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경의 '봄'
천지경의 '봄'
  • 김채영 기자
  • 승인 2019.04.01 15:09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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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경의 '봄'

 

새벽부터 제상을 세 번 차리고 허리를 펴니

창밖이 훤하다

발인을 끝낸 장례식장 휴게실

미화부 아줌마들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다

 

신상품 속옷 광고를 하는 텔레비전 속

화사한 모델 배경이 온통 봄꽃이다

평소 말 없고 착실한 곱사등이 전 씨 아줌마

슬쩍 던지는 한 마디

"늘씬해져서 저 옷 한 번 입어 봤으면!“

 

불길한 앰뷸런스 경적 그치자

또 한 묶음의 통곡소리 부려진다

황급히 일어난 미화부 아줌마들

대걸레 끌고 우르르 몰려간다

왁자한 수다 밀고 간다

노란 작업복 등 어깨 주무르던 햇살

사뿟사뿟 따라간다

 

시집 '울음 바이러스' 불교문예 2018.9.15

 

이 시를 쓴 시인과 일면식은 없다. 그렇다고 아예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다. 분신과도 같은 자서를 나누어 가진 인연이면 큰 인연 아닐까 싶다. 연전에 필자가 펴낸 수필집을 읽었다는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책 한 권에 작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속속들이 박혀 있더라고 했다. 글과 사람이 자웅동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실 나도 그랬다. 천지경의 시집 ‘울음 바이러스’, 표제부터 묵직하게 다가왔다. 무거운 이야기의 책장을 가볍게 넘기며 한달음에 읽는 것이 적잖이 미안했다. 그녀의 사생활, 시적 세계관을 통달한 기분이었다.

시인의 직업은 조리사다. 십 수 년째 장례식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하필이면 삶의 현장이 장례식장이라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의 주검을 봐서 그런지 ‘장례식장’ 글자만 봐도 고개를 돌린다. 나이를 먹었다고 별반 달라지지 않아서 초상집 가는 것을 꺼린다. 그런데 타인의 죽음이 밥이 되고 시가 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시집에 실린 시편 대부분이 일터에서 건져 올린 진솔한 사연들이었다. 어쩌면 시가 태어나기 가장 좋은 환경일 수도 있겠다. 시는 극지나 험지에서 온다고 하지 않던가.

시적 공간에는 삶과 죽음 그리고 봄이 공존한다. 관찰자시점인 화자의 녹록지 않은 일상이 건조하면서도 리얼하게 포문을 연다. 유가족들은 당면한 슬픔에 젖어 계절을 잊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발인을 끝낸 미화부 아줌마들은 잠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신상품 속옷 광고를 본다. 애써 슬픔에 비껴있는, 익숙한 직업인의 자세다. "늘씬해져서 저 옷 한 번 입어 봤으면" 진부한 소망이 살아있음의 대변자처럼 다가온다. '통곡소리가 부려진다' '왁자한 수다를 밀고 간다' 등의 청각적 심상이 시각적 심상으로 이미지화 된다. 사뿟사뿟 따라가는 햇살마저 왠지 선량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