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오후 4시간 씩 근무, 새로운 일 도전 두렵지 않아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아이스 라테한잔 나왔습니다."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손맛으로 차분하게 내린 커피 두 잔을 건네는 노인 바리스타의 목소리가 포근하고, 따뜻하다.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에 얼굴을 보니, 노년의 여성분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은 나이를 잊은 바리스타다.
바리스타들이 60대 이상이라고 해서 젊은 미적 감각과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깔끔한 카페 인테리어와 다양한 메뉴 등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와 다를 바 없다. 오랫동안 음식을 만들어 온 손맛이 오히려 빛을 발한다.
젊은이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카페에 노인 바리스타와 그들이 만든 커피 맛에 또 한번 놀라게 되는 곳이 있다. 대구 남구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시장형 일자리 카페 '써니커피(sunny coffee) 남구청점‘이다.
지난 2018년 6월 커피 전문가 양성과정을 이수하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도 일할 곳이 없던 노인에게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문을 연 '써니커피 남구청점‘은 대구 남구 남구청 종합민원실 1층에 위치하고 있다.
12.6㎡(3.8평) 면적의 카페는 개인이 운영하는 업체와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만큼 내·외부 인테리어에 많이 신경을 썼다. 전문 카페 인테리어 업체를 선정하여 최신 유행을 반영하면서도 갈색과 파스텔 색조로 밝은 분위기로 연출해 남구청을 찾아오는 민원인,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써니커피 남구청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바닐라 라테, 카페모카 등과 각종 스무디, 에이드 등 30여 종류의 차와 시즌메뉴도 즐길 수 있다.
커피는 질 좋은 원두 100%를 사용해, 아메리카노를 비롯한 카페라테, 모카라테 등 커피를 제조할 수 있게끔 ’커피명가‘에서 원재료를 준비했고, 해썹(HACCP: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을 받은 원두를 사용한다.
또한 이곳에는 노인 바리스타들이 직접 만든 커피와 여러 종류의 국산차와 빵과 쿠키를 3천 원에서 4천 원 안팎의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민원인, 방문객 손님들이 하나 둘 카페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밀려드는 주문에 정신이 없을텐데, 노인 바리스타들은 손님들이 주문한 음료를 능숙하게 POS기(전자식 금전 등록기)에 입력 하고, 주문한 커피를 만든다.
“캐러멜 마끼아또와 카페모카 한 잔 나왔습니다” 주문부터 제조, 손님에게 전달하기까지 너무 자연스럽다. 그리고 어려운 POS기 다루는 솜씨도 젊은이들 못지않다.
'써니커피 남구청점‘은 현재 만60세 이상 10명의 노인이 3명씩 3개조로 나눠 일을 하고 있다. 3개 팀이 매주 월~금요일 중 3~4시간씩 (주3회) 돌아가며 일을 하고, 토·일요일·공휴일은 카페를 운영하지 않는다. 바리스타들은 평일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한다.
4년째 바리스타로 일하는 홍명숙(68) 씨는 “평소 커피에 관심이 많아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커피를 만들며 인생 2막을 열었다”며 "나이가 들면서 사회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소외감이 종종 들 때가 많아 '무엇인가 도전하기에 나이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진짜하고 싶었던 커피 공부를 했고, 자격증을 취득해 직접 취업 현장으로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유현애(63) 씨는 “처음에는 바리스타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전문교육을 받으면서 아메리카노부터 캐러멜 마끼아또까지 10가지도 넘는 커피종류를 알게 됐어요. 커피를 만드는 방법은 물론, 손님을 대하는 태도라든지, 청결상태, 서비스정신과 같은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점도 교육 받았어요”라고 말하고 환하게 웃었다.
고정자(65) 씨는 "이곳‘에서 일하는 바리스타가 되는 길은 쉽지 않다. 바리스타 자격증은 기본이고, 전문 바리스타가 참관하는 실기테스트 등 깐깐한 선발 과정을 통과한 덕분인지 지금까지 고객 항의는 한 건도 없었다“고 자랑한다.
이곳을 찾은 손님은 “매일 오전 8시 30분에서 9시에 오면 50% 저렴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소독과 방역 도 철저해 안심하고 이용한다"며 "커피한잔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갈 때 너무 좋다”고 했다.
이렇게 손님들이 많이 찾는 인기 비결은 뭘까?
최은성 '써니커피 남구청점‘ 담당 사회복지사는 “첫째로 철저한 시장 마인드 소유와 노인일자리라고 사회가 관대할 것이란 생각은 실패의 지름길이다”며 “제품개발에 경쟁력을 갖추고 다양하게 변화하는 추세에 맞춰 음료, 신메뉴 개발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 남구시니어클럽(관장 김상희)은 사회복지법인 ‘함께하는마음재단’(대표이사 금고지도 스님)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함께하는마음재단’은 1997년부터 지역복지 사업을 펼쳐온 종합적 지역 사회복지법인이다.
또한 남구시니어클럽은 노인일자리 전담기관 운영을 통한 노인의 사회적 경험 및 지식을 활용해 다양한 노인 적합형 일자리를 개발하고, 이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여 노인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圖謀)하고 있다. 그 공로로 지난 2019년 노인일자리사업 우수 기관 선정, 2020년 노인일자리 최우수 기관선정,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현재 남구시니어클럽은 공익활동형 12개 사업단 1천569명, 사회서비스형 5개 사업단 415명 ,시장형 10개 사업단 86명의 노인들이 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다.
노인일자리 모집은 매년 12월 남구시니어클럽 홈페이지에 공고한다. 노인일자리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신청 기간 내 남구시니어클럽 방문해 신청하면 된다. 시장형 ‘써니커피’ 참여자 활동 조건은 주3회, 1일 3~4시간, 월12회 정도 일하고 급료를 받는다. 문의) 053-471-8090.
최은성 사회복지사는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다. 노인이라고 늦었다면서 미리 포기하지마시고, 본인의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길 바란다”며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용기있게 도전하라”고 응원했다.
‘써니커피 남구청’을 찾는 손님들은 행복한 노인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의 맛은 행복의 맛이라는 확신 때문 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노인 바리스타들은 커피를 내리며 행복을, 맛을 찾아가는 중이다.
현재 남구시니어클럽에서 운영 중인 ‘써니커피’는 대명점과 이천점, 남구청점 3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