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망구는 하나가 없드만! 땅속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없드만!
세월이 야속했던 걸요! 그런데 그놈이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계절은 봄을 내달려 한창이건만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 위로 고독이 깃든 쓸쓸함이 덕지덕지 묻어나고 있었다. 어느결에 할머니는 더 없는 지기로 희로애락을 스스럼없이 나누었던 청솔댁을 떠올려 그리워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11월 초순을 맞아 이승을 떠난 청솔댁이 마냥 복을 받은 노인이라 생각이 들었다.
청솔댁이 세상을 버리기 3개월 전, 그러니까 8월 하순의 어느 날이었다. 입추를 지나 처서를 넘어서다 보니 그 지독하다던 모기조차 입이 돌아갔는지 부질없이 사람 주위를 맴돌아 앵앵거린다. 여름 한 철을 맞아 모질고도 모질었던 모기 주둥이이었건만 서늘해진 공기를 독기로 쐬어 삐뚤어지다 보니 파리 마냥 여겨 손을 홰홰 내 젖는 것으로 그만이다.
할머니와 청솔댁은 축대 끝으로 나란히 엉덩이를 걸터앉아 농익은 여름이 내어놓는 향수에 빠져들고 있었다. 나란히 눈을 들어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느 틈에 돌 틈을 비집어 추초생(秋初生)이 날개를 비벼서 울음 운다. 반가운 듯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듣는 할머니는 마음속으로 나는 몇 년을 두고 자연과 어우러진 저 아름다운 하모니에 정신을 온전히 내맡길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길고 멀어만 보이던 세월이 무심으로 흘러 생의 끝자락에 서고 보니 새삼 사람의 삶이란 한 생애가 쓸쓸하고 허무하다. 청솔댁과 나란히 앉은 지금 시간이 금보다 소중해 보인다. 그날에 이미 할머니는 청솔댁의 죽음을 헤아리고 손가락으로 집어서 보았는지도 모른다. 이대로 지구가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어디선가 알싸한 향내가 풍겨와 코끝이 간질간질하다.
계절을 잃어버린 어느 정신 나간 장미가 축담 밑에서 꽃잎을 열어 피었는가 여겨졌다. 여름날 붉은 태양을 나날이 품었다가 일찌감치 불어오는 가을바람의 꼬드김에 입을 열었는가 싶었다. 달콤한 입김을 살금살금 토해내고 있어서 그런가? 코끝 향기롭게 장미 향이 풍겨 들지만 두 노인네는 여전히 말을 잊은 듯 나란히 하늘만 쳐다보고 앉았다. 길을 잃고 날아든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할머니의 머리 위에 앉았건만 원래부터 앉아있었던 모양으로 눈길 한번, 손길 한번 주지 않는다. 회백색의 할머니 머리 위라 그런지 유난히 도드라져 빨갛게 빛나는 고추잠자리다.
문득 고요를 깨듯 할머니가 무릎 위에 얹은 손을 포갠 청솔댁의 손이 꼼지락거려 손등을 살금살금 쓰다듬는다. 그마저도 없었다면 석상이라 해도 이상할 것 없어 보이는 모양새다. 오랜 침묵을 깨고 청솔댁이 지나가는 말투로
“자네는 보았는가? 저쪽 하늘가로 별똥별(유성)이 꼬리를 길게 늘여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대명천지에 별똥별 떨어지는 모습이 형님의 눈에는 보여요! 저 멀리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서는 남...! 미...! 아~마 그 있잖아요! 에~고! 늙으면 죽든가 해야지! 방금 들은 이야기도 고개 까딱 찰나에 잊어버리니 원! 하여튼 지구 반대편에 산다는 그~ 하여간 악어가 우글거린다는 널따란 강가에 산다는 껌둥이들처럼 시력이 5.0 정도나 되면 또 몰라도, 아니면 독수리 눈 정도는 되어야지 보든가 하죠! 대(大)바늘 귀도 못 보는 눈에, 성~님은 희떠운 소리를 해도 정도껏 해야 믿든가 말든가 하죠!”
“왜? 동상은 못 보았는가? 꼬리를 벌겋게 늘려가며 떨어지는 모습을, 아~ 못 보았는가? 나는 분명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
“근데 말이야 그건 그렇고, 언젠가 내가 쥐뿔도 없는 살림에 마른행주를 쥐어짜듯 쥐어짜서 잔치를 열었지! 그것도 아주 크게 열었지! 분수에 넘치는 줄 모르고, 간이 배 밖에 나오는 줄 모르고 크게 열었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집안 미래의 대주(大主)를 위해서 아낌없이 열었지! 기분파도 아닌 내가 너무 기분이 좋다 보니 아까울 게 없었지! 그때 그 자리에 꼬맹이를 포함해서 동네 사람들이 참말로 많이도 왔지! 마당이 비좁을 정도로 많이 왔지!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귀가 멍할 정도로 떠들썩했지! 사람 수에 견주어 음식도 넉넉하게 장만했지! 소는 엄두를 못 내는 대신으로 돼지도 잡고, 닭도 두 마리나 잡은 까닭에 광주리마다, 소쿠리마다 고기가 주렁주렁 널리고, 장 단지마다 간장 된장을 대신하여 술로서 가득했지! 아방궁의 진시황제가 부러울까? 주지육림 속에서 천하일색의 달기를 품은 상나라의 주왕이 부러울까?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그날은 이상하게 내 가슴은 뚫어진 듯 마냥 허전했지!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오고 발 디딜 틈이 없으면 무얼 하나! 넓은 마당이 좁아터진들 무얼 하나! 그 많다던 흥은 다 어디로 갔는지! 북소리, 꽹과리 소리, 장구 소리가 제각각의 울림통을 떠나 하모니로 어우러지고 날날이(태평소)가 귀청 따갑게 ‘삘~릴~리! 삘~릴~리!’우는 데도 가만있었더니 이래도 가만있을 소냐고 보다 못한 징이 ”징~그~렁! 징~그~렁!‘하고 울데! 하지만 별일 이제! 무슨 까닭인지 당체 흥이 일지 않아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꼼짝을 않드만! 맨송맨송 싱겁기만 했지! 왜 그랬을까? 지금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당연히 있어야 할 한 사람이 없는 탓인가 싶었기도 하네!”하고 긴 한숨 끝에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그날 그 자리에 그 한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자리에 없기에 숨바꼭질을 하자는 줄 알고는 술래가 된 삼척동자 모양 사방을 들쑤셔 찾았지! 혹 놓친 곳이 있나 싶어 장독을 뒤집고, 마루 밑을 뒤지고, 잠자는 개를 두들겨 패서는 개집을 뒤엎어 콩을 고르듯, 팥을 고르듯 샅샅이 찾아도 없드만! 성질머리 고약하고 외통수로 늙어빠진 데다가 얼굴이라고는 온갖 풍상을 다 겪었는지 주름투성이에 뻐드렁이가 싯누런 할망구는 하나가 없드만! 땅속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없드만! 그래서인가 잔치고 뭐고 만사가 귀찮아 즐거움이라곤 없드만! 낙이라곤 없드만! 그 빌어먹을 할망구 하나가 뭐라고 가슴속으로 때아니게 시베리아 벌판으로부터 들이친 듯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데 얼마나 차고 시리 던지! 옷깃을 단단히 여며도 이빨이 따닥따닥 부딪치드만!”
“...!”
“없는 셈 치고 이자 뿌면 그만인 줄 알았는데 근데 그게 아니드만! 전날에는 조선간장 한 종지로도 맛나다고 뚝딱하던 꽁보리밥 한 그릇이었건만 그날따라 입안은 소 혓바닥 모양 깔깔한 하여 소태를 씹은 듯 쓰고, 소금 설렁설렁 뿌려 물에 헹구고 고춧가루 엄벙덤벙 흩뿌린 청방배추 겉절이에도 숟가락몽디(’몽둥이‘의 방언)가 부러질까 무섭게 밥술 떠서는 입꼬리가 찢어지게 먹었건만 고기반찬에 온갖 나물무침을 두고도 깨작깨작,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는 것도 모자라 목구멍은 공깃돌로 틀어막은 듯 답답하여 꿀물처럼 달다는 술 한 모금 제대로 넘기지 못했으니 참 별일이지!”
“성~님! 나도 보았어요! 똑똑히 보았어요! 성~님 말대로 앞산 너머로 별똥별이 기다랗게 꼬리를 늘여 떨어지는데 장관이데요! 시뻘건 꼬리를 길게 늘여서는 불타는 듯 지나가데요!”
“...!”
“성~ 님! 뭐~ 저라고 맘이 편했는지 아세요! 오매불망 새 생명의 축복을 함께해 달라고 나날이 축원 드렸었지요! 관세음보살님께 아침이면 아침마다 첫 새벽에 일어나 정화수를 떠 놓고 기원했지요! 진정 함께하고 싶다고요! 잔칫상에 숟가락 하나를 올리듯 하드래도 말이어요! 곁불을 쬐듯 하드래도 말이어요! 그러면 무얼 해요! 세월이 야속했던 걸요! 그런데 그놈이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누가 미주알고주알 고자질로 일러바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알았을까요? 어떻게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맘이 상했는지 어디 갔다 왔느냐며 죽겠다고 떼를 쓰잖아요! 돌을 입에 물어서 보란 듯 숨을 끊고 맥을 놓아버리잖아요! 그래 이 늙은이가 나잇살이나 먹었지만 노망끼가 도져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두 손 싹싹 빌며 등을 몇 번 쓸었더니만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마음을 돌려서 먹데요! 맹랑한 것, 쥐방울만 한 것이 지랄 맞게도 못된 제 할미를 닮았는지 성깔머리는 있어서! 이 담에 크면 밥은 안 굶을 거요! 떡하니 회전의자를 굴려 자리께나 차지할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