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들이 비가 오기를 염원하는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오는데 이유는 인디언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혹자는 ‘인디언 기우제 정신’을 좋게 평가해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이루고자 함을 간절하게 바라며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이루어진다’고 하기도 한다.
작금의 검찰과 민주당 대표 간의 싸움에서 아마도 검찰의 기우제가 끝을 보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정부에서 ‘조국’ 이라는 인물이 결국에는 기우제의 비를 맞은 것과 같이 왕창 소나기를 맞을지도 모르겠다. 진정으로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눈높이에서 볼 때 부끄럼이 없다고 한다면 할복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검찰의 기우제를 막아내지 않는다면 끝은 폭우로 젖을 것이다.
검찰은 갈 데까지 가다 보면 결국에는 소설을 쓰던 사실의 역사를 쓰던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숨겨진 진실이 과연 어떤 내용인지 모르기는 해도 살아있는 권력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익히 아는 바라서 종내는 힘 있는 자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는 예감을 지울 수 없다.
경찰 조직인 국가 수사본부장 임명을 두고 지명자 자식의 학교폭력과 사법적 대응에 대하여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에 대한 반응을 보면 그들만의 살아 있는 권력을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임이 분명하다. 한때 검찰조직의 같은 부서에서 일했을 만큼의 사이인데도 개인적인 관계가 없다고 선을 긋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냉혹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거꾸로 사실관계를 몰랐을 리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국민을 아주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그들만의 시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을 가진 자의 횡포가 얼마나 가증스럽고 교묘하며 심지어 악랄하기까지 한 무자비의 행태를 보여주는 실증의 사례이기도 하다.
이재명의 복잡한 사정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여당대표 후보자도 좌불안석이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문제는 누구는 괜찮고 누구는 안 된다고 하는 잣대다. 세상만사가 천태만상이고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며 내로남불의 나팔소리가 유령처럼 떠다니고 있다.
3.1 절에 대통령의 축사를 두고도 극명한 해석이 난무하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고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의 일을 있는 대로 기록한 사실이다. 한 가지 사실을 두고도 이현령비현령이다. 자의적인 해석이기 때문이다. 자의(恣意)는 마음대로를 뜻한다. 서로가 아니라고 우겨대고 맞다고 우겨대고 있다.
우리는 왜 하나의 사실을 두고도 이렇게 선명하게 갈라서는가? 훌륭한 지도자가 없어서? 법이 없어서? 교육이 부족해서? 살만하니까? 자기만 똑똑해서? . . . . 누군가가가 죽창과 개딸을 탓하는 사이 유관순 같은 애국의 딸들이 ‘진정한 정치가 제자리에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물결이 들풀처럼 스멀스멀 확산되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제발 정신들 차렸으면 좋겠다.
故 山南 김동길 선생의 일갈을 기억한다. ‘이게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