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댁의 레이다 같은 눈매에 곧바로 감지가 되었다
성주댁은 영천댁에 대해 단단히 토라져버린 상태다
죽음을 확인하는 상투적인 방법은 맥박과 숨결 여부다. 할머니는 급하게 고모의 목덜미 앞쪽으로 하여 손가락을 얹어 지그시 눌렀다. 하지만 이미 죽었다는 선입감 때문인지 맥이 잡히는 것도 같고 아닌 듯도 하다. 부처님도 자식 앞에는 돌아앉는다고 딸자식이라 그런지 생각은 추풍낙엽처럼 흩어져서 가뭇없고 마음은 한정 없이 벙그러(벌어지다. 의 비표준어)진 때문이다. 평소 환자를 대할 때는 사심을 버리고 마음을 명경지수처럼 맑게 다잡아야 한다고 배웠지만 흩으려진 감정 앞에는 소용이 없다. 다시 손목을 잡아 맥을 확인하려 했지만 마찬가지다. 이미 손가락 끝이 마음의 지배를 받아 감각을 잃은 상태라 제대로 확인을 할 수가 없다. 마음이 들떠있다 보니 무엇 하나 명확하게 확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평소 맥 하나는 귀신같다고들 했지만 지금에 이르러보니 허명이나 다름이 없다. 절래절래 고개를 흔드는 할머니는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고모의 숨결 여부다. 이때에 사용되는 것이 솜이나 새의 보드라운 깃털이다. 사람의 인중에 올려놓아 움직임을 살펴보는 방법이다. 가녀린 숨결이라도 붙어 있다면 미세하게 흔들릴 것이고 움직임이 없다면 죽은 것으로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던 할머니가 고모를 위해 새로이 누비이불을 만들고자 윗목으로 밀쳐놓은 솜뭉치 중에서 일부를 떼어내어 손에 들었다. 쉼 호흡을 크게 하고 조심스럽게 고모의 인중으로 가져가는 찰나였다. 그때까지도 이불 속에서 죽은 듯 감았던 눈을 동그랗게 뜬 고모가
“엄~마! 손에 솜은 들고 왜 그래요? 또 이불 만든다고 바느질 타령이야?”하며 잘 잤다는 표정에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더니 양팔을 쭉 뻗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다. 그 모습에 환한 대낮에 낮도깨비를 보듯 놀란 할머니가
“애~ 끝순아! 네가 진정 살아 있는 게냐! 숨을 쉬고 있는 게냐!”하며 와락 끌어안는데 코끝으로 향긋한 복숭아 향이 은은하게 스며든다. 그제야 할머니는 이 모든 조화가 관세음보살의 자비로 여겨 연화단 위의 관세음보살상을 향해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나무관세음보살! 대자대비 자애로우신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하며 감격에 겨워하다간 품안의 고모를 내려다보는데 머릿밑이 먹물은 부어놓은 것처럼 까맣다. 그간 오랑우탄의 머리털처럼 듬성듬성한 가운데 노랗던 머리칼을 어디로 사라지고 빡빡한 콩나물시루처럼 새까맣게 솟구친다.
할머니의 가슴 벅찬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매양 죽으리라 여겼고 또 밤을 지나면서 철석같이 죽었다 여겼던 고모가 살아난 것만 해도 고맙고도 감사한데 온몸으로 생기가 도는 데는 할머니가 회춘을 하는 기분이었다. 환기 차 방문을 열고 동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는데 그렇게 찬란할 수가 없었다. 길게 쉼 호흡을 하고 부엌에 들자 모든 사물에 숨결이 깃든 듯 생기가 느껴졌다. 아침준비로 보리쌀을 씻어 가마솥에 안치고는 마른 솔가리를 불쏘시개로 하여 장작에 불을 붙이는 중에도 고모의 변화가 궁금하다. 아침을 짓는 일보다 고모의 변화가 더 궁금한 할머니는 아침 내내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린다. 보고 또 봐도 신기할 따름이다.
잠시 후 감골댁에 이어 성주댁이 오고 영천댁이 아이를 데리고 오자 반가움 보다는 오히려 걸리적거린다는 생각이 앞섰다. 시간을 비워 오라고 할 때는 언제고 괜히 찾아와 할머니의 호기심에 몽니를 부린다 싶었다. 어제의 부탁은 까맣게 잊고 왜 왔냐고 투덜거리는 형상이다. 하지만 음식 재료 등이 차례로 등장하고 부엌과 마당에서 질펀한 수다가 일자 할머니도 잠시 잠깐 동안이나마 고모의 몸 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고모의 변화는 이내 노출 되었다. 필요한 무언가를 찾아 방에 들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영천댁의 레이다 망 같은 눈매에 곧바로 감지가 되었다. 고모로부터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영천댁이
“성~ 님!”하고 할머니를 닦달한데서 시작되었다.
평소에도 물색없는 영천댁이 알아버린 이상 할머니는 감추고 자시고 할 것이 없다 여겼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굳이 성주댁에 이어 영천댁을 나란히 청한 것에는 할머니 나름 보관이 있었다. 영천댁이야 굳이 청하지 않아도 앞뒷집으로 앞마당 끝에 서서
“영천댁아! 성~님요! 영천댁 집에 있어요!”하고 부르는 것만으로 그만이다.
별수 없이 할머니는 감골댁, 영천댁, 성주댁을 나란히 앉혀 놓고는 일은 뒷전으로 지난밤의 기이함에 대해서 낱낱이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의 설화 같은, 전설 속에서나 나옴직한 이야기가 끝나자 이구동성으로 그간 할머니 정성이 고모를 살렸다며 입을 모은다. 할머니는 병든 자식을 둔 어머니라면 응당 그래야지 무슨 말이냐고 반문을 해도 그 지난한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며 할머니의 공덕을 치하 하느라 참새처럼 조잘조잘 입을 놀린다.
모여 앉아 말 한마디라도 지지 않으려는 모양새가 당초 영천댁과 성주댁의 화해를 위해 모이라고 한 자리였으나 그럴 필요가 없어진 듯 보였다.
며칠 전의 어느 날의 오후였다. 그날은 동네 아낙들 거의 전부가 성주댁으로 모여 들었다.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성주댁이 어려운 형편에 짬짬이 모은 돈으로 화장품 한 통을 장만했기 때문이다. 화장품 구경을 위해 툇마루도 비좁게 동네 아낙들이 모여 앉아
“오늘부로 꽃보다 더 이쁜 성주댁을 널찍한 가슴으로 밤마다 품는 성주양반은 입 꼬리가 귀에 걸리겠구먼! 원래도 예쁜 미모의 인물이 한층 빛나 골목이 다 훤해 달이 부끄럽겠구먼! 아~이구 눈 부셔라! 내용 모르는 총각에게서 청혼이라도 들어오면 어쩌려고 그러슈!”하는 부러움을 곁들여 구수회의처럼 품평회를 여는데 뒷전에서 사슴처럼 목을 길게 빼어 넘겨보던 영천댁이 가만히 있으면 2등이라도 할 것을 자발없이
“에~이구 이것 뭐 싸구려 중에 싸구려네! 이따위 것이 뭔 용을 뺀다고...! 흔해빠진 이 따위를 것을 얼굴에 덕지덕지 쳐 바른다고 예뻐지면 세상에 못난이가 없겠네!”하고 속이 없는 듯 불쑥 내질러 버린다. 영천댁의 그 말 한마디에 열기로 들떴던 장내가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싸하게 식어버리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다들 모여 한마디씩 거들어 칭찬일색에 부러워하는 가운데 맞은 당황함에 어안이 벙벙함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 같았다. 시샘을 떠나 비록 싸구려라 할지라도 못이기는 척 성주댁의 기분을 헤아릴 줄도 알아야 하건만 영천댁은 그런 남을 배려하는 사탕발림을 몰랐다. 입에 발린 소리일망정
“성주댁요 부럽다요!”하는 한마디를 몰랐다. 아니 모른다기보다 당체 속마음을 감출 줄 몰랐다. 동네에서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그런 입방정으로 인해 영천댁은 수시로 동네 사람들과 부딪치는 실정이었다. 이는 영천댁의 마음이 악하기 보다는 속에 든 할 말 못할 말을 가릴 줄 모르는 데서 생겨나는 동네 아낙네들과의 불협화음이다. 그날 이후 성주댁은 영천댁에 대해 단단히 토라져버린 상태다.
이대로 둘의 반목을 두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 할머니가 일을 핑계로 둘을 불러들인 것이다. 평소 시어머니인 청솔댁이 할머니를 만날 때면 영천댁을 두고
“이보게 동~상! 우리 털파리 같은 거시기...! 내 며느리를 진정으로 부탁하네!”하는 부탁을 떠나 동네에서 척을 지는 이웃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할머니가 솔선수범으로 나선 것이다. 어느 순간 할머니는 그 옛날 골안댁을 흉내하고 있었다. 이미 동네 사람들도 이웃 간에 생긴 오해로 인해 사이가 틀어지면 할머니가 나서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