 있었다. 신라의 도읍지였던 서라벌(경주)의 남산이, 고려의 도읍지인 개경(개성)의 남산, 조선의 도읍지였던 한양(서울)에도 남산이 있다.
청도의 남산 역시 옛 도읍지의 남쪽에 우뚝 솟아 무너져가는 일국의 흥망성쇠를 굽어보았다. 남산 북쪽의 화양읍 일대는 삼한(三韓)시대 때 변한(卞韓)의 소국(小國)인 이서국(伊西國)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서국은 한때 신라에 맞설 정도로 강국이었다.
청도 남산(870m)은 청도읍, 화양읍, 각남면 3개읍에 걸쳐 있는 산이다. 봄이면 상여듬에서 봉수대 사이의 진달래 행렬, 산중턱 복숭아밭의 만개한 도화로 절경이다. 봉수대에서 정상까지의 바위능선길은 산책 산행을 맛볼 수 있다. 일출은 청도 8경 중 하나로 꼽힌다.
남산계곡은 기암절벽 사이로 맑은 물이 흘러 여름 피서지이기도 하다. 계곡 중간지점부터는 운금천(雲錦川), 만옥대(萬玉臺), 산수정(山水亭) 등 선조들이 풍류와 멋을 한시로 새긴 바위와 정자 등 남산 13곡이 있다.
청도군은 2009년부터 3년간 남산 13곡 관광자원 개발사업으로 산책로 3㎞를 조성하였다. 나무데크 2곳, 휴게쉼터 3곳, 황토포장 등 계곡을 정비하는 탐방로를 개설했다.
이 고장 선비들이 즐겨 찾던 이 계곡의 절승을 중국의 화산에 빗대어 화산동천이라고도 한다. 시정(詩亭) 골이라고도 불렀다. 그 연유로는 1498년(연산군4)에 있었던 무오사화 후에 고을의 선비들이 남산계곡에 모여 시회(詩會)를 자주 열었기 때문이다. 자연을 벗 삼아 한시를 읊으며 마음을 달래던 흔적들이 있다. 바위 소 폭포에서 현재 발견된 곳만 19곳이다.
여기추(女妓湫,) 녹수문(鹿脩門), 음용지(飮龍池), 백석뢰(白石瀨), 질양석(叱羊石), 운금천(雲錦川), 봉화취암(奉和醉巖), 취암(醉岩), 연주단(聯珠湍), 산수정(山水亭), 만옥대(萬玉臺), 유하담(流霞潭), 석문(石門), 낙안봉(落雁峯), 일감당(一鑑塘), 용항(龍吭), 옥정암(玉井巖), 자시유인불상래(自是遊人不上來), 금사계(金沙界)가 있다.
제1곡 여기추(女妓湫)는 사대부 여자들이 목욕하러 오는 것을 막기 위해 기생들이 목욕하던 곳이다. 제2곡 녹수문(鹿脩門)은 사냥꾼들이 사슴 사냥에 앞서 수렵제를 지내던 곳이다. 제3곡 음용지(飮龍池)는 조선시대에 극심한 가뭄이 들면 군수가 직접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제4곡 백석뢰(白石瀨)는 돌 밑 흰돌이 많이 모여 보석처럼 반짝이는 여울이라는 뜻이다. 제5곡 질양석(叱羊石)은 바위가 우뚝 서 있어 소나 양을 치면서 감시하기에 알맞은 바위라는 곳이다. 제6곡 운금천(雲錦川)은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햇볕에 반사되어 비단을 깔아 놓은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제7곡 취암(醉岩)은 무오사화 이후에 수 많은 선비들이 한을 달래던 곳이다. 제8곡 연주단(聯珠湍)은 여울에 솟구치는 모래알이 구슬을 뿌리는 것과 흡사한 곳이다. 제9곡 산수정(山水亭)은 소강(小剛) 최익주(崔翼周)가 창건한 정자로 사림(士林)들이 수계(修契)하여 자연과 더불어 작시(作詩)하였던 곳이다.
제10곡 만옥대(萬玉臺)는 나지막한 폭포로 물방울이 튀어 날리는 것이 옥구슬 같다는 곳이다. 제11곡 유하담(流霞潭)은 노을 빛이 계곡에 가득하기가 큰못에 물이 가득한 것과 같다는 곳이다. 제12곡 낙안봉(落雁峯)은 선녀들이 목욕할 때 우의를 벗어 놓았던 곳이다. 제13곡 금사계(金沙界)는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봉림사로 갔다는 곳이다.
봉화취암(奉和醉巖)은 일취(一醉) 도필락의 아들과 손자가 선친의 시(詩)를 받드는 시를 짓고 새긴 것이다. 일감당(一鑑塘)은 하나의 거울같은 연못이라는 의미이다. 용항(龍吭)은 바위 사이로 물이 흐르는 모습이 마치 용의 목구멍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옥정암(玉井巖)은 옥이 우물에 채운것과 같다고 부른것이라고 한다. 선조의 멋에 젖어 계곡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