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썩을 놈을 향해서 저주를 퍼붓고 있는 듯도 보였다
제 아버지를 찾아 주고 싶은 마음이 나날이 간절하다
“어디에 쓰려고?”하는 말을 애써 참으며 지지난 달 기 재사에 쓰고 남은 포라며 흡사 돌덩이와 같은 명태 두 마리를 선뜻 내어준다. 아직 못다 갚은 빚으로 인해 토닥토닥 꼬리를 달아 어렵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싶게 명태 두 마리를 꾼 장모자리가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다듬잇돌 위에 올린다. 급하게 다듬이 방망이를 찾아 한손에 하나씩 꼬나들고는 교대로 두들겨 패는데 맥이 빠져서 그런지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죽어 늘어진 오징어 다리모양 힘없이 ‘투~닥! 투~당!’두들기는데 뒷전에 앉아서 어머니의 하는 양이 보기에도 딱해보였는지 아기에게 젖을 물리던 소박맞은 처녀가
“엄마 내가 대신할까?”하며 엉덩이를 슬슬 밀어오자
“일 없다 이년아! 시방 사랑방에 늘어진 네 아버지 꼴을 보고도 고 얄망궂은 주둥아리에서 따박따박(‘아장아장’의 방언)말이 튀어나오나!”하는데 차갑기가 만년지설이 질펀한 설산에서 불어드는 바람결처럼 살을 엔다. 전날 같으면
“왜? 맨날 죄도 없는 나만 같고 그래요!”하고 억울하다며 반항이라도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처지가 아니다 싶다. 어머니의 말에 지레짐작으로 놀라 제자리로 돌아간 처녀는 어머니가 하는 양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포만감에 곤하게 잠든 아이를 끌어안아 놀란 토끼모양 눈만 끔뻑거리는데 슬픔이 한 광주리다.
문득 홍등가에 몸을 담은 어느 퇴기와 다를 바 없는 여인의 나이에 비해 겉늙은 얼굴이 떠오른다. 당시는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을까 싶었다. 어디 할 짓이 없어 이 사내 저 사내를 가리지 않고 품에서 안겨 여자란 자존심도 없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헤픈 웃음을 날리며 살까 싶었다. 화장이 재대로 먹질 않아 푸석푸석한 얼굴의 그녀가 세상 여자 망신은 다 시킨다 싶었다. 하지만 처녀 자신도 곧장 그녀들의 삶을 뒤따라할 듯싶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듯이 기생이나 거지의 씨 또한 따로 없다 싶었다. 의지와는 달리 싫든 좋든 인생의 순리라 여겼다. 지조도, 정조도, 자존심을 다 버려야 아이와 함께 호구지책을 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누군가 저놈의 새아버지, 그러니까 구레나룻이 시꺼먼, 도둑놈의 면상을 한 불한당 같은 그 작자는 어디로 갔냐고 물어올 때면
“나도 모르 제! 어저껜가? 그저껜가? 하여간 담배나 사로 간다던 인간이 여태껏 여락이 없네! 또 어디 가서 나 맨크로 골빈 여자깨나 후리고 빌붙어서는 호구지책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르 제! 그러다가 실증이 난다 싶으면 또 담배나 사려 가겠제! 알고 보면 그 놈도 불쌍한 인간이여!”하고 푸념처럼, 시큰둥하게 말할 날이 코앞이란 생각이 들었다. 푼푼이 모아온 살림밑천을 한입에 털어 넣고는 벌충을 하고자 애먼 사내의 호주머니를 넘보는 추악한 여인으로 전락하리라 여겼다. 설렁 그러한 삶이 눈앞으로 다가든다 할지라도 머잖은 날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지긋지긋한 이 집을 떠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길 위에서 어떤 뜨내기 사내와 인연을 엮어 배꼽을 맞추고는 가시밭길을 헤매더라도 떠나리라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처녀가 앞날의 불행한 그림자에 휩싸여 고개를 떨궈 있기로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장모자리의 입에서
“이~ 미련하고 꽉 막힌 영감탱구야! 어째 나라고 영감탱구의 그 애타는 심정을 모를까요? 같이 살을 섞어 살아온 세월이 그간 얼만데 그걸 모를까요? 그렇다고 웬 술을 빈속에 그렇게나 나날이 많이 잡수셨다던 가요! 이기지도 못할 술을 그렇게나 잡수신 다요! 그날 못이기는 척,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저 빌어먹을 저년을, 얼씨구 좋다 하고 딸려 보내면 미구에 또 소박을 맞을까봐 단디 한다는 게 그렇게 된 것을 어찌 모를 까요! 나도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보니까 그랬지! 답답한 마음에 그랬지! 무닥지 그랬겠소! 이제 와서 우야겠는교 그냥저냥 살 밖에! 천하에 나쁜 놈! 사람이면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다는데...! 그런 사우쟁이는 인자부터 나도 필요 없네요!”하고 중얼거리는 장모자리의 손길이 어느 순간부터 급하게 빨라지고 있었다. 하는 모양새가 아마 사윈지 돌 쌍놈인지 그 썩을 놈을 향해서 저주를 퍼붓고 있는 듯도 보였다.
‘따~당! 따~당!’하는 한에 사무친 다듬이질 아래 해를 거듭해서 찌들고 찌들어 돌덩이처럼 단단해 보이던 명태가 일순간 너덜너덜해 진다. 입을 다문 조개가 끓는 물어 들어 선선히 입을 벌이 듯 누리끼리한 속살을 속속들이 들어낸다. 순식간에 보푸럼(말린 대구나 명태를 방망이로 두들겨 잘게 부순 것)처럼 너덜하게 풀어진 명태의 껍질을 벗겨 속살을 일일이 손으로 찢어 조각조각을 내는 장모자리의 입이 끊임없이 실룩거리는데 흡사
“사우쟁이 이놈의 새끼, 사우쟁이 이 썩을 놈의 새끼!”하고 팔다리를 발기발기 찢어버릴 모양으로 찢는 듯도 보인다. 속으로 몇 번이고 되 뇌이며 어금니를 가는 듯도 보였다.
술에서 깬 영감은 마누라가 끓어준 북어 국으로 몸을 추스른 다음 날부터는 일절 술을 끊었다. 술을 끊은 아버지와 보조를 맞추는 듯 소박맞은 처녀도 더 이상 시집과 신랑타령을 접었다. 아버지의 건강도 건강이려니와 자신을 들어 아버지의 후실이나 첩이되란 말에 만정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럴 바에는 어째 가마는 끌고 왔는지 모르겠다면서...!, 아마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 모습을 보며 약이나 올려 먹자는 야비한 짓거리로 결말을 짓고는 인연을 끊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다고 초례청을 마주하여 꼬꼬재배를 올려 평생을 언약한 고래심줄처럼 질긴 인연이 그리 쉽사리 끊어질 수가 있을까? 월하노인이 붉은 자당실로 손목을 묶어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었다면 자식새끼가 쇠사슬로 발목을 묶고 있는데 어찌 씻은 듯 마음에서 지워낼 수가 있을까?
처녀가 남모르게 마음에 품어 그리움으로 몸부림을 치는 중에도 세월은 물같이 흐르고 있었다. 시계의 초침처럼 째깍째깍, 한 치의 빈틈없이 돌고 돌아가고 있었다. 계절도 함께하여 순환을 거듭하고 있었다. 톱니바퀴를 따라서 늦봄을 지나 여름을 맞는가 싶더니 어느새 가을철로 접어들고 있었다. 뙤약볕의 모진 햇살이 어느 날부터 가늘어 지는가 싶더니 오곡백과가 탐스럽게 익어간다. 농부들의 부지런한 손길아래 황금빛으로 화해 들녘을 가득 메워 알알이 영글어가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몸집을 부풀리고 있는 농작물을 보노라면 사람도 가축도 공히 등 따습고 배부른 계절이다. 그런 가운데 소박을 맞아 친정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처녀만이 가슴속으로 눈발이 흩날리는 듯 찬바람이 여전하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고쳐먹어 보지만 앞산을 넘는 재를 보라보는 일만은 게을리 할 수가 업었다. 혹시나 하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을 차마 놓을 수가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들을 보건데 날이 가면 갈수록 애타는 마음은 오히려 더해만 간다. 멋모르고 태어난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기왕에 맞은 소박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에게 많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 아버지를 찾아 주고 싶은 마음이 나날이 간절해가기에 하루라도 거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처녀의 애타는 염원이 통했는지 입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가마 한 채가 바람처럼 앞산을 넘어왔다. 처음 올 때랑 다른 점은 초로의 노인이 앞장을 서서 이끈다는 점이었다. 동네 어귀를 들어선 가마는 망설임 없이 곧장 소박맞은 처녀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그날을 맞아 일찌감치 가을걷이가 끝난 듯 때 이르게 점심을 먹으로 집으로 돌아온 영감과 거짓말처럼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