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55)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55)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3.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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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귀에 혼령을 부르는 듯 기괴한 소리로 뒷산 부엉이가 ‘부~엉! 부엉!’하고 울음 운다
오늘 밤 고모의 저승길 인도할 사자는 까마귀라 생각하는 할머니다
까마귀의 동공이 커지는가 싶더니 깜짝 놀란 듯 몸을 사려 웅크린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아버지가 집집마다 얹는 초가지붕에 대한 의논 등으로 동네 사랑방으로 가버리고 없는 집안에는 할머니와 고모 둘 뿐이었다. 따라서 고모의 병구완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오롯이 할머니 몫이었다. 죽이든 살리든 모든 결정은 할머니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런 만큼 할머니가 정성스러운 손길로 고모의 생명줄을 열어가는 마음은 조심스럽기 한량없고 손길은 세세했다. 이마 위의 수건을 수시로 갈고, 열이 높다 싶으면 해열제를 먹인 다음 누운 자리가 불편하지나 않을까 세심하게 보살피는 할머니다. 이대로 고모가 생명줄을 놓는다고 해도 한은 남기지 말자는 마음에 따라 몸이 부서져라 최선을 다하는 할머니다.

‘타닥타닥’심지 타는 소리가 고모의 ‘끙끙’앓는 소리와 하모니를 이루어 조용한 방안으로 아련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가불거리는 호롱불에 기름을 보충하고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서 심지를 돋우며 알뜰살뜰 고모를 보살피는 할머니의 귀에 혼령을 부르는 듯 기괴한 소리로 뒷산 부엉이가 ‘부~엉! 부엉!’하고 울음 운다. 문득 첫째가 떠나던 날의 밤 전경이 할머니의 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떠온다. 어느새 할머니의 눈에는 죽은 첫째를 끌어 앉은 모양으로 눈물이 방울방울 고이는가 싶더니 ‘뚝뚝’떨어져 이부자리를 적신다.

“몹쓸 년의 것, 결국 이 몹쓸 년의 영혼이 오늘을 맞아 이승과의 인연을 칼로 끊어내듯 모질게 끊고는 사지를 날개처럼 펼쳐 저승으로 떠나가는 구나! ‘훨훨’날아서 가는구나! 애타는 어미의 심정을 뒤로 하고 미련 없이 떠나가는 구나! 이런 애물단지 같은 년이 기어이 어미보다 앞서는구나! 이렇게 갈 바에는 왜~? 왜? 이 세상에 왔던고? 천년 묵은 거북이가 생애 처음으로 바다 위로 떠올라 구멍 난 송판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만큼 어렵고 어렵게 만나는 것이 모녀지간의 인연이라는데, 우주에서 떨어진 콩알 하나가 지구에 꽂아둔 바늘에 꿰는 것보다 어렵게 만나는 것이 자식과의 관계라는데...! 쎄고 쎈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나를 택한 것으로 보아 특별한 인연은 틀림이 없는 것 같은데...! 그렇더라도 하필이면 왜 나와 인연이 있어 내 배를 빌어 세상에 나왔던고? 어쩌자고 나왔던고? 못할 짓이네! 진정 못할 짓이네! 내 그렇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빌었건만...! 그런데 망할 넘의 그 넘의 저승사자는 언제 어느 때 왔던고? 생각할수록 세상사가 야속하기만 하네!”하고 읊조리는 할머니의 두 볼 위로 설움에 겨운 눈물이 샘물이 샘솟듯 한다.

할머니야 눈물을 흘리든 말든, 고모를 원망하든 말든 연신 부엉이가 운다. 어둠을 빌어 뒷산 부엉이가 죽음을 재촉하여 연신 운다. 죽음의 냄새를 맡았는지 오늘따라 극성스럽게도 운다.

“저런 저 쳐 죽일 넘의 부엉이 새끼 같으니! 썩 저리 꺼지지 못해”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리는 할머니가 한참이나 넋 놓아 고모를 내려다보다간 잃어버린 무언가가 생각난 듯 관세음보살상을 향해 머리를 깊숙이 조아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하고 다시 관세음보살을 찾아 읊조리기 시작한다.

“자비를 내려주옵소서! 제발 살려만 주이소! 명줄만 붙여 주이소! 죄 많은 어미에게 영광을 주시옵소서! 바보천치라도 상관없고, 절음발이라도 감지덕지입니다. 귀머거리라도 봉사라도 보살님을 절대 원망치 않습니다. 앉은뱅이면 어떻습니까? 이대로 평생을 병석에 누워 있다 해도 그 은혜 백골난망입니다. 제발 목숨만 거둬가지 말아 주십시오! 숨통만 트이게 해 주십시오!”하는 할머니의 고개는 연신 주억거리고 중얼거리는 입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비록 저승길을 인도하는 부엉이는 울었지만 관세음보살님께 끊임없이 자비를 구하는 할머니다. 아직은 미미하나마 숨결이 붙어 있기에 할머니는 마지막 남은 지푸라기 한 올이라도 옹골차게 부여잡아 목숨을 구걸하는 심정으로 암송이다.

그런 가운데 시간은 흘러 어느덧 삼경을 지나 사경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어느 결에 밤마을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는지 문고리가 ‘덜컹’하고 울었지만 할머니는 똑같은 동작만 반복할 따름이다. 그 때 할머니는 오늘 밤 부엉이는 저승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늘밤 고모의 혼백을 인도해갈 저승사자는 부엉이가 아니라 까마귀라고 여기는 할머니였다. 따라서 고모로부터 까마귀만 지키면 고모는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할머니다. 이는 어느 봄날 추녀 끝에서 떨어진 굼벵이로부터 까닭은 교훈이기도 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저승을 인도해갈 저승사자가 다른 듯 오늘 밤 고모의 저승길 인도할 사자는 까마귀라 생각하는 할머니는 그즈음 비몽사몽간에 까마귀와 대치하고 있었다.

어느 결에 할머니 곁에는 커다란 굼벵이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다. 살결이 유난히 희고 고운 굼벵이였다. 징그러울 만도 하지만 전신에 분가루를 덮어쓴 모양 아름다운 자태에 할머니가 반할 정도였다. 할머니는 이 굼벵이만 잘 지키면 고모가 살 수 있다는 확신 아래 굼벵이 옆에 섰다. 지난 어느 봄날에는 징그럽다고, 무섭다고 주춤거리다 창졸지간에 까마귀밥으로 내주었지만 오늘 만큼은 어림없다며 투사가 된 듯 지키고 섰다. 아닌 게 아니라 할머니로부터 조금 떨어진 대추나무 우듬지에는 전신이 새까만 색으로 반들반들한 까마귀 한 마리가 올라앉아 호시탐탐 굼벵이를 노려보고 있다.

빈손인 할머니가 무언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둘러보는 잠깐 동안 눈을 내렸다. 막대기에 무기가 필요해 두리번거리는 중이었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까마귀는 할머니가 방심한 틈을 노려 금방이라도 날아 들 듯 접었던 날개를 활짝 펼쳤다. 하지만 할머니도 호락호락 하지 않아 대적하기에 만만치가 않았다. 검법이나 병법은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양팔을 '휘휘'내저어 철통같은 방어 태세를 갖춘 할머니다. 할머니의 만만찮은 모습에 까마귀가 슬며시 날개를 접어서는 빈틈을 노려 숨을 고른다. 둘의 대치로 주위는 터질 듯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것도 잠깐, 할머니의 눈에 초가집을 짊어질 듯 등을 돌려 세워진 지게 위를 비스듬하게 가로 질러서 누운 지게작대기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다닐 적에 지게를 받치던 지게작대기다. 아버지가 땔감 등을 구하고자 자드락 산길을 걸을 때면 의지하던 나무작대기다. 무료하고 심심할 때면 지게목발을 두드려 박자를 맞춰가며 노래를 흥얼거리던 나무작대기다.

“콩 꺾자 콩 꺾자 두렁너머 콩 꺾자/ 앞산에 불 질러라 콩 튀어 먹고 넘어가자/ 낙락장송 몸통 좋아 상대들보 되고요/ 벽오동은 살결 좋아 거문고복판 되고요/ 설죽나무 마디 좋아 명창통수가 되고요/ 어떤 사람 팔자 좋아 호의호식 잘사는 디/ 이내팔자 어이하여 지게 목발 못 면하나!”하며 산과 들을 오갈 적에 지게목발에 ‘툭~툭’두들겨가는 당목(撞木)같은 지게작대기다. 할머니는 아들의 정신이 깃들었다는 생각이 들자 힘이 불끈 솟았다. 까마귀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잽싸게 집어 들고는 까마귀를 향해 동그라미를 그리며 내둘렀다. 유명 검법을 익힌 양 매화꽃을 송이송이 그려가며 세차게 휘둘렀다.

하지만 까마귀를 위협하기에는 길이가 한참이나 모자랐다. 까마귀조차 가소롭다는 듯 하늘을 향해 ‘까~악~ 까~악!’하고 신나게 울 뿐이다. 어디 능력이 되면 마음껏 찔러보고 때려보라는 식이다. 지게작대기로는 역시 역부족이라 여긴 할머니가 주위를 둘러보는데 검고, 희고, 빨갛고, 노랗고, 파란 빨랫감을 잔뜩 받치고 있는 바지랑대가 눈에 들어왔다. 바지랑대는 할머니의 손때와 혼령이 깃든 물건이다. 사시사철 시냇가에서 빨아온 빨래를 탈탈 털어 널 적에

“마당으로 가면 시아버지가 원수고/ 부엌으로 가면 시어머니가 원수고/ 밭으로 가면 지심이 원수고/ 이 세 원수를 자당실로 묶어서 한강수에 빠자 죽이자고!”하며 노랫가락처럼 한 자락 뽑아 낸 후 늘어진 빨랫줄을 힘껏 받치던 바지랑대다. 할머니가 바지랑대에 눈길을 주자 지금껏 여유를 부리던 까마귀의 동공이 커지는가 싶더니 깜짝 놀란 듯 몸을 사려 웅크린다. 적벽대전에서 대패한 조조가 화용도에서 청룡언월도를 비켜들고 적토마에 올라앉은 관우를 만난 모양, 아닌 밤중에 낮도깨비라도 만난 듯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갈팡질팡 어쩔 줄 몰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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