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의 마지막 장을 뜯으니 하얗게 눈이 쌓인 정겨운 산하(山河)가 등장한다.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도 어느덧 종점을 향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와중에서 연초부터 발발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으로 세계는 에너지와 식량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으며 심지어 핵무기의 위협과 공포에도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대양 육대주에서 예선을 거친 32개국 축구 선수들이 승부를 겨루는 카타르의 2022 FIFA 월드컵은 세계인들의 이목과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태극전사들은 온 국민의 열렬한 성원으로 예선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포르투갈에 역전승해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지난 5월에는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다. 공정과 상식을 좌우명으로 하는 윤 대통령은 청와대와 북악산을 국민에게 내주고 대통령 관저를 용산으로 옮겼다.
이어서 6월에는 대한민국 땅에서 우주로 가는 길이 드디어 열렸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성공함에 따라서 우리나라도 독자적인 우주 수송 능력을 확보하고 자주적인 우주 개발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13년 만에 이집트에 원전을 수출하고 이어 폴란드에도 최대 20조 원 규모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수주하는 쾌거를 이룩했으며, 국내 방산기업들은 폴란드에 25조 원 이상의 무기를 수출하는 실적을 올렸다.
올해도 K-문화의 힘은 강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미국 방송계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을 석권했으며 방탄소년단은 3년 연속해서 그래미 어워드 수상 후보로 지목됐다.
한편으로는 사고와 재난이 유난히 많은 해였다. 신축 중인 아파트가 붕괴되고, 역사상 유례없는 대형 산불이 발생했으며, 태풍과 집중호우로 엄청난 수해를 입고 창사 이래 처음으로 포항제철의 용광로가 멈추었다.
서울의 한복판 이태원에서 발생한 할로윈 축제의 참사에 온 국민은 넋을 잃었으나, 봉화 아연 광산에서 매몰된 광부들이 열흘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생환 광부들이 막장의 동료들을 위해 병상에서 쓴 ‘사고의 재발 방지를 호소하는 손편지’는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다가오는 2023년은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이다. 우리 민간 설화에서 토끼는 눈앞에 닥치는 위기와 난관들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지혜롭고 용의주도한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토끼의 지혜와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자세로, 새해는 정부와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재난관리에 온 힘을 쏟아 가정과 사회, 국가에서 무사고(無事故), 무재난(無災難), 무재해(無災害)가 이룩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