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01)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01)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1.30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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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남없이 침통한 얼굴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는 하늘을 향해 긴 한숨이다
지붕은 텅텅 뚫어져 하늘은 새파랗고 그릇마다 빈 그릇 뿐이드만요
술집 작부 주제에 오늘따라 요놈이 손모가지는 어째서 이리도 야박하고 비싸게 구는지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동토(凍土)의 땅을 휘둘러 그 어디서 구해 왔을까? 이마가 번지르르하게 흐르는 땀의 대가치고는 그 양이 볼품이 없다. 봉분 크기에 비에 한참이나 모자라다 보니 소가 풀 뜯어 먹은 자리처럼 듬성듬성하여 성글다. 하지만 이 겨울, 모든 것이 쩡쩡 얼어붙는 엄동설한에 어쩔 것인가? 자잘하게 쪼개서는 이쪽이다. 저쪽이다며 뗏장이 입히고는 삽으로 두들긴다. 발로 밟는 등으로 마무리다. 그런 다음 바짓가랑이에 묻은 검불이란 흙을 팡팡 털고서는 음복이란 명목 아래 무덤가로 오종종 모여든다.

묵계처럼 동네 사람들이 손을 비벼 둘레둘레 앉았지만 한참이나 말을 잊었다. 하늘은 더없이 청명하여 맑았으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내남없이 침통한 얼굴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는 하늘을 향해 긴 한숨이다. 허공으로 하얗게 흩어져가는 담배 연기만큼이나 허탈한 표정이다.

그도 잠시 계좌주위를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동네 사람들은 사람마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선인(善人)이란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그들 살아생전 할 수 있는 한 모든 인정을 베풀었다고 입에 침이 마를 새가 없다. 된장도 간장도 달라는 대로 퍼주고, 따뜻한 국물에 반찬도 주고, 쌀도 아낌없이 나누고 겨울을 맞아서는 소먹이로 쓸려고 아껴 갈무리했던 볏단도 넉넉하게 주었단다. 자비로운 보살님의 마음씨를 닮아 텃세도 부린 적이 없다는 동네 사람들은 크고 작게 나란히 솟은 봉분을 두고는 입을 다물었다. 어째서 정이 넘치는 이 평화로운 동네에서 가족이 몰살로 얼어 죽었냐는 질문을 두고 고개를 숙였다. 관세음보살이 현신하고 인심 풍부하면 뭣 하냐는 거다. 엄연하게 객사한 일가족이 있는데! 그것도 사고무친의 타향땅에서 지독한 굶주림 끝에 얼어 죽은 마당에는 유구무언으로 동네의 수치란다.

“제 놈이 게을러터져서 얼어 죽을 팔자였겠지! 우리네가 뭘 잘 못 했게?”하는 동네 사람들은

“그나마 우리 같이 착한 사람을 만났으니 망정이지!”하고는 평소 바늘 한 땀 꽂을 땅이 없어 하던 뜨내기 주제에 거적때기일망정 수의로 삼아 내 땅입네 한자리 차지하여 편하게 누웠으면 그만이란다. 공수래공수거라고 이승에서 손해 볼 것 없어 감지덕지란다. 동네를 들어 들짐승이나 까마귀밥 신세를 면해 편하게 잠이 들었으니 그만하면 남는 장사라며 주저리주저리 나불댄다. 불행 중 다행 아니냐며 애꿎은 술잔만 기울여 죽은 사람만 탓한다. 그날 이후 동네 사람들은 술에 취할 때면 으레 그들 가족사를 술안주로 삼았다. 착한 사람들로 가득한 동네에서 어째 굶어서, 그것도 얼어 죽는 통에 동네 창피를 준다며 원망 아닌 원망이 한숨으로 늘어져만 간다. 동정보다는 원망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넘치는 것은 모자람보다 못하다고 했다.

도가 지나쳤던 동네 사람들의 언행은 맨재기(융통성 없는 사람이란 뜻의 경북지방 방언)같은 동네 청년에 의해 한동안 막을 내렸다. 그날도 동네 사람 몇몇이 술에 취하자 얼어 죽은 가족사를 하나씩 물어 술상 위로 소환이다. 굴비꾸러미 꿰듯 줄줄이 엮어서 올린다. 빈 입에 쫄깃쫄깃한 안줏거리로 술맛을 돋우고 있었다. 감칠맛에 술잔을 기울여 한창 열을 올려 원망에 접어들 즈음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한쪽 구석에서 죽은 듯 술잔을 기울이던 그가 분연히 일어섰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주시하지는 않았다. 늘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그였는지라 여느 날처럼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한데 예상과는 달리 술상 앞으로 불문곡직 다가들더니

“무슨 보살에 천사 타령으로 착하기는 개~뿔! 철면피에 개차반 같은 잡것들이 죽어 땅속에 들어서 보고 듣는 이가 없다고 말 하나는 번지르르하게 잘도 하네!”하며 발걸음도 휘청, 좌중을 둘러보는데 술꾼 중 하나가

“어~허~ 요놈 봐라! 어디서 정신이 바짝 들게 귀싸대기라도 한데 올려붙였나! 비싼 술 처먹고는 예서 괜한 시비네! 야~ 이 등신 같은 놈아~ 형님들 앞에서 재롱잔치 그만 떨고선 다치기 전에 그냥 집으로나 가거라!”하는데 옆으로 눈을 흘겨 가소롭다는 듯 삿대질로

“아재~ 아재가 그렇게 착하고 선해요? 털 난 양심에 손을 얹고도 그 사람들을 두고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야 물론이지! 그래 이놈아~ 내는 하늘 두고 한 점 부끄럼도 없이 착하게 살았다고 자부한다 왜?”

“그래요 그럼 하나만 물어봅시다”

“오냐! 하나든 열이든 있는 대로 물어봐라! 동네 사람들을 다 두고 물어봐라! 법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다들 칭찬이지!”

“흥~ 그럼 왜 그들이 굶어 죽었어요? 왜 얼어 죽었어요?”

“꼴에 술주정은? 그야 내 알 바가 아니지! 게으름뱅이 주재에 죽을 때가 되어서 죽었겠지!”

“그래요! 그래서 아재가, 당신들이 안 착하다는 거예요! 아주 질 나쁜 사람이라는 거예요! 알기나 알아요!”

“뭐야 이늠의 자슥이 보자 보자 하니까 우리를 보자기로 아나? 그래 우리 뭘 그리도 잘못했게? 내 놈에게 원망을 들을 정도로 잘못했게?”

“그래요! 그럼 아재 말대로라면 우리 동네 사람들은 죄다 천사처럼 착하고 보살님처럼 한정 없이 베풀며 살았다는 거네요! 가식으로 똘똘 뭉쳐진 우리 동네가 말이에요!”하고 한바탕 호탕하게 웃고는

“한데 말입니다. 내가 그 움막을 처음 들어갔을 때 볏단 몇 단이 모자라 지붕은 텅텅 뚫어져 하늘은 새파랗고 그릇마다 빈 그릇 뿐이드만요! 먹을 꺼리라곤 얼어붙은 물 한 그릇이 달랑으로 무시로 베풀었다는 그 많티 많았다던 볏단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된장에 간장은? 쌀 됫박은? 아재들은 도대체 그들을 위해 뭘 얼마나 내어놓고는 날이면 날마다 모여앉아 천사 타령에 보살 타령입니까?”하더니 목이 타는지 누구 잔인지도 모르게 술상에 놓인 술잔 중 하나를 덥석 잡아서는 목젖이 울렁울렁 단숨에 들이키더니

“흥~흥 텃새를 안 부렸다구요? 지나가는 똥개가 웃다가 간질병이 도져 나 죽네 나자빠지겠네! 흐~흐흥! 웃겨 죽어! 나는 당체 그들 가족이 이웃을 찾아 마실 다니는 것은 고사하고 동네를 마음 놓고 돌아다니는 꼬락서니를 못 봤네요! 코흘리개조차 똥개 다루듯이 작대기를 휘둘려 이유 없이 두들겨 패고는 눈앞에 없다고 지금에 와서 오만 생색에 생색은, 허~허! 기가 차서 말이 다 안 나오네요! 그리고 철모르는 개구쟁이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잘한다, 잘한다고 부추기면 부추였지 회초리를 들거나 나무라는 꼴을 못 봤네요!”하고는 아니꼽고 더럽다는 듯 목청을 한껏 끌어올려서는 ‘퉤’하고 싯누런 가래침 한 덩이를 재떨이에 뱉고는

“가련한 원혼의 혼령이 저승 문턱에서 내려다보고 있네요! 서럽다고 울고 앉았네요! 시리다며 벌벌 떨고 있네요! 배고프다고 쪽박을 내밀고 있네요! 근데 뭣이라고요! 무식함 놈이 용감을 떤다고, 후안무치(厚顔無恥:얼굴 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운 줄을 모름)도 유분수지! 낯가죽에 겹겹이 철판을 땜질로 깔았나? 돼지비계 모양 두껍기도 하지!”하고는 뒤로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린다. 상종 못 할 문둥이(‘나환자’를 얕잡아 이르는 말)소굴 인양 우당탕 문을 닫아 버린다.

매가리((‘맥(脈)’을 속되게 이르는 말)없이 말라비틀어진 김치 동가리에 술잔을 기울이던 그가 만나 싶을 정도로 찬바람이 쌩한다. 맹한 놈의 술기운이라 치부하기에는 생생하게 틀린 말이 없다. 멍하게 문이 여닫힌 자리로 눈길이 향할 때 어둠 속을 점점이 밝혀 성성한 눈발이 난분분 날아든다. 그즈음 술청에 앉아 맨재기의 하는 수작을 왼손바닥으로 턱을 괴고는 멍한 눈동자로 바라보던 주모가 화들짝 반기듯

“어머나~ 낼모레가 땅속 개구리가 풀싹 뛴다는 경칩으로 봄이 지척에 이르렀건만 세상이 제정신이 아니라 그런지 날씨마저 미쳐서 돌아가나 보네! 이 밤을 들어 서설(瑞雪)이 다 내리고! 네 이럴 줄 알았다면 따뜻한 국물이라도 한 사발 더워서 권주가나 불러 장단이나 맞출걸! 자고로 술잔이란 우둠지를 넘쳐 쏟아질 듯 찰랑거려야 가슴으로 태평양을 품은 듯 호연지기가 일고, 임이란 갈비뼈가 와지끈 으스러지도록 오지게 품어야만 속정이 샘솟듯 하고, 주름투성이 호호백발에 늙어빠진 장모가 따르더라도 여자가 따르는 잔에서 술맛이 달콤하다고 노는 손에 술이라도 한잔 따라서 권할걸! 물장사 기십 년에 닳고 닳아서 엽전 몇 푼에도 헤픈 웃음이나 칠푼이처럼 비실비실 흘리고, 치마저고리라고는 낙동강의 나룻배처럼 겉치레로 입은 꼬락서니에 개결(介潔)한 계집년도 아닌 내가, 되지도 않은 니나노 가락이나 돼지 멱 따는 소리로 읊어 대는 술집 작부 주제에 오늘따라 요놈이 손모가지는 어째서 이리도 야박하고 비싸게 구는지! 내 듣다 듣다 오랜만에 이쁜 소리를 임 반기듯 듣고 보니 속이 다 시원하네! 뉘라고 있어 요로코롬(‘요렇게’의 방언) 아름답고 달콤한 소리를 예서 읊어나 줄거나? 홍안이 발그스레 들려나 줄거나! 평소 맨지락해 보여도 여~영 숙맥은 아닌가 보네!”하고는 닫힌 문을 열고는 한참이나 아쉬운 듯 어둠 속을 향해 손을 흔들어 호들갑이다. 그 모습을 눈꼴이 시리다는 듯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술꾼들은 그날 이후 스스로 낯짝이 간지러운지 쉬쉬하며 말문을 닫아 버린다. 하지만 맨재기의 술주정 몇 마디에 쉬 가라앉을 사연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장마철 잡초 자라듯 삐죽이 고개를 쳐들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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