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돌회 봄 마중
대구 문인협회 병술생 문인 12명이 4일 가창 골로 봄맞이를 떠났다.
1946년 갑장으로 16명의 시인. 수필가가 참여하고 있다.
회원 중 누군가 책을 출간하면 방장이 소집령을 내려 득달같이 모여 출판 기념회를 연다.
갑장들의 모임이라 격의 없이 말도 편하게 하고 허물이 없어서인지 모이면 왁자지껄하다.
80 고개를 목전에 둔 나이라 곰삭은 세월이 닳고 닳아서 모난 돌이 둥글어져 몽돌이 되었다
모임 이름도 몽돌회다.
해마다 하던 몽둘 봄 마중 나들이를 코로나 팬데믹으로 3년 만에 가졌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는 게 우리 인생이다. 작년에 몽돌 벗 박 방희 시인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대구 문학관에서 대구 사투리로 여는 시 낭송회가 있었다.
황인동벗이 참여하여 박방희를 그리는 시를 읊었다.
칭구 야/황인동
(전 대구 문인협회 수석부회장
청도 군수 대행)
- 고 박 방의 시인을 그리며
니가
소주 한 빙 들고
어무이 미(墓)에 댕기오는 꿈을 꿨다며
꿈 이바구 하디
그뒤 우찌된 일로
벌씨러 열흘째 , 내가 보낸 안부는 삼키뿌고
컴컴한 적막만 돌리 보내노
그래가
날이 수타 지나 가뿌니까
내 생각 머리에는
자꾸 소독 내미가 나네
빙(甁) 들고 갔다 카디
빙(病) 들었는 건 아이가
이 종낵아 !
퍼뜩 이바구 쫌 해보래이
혹시라도 빙(病) 걸맀다면
치료 잘 받고
얼렁 시부지기 일어나
니 잘 묵는
정구지 찌짐 묵으러 가재이
기다리꾸마
뒤이어 방종현 벗이 잇다라 참여했다.
칭구야 보고잡다
-고 박 방의 시인을 그리며 /방종현
(대구 문인협회 부회장
시니어 매일신문 취재부장)
방희야 보고잡다
니캉 내캉 인동이캉
서이서
도언결이(도원결의)는 안해도
3총사로
마이 어불리며 돌아댕깃제
니는 마술을 잘 부링게
고마 숨고 인자 마
장막에서 나온다
. . . . . .
그리데마 을매나 좋겠노
니가 하 보고자바서
억지 소리 해봉기라
인동이나 내나 얼매 안있으몬 니 있는데로 갈끼다
3총사 어불릴 자리 잘 잡아놔라
이곳엔 보미(봄이) 오고있다
3월 4일 몽돌회 항꾸이 모디서 가창골로 봄마지매 간다.
귀가 건지럽거등 니 이바구 하는 줄 알아레이
방희야 보고잡다.
가창 골에서 봄 마중을 하고 구르미머무는 카페에서 대구에서 꽤 알려진 김일수 교수의 섹소폰 연주를 듣는 호사도 누렸다.
헤어지며 유가형 시인이 자작시를 읊었다.
친구들아 봄 마중 가자 / 유가형
도랑 건너 남쪽으로 봄 마중 가자꾸나.
달걀 하나 삶아 왼쪽 호주머니에 넣고
도시락엔 꾹꾹 눌린 꽁보리밥에 무장아찌 넣어
사각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메고
단단한 알사탕 나 한번 네 한번 빨아가며
말표 고무신이 벗겨지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손 꼭 잡고 봄 마중 가자꾸나.
이마 넓은 해님이 쏟아내는 따뜻한 선혈에
어름 낀,
도랑은 허리춤이 헐렁하다고 졸졸졸졸졸 말을 건네고
햇볕의 실 발을 끊어 먹으려
몰려드는 오글오글오골오골 새끼 피라미들!
흙을 젖가슴처럼 꽉 움켜쥐고 묻은 햇볕의 올을 빠는
까만 베레모 쓴 빨간 애기풀들
멀리서 막 눈뜨는 매화 산수유
봄이 왔나 보다 봄이 왔나보다
친구들아 봄 마중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