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자의 의도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영화의 개봉 시기는 절묘했다. 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고 현실 속 이야기를 재현한 듯한 영화의 내용은 정치에 관심있는 영화마니아들을 극장으로 오게 한 요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킹메이커」를 소상영관에서 관람했다. 좌석도 60여 개밖에 되지 않는 상영관의 의자가 리클라이너로 리모델링 되었기 때문이다. 1인용 의자라기보다 인체공학적으로 편안함을 최대한 살린 1인용 소파에 가깝다. 버튼을 누르면 두 다리를 수평으로 올릴 수 있고 등받이도 침대 수준으로 내려가서 거의 누워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 정도이다.
안락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여기까지 왔다. 두 시간 넘는 러닝타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몸은 편안했고 영화는 끝까지 몰입감을 선사했다.
이 영화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두 주연배우가 한 영화에 출연했기 때문에 일말의 망설임 없이 예매사이트를 클릭했다.
선거에서 네 번이나 낙선한 김운범(설경구)의 진가를 한눈에 알아본 선거전략의 귀재 서창대(이선균)가 스스로 그를 찾아와 그를 위해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자기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당신은 내가 원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며 사이다 같은 발언을 던지기에 영화를 보는 나도 기꺼이 박수를 보냈다. 김운범의 방식은 아니지만 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서창대의 활약으로 김운범은 두 번이나 국회에 진출한다. 서창대를 알아본 대통령의 사람들이 어마무시한 돈 가방을 들고 그를 찾아 오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한다.
그랬다. 그는 김운범을 국회로 보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고 김운범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 결국에는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 보이는 영화의 후반부를 보면서 경악을 금하지 못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김운범과 손을 잡았다지만 서창대도 권력을 탐하는 속물이었고 자신의 야망을 위해 김운범을 배신하는 서창대의 행보에 소름이 돋았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음모와 배신과 거짓이 난무하는 정치 세계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표현하여 일종의 정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거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고 정의를 부르짖어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을 정치인은 우리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걸까, 존재하지 못하는 걸까. 킹메이커,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은 국민일까, 당사자 자신일까, 아니면 그의 보좌관들일까.
1960년대의 이야기지만 2000년대의 우리 모습과는 뭐가 다른 것인지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참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