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장사. 옛날 같으면 자식들 혼사길도 막힐, 쉽게 말해서 술집주모를 원대한 포부로 아들이 원해서 몇 년간 했다. 아들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이 일을 해보려고 하는 걸 말리다가 수락했다. 점을 보았더니 내 이름으로 해야 잘된다고? 왜냐면 내가 O형에다 퍼주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사업자 등록을 하고 위생교육도 받고 시설도 골고루 갖추었다.
수성경찰서 골목 먹거리 골목, 초저녁에는 일반인들 퇴근길에 한 잔, 몸담은 탁구동호회 모임 정기적 뒷풀이 단체손님, 10시 넘는 시간대에는 학원 골목이라 학원장들이 들려주었다. 1917년 가을에 시작할 때는 자리가 없어 돌려보내기도 하고 홀에 알바도 쓰고 주방 아줌마도 둘이나 쓰고 서울에서 대학교 다니는 손녀 둘이 토요일 집에 오면 가게일을 도왔다. 이대로라면 뭔가 될 것 같았다.
2019년 2월 며칠 쯤인가 대구에 코로나가 나타나고 신천지교회가 발칵 뒤집히면서 손님이 얼씬하지 않았다. 유통기한 넘은 막걸리를 무더기로 하수구에 쏟아버리고 농사짓는 친구를 불러 거름하라고 차떼기로 실어주기도 하면서도 막걸리집을 꾸려나갔다. 소상공인 싼 대출도 받고 한달에 150만 내던 집세도 30만원씩 깎아 주었다.
최근에 불어닥친 금리인상은 견딜 수가 없어서 고민 끝에 접기로 했다. 며느리는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다시 열고 아들은 두어 달 쉬고 나서 뭔가를 할 것이라 한다. 그간에 손녀 한 명은 졸업하고 직장을 잡았고, 둘째는 이화여대 기숙사에 있으면서 휴일에 알바도 하고 중학생 과외지도도 하느라 집에 올 겨를이 없다. 살아가면서 시련은 있기 마련. 지난 2월 28일자로 시원섭섭하게 가게를 정리했다. 인터넷에는 안중에 대한 글이 많이도 올라와 있어서 그분들에게도 감사 올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