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만나다] 정순식 대경패션조합 이사장
[CEO를 만나다] 정순식 대경패션조합 이사장
  • 강효금 기자
  • 승인 2023.04.25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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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렬도, 한글 등 모티브
MB정부 시절 靑 판매되기도
대구 패션 사양산업은 아냐
해외전시회 판로개척 기회
우리 전통문양을 모티브로 현대화 작업을 하는 (주)빗살무늬 정순식 대표. 이원선 기자
우리 전통문양을 모티브로 현대화 작업을 하는 (주)빗살무늬 정순식 대표. 이원선 기자

섬유 산업은 경제 호황기에 국가의 핵심 기간산업으로 매년 1백억불 규모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대구는 이러한 섬유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국가 경제는 물론 대구 지역 경제 발전을 이끈 주체였다. 섬유는 여전히 대구를 지탱하는 중심 산업으로써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이 지난해 12월에 발간한 ‘2022 대구경북 섬유산업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대구 제조업 중 섬유 산업의 비중이 10~2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섬유 산업이 쇠퇴했다고 하지만, 80년대와 지금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섬유 패션 기획 전문 회사인 ㈜빗살무늬 운영하며, 대구경북패션사업협동조합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순식 대표(61)의 이야기다.

“과거에는 인건비 비중이 큰 ‘노동집약적 산업’이었다면, 이젠 섬유도 하이테크 산업,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세계 4대 패션위크라고 불리는 영국 런던과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파리를 다녀왔다고. 그곳에서도 많은 변화를 감지했다고 전한다.

이탈리아 명품을 생산하는 업체에서 유명 화가의 작품을 스카프로 제작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주문서에 스카프의 마무리작업을 손바느질인 ‘공그리기’로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오트쿠튀르 같은 고급화되고 차별화된 우리만의 콘텐츠를 개발한다면, 섬유시장에서 우리가 거둬드릴 수 있는 수익은 상상 이상일 것이라 정 대표는 말한다.

전통 문양을 현대화하는 작업에 몰입

“(주)빗살무늬는 로고는 많은 뜻을 담아 만들었습니다. ‘빗살무늬 토기’를 모티브로 해서 지평선에 세워진 삼각형의 토기 그 위에, 토기에 담길 듯 말 듯 작은 빨간 원은 ‘태양’과 ‘씨앗’을 나타낸 것입니다. 옛 선인들이 그 그릇에 태양의 따뜻함과 씨앗을 담았듯, 우리 전통의 얼을 담아내자는 저의 다짐이자 소명을 형상화했습니다.”

정 대표는 우리 전통 문양을 모티브로 해서 현대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20여 년 전 동생과 함께 회사를 열면서 애플에서 만든 ‘매킨토시’ 컴퓨터를 일본에서 들여왔다. 컴퓨터라는 말 자체도 생소하던 그때 ‘디지털 나염’ 방식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비싼 비용과 느린 작업 속도는 걸림돌이 되었다.

“처음 프린트된 제품을 보고 ‘와’ 하던 사람들이 하루에 한 마를 생산한다는 얘기에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넥타이와 스카프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정 대표의 생각은 적중했다. 깔끔하고 세련된 색상과 이미지, 주문량이 늘어났다. 하지만 전통문양에 대한 연구도 계속했다. ‘귀면’이라 해서 귀신이나 도깨비 문양을 잘 그린다는 스님을 찾아가 직접 사진을 찍고 배우며, 그걸 모티브로 제작하기도 했다. ‘우리의 것’을 현대적 의미로 구현해 내는 작업은 쉼 없이 이어졌다.

청와대에서 판매된 빗살무늬표 넥타이

경주 문화엑스포 행사 때 귀빈용 넥타이를 납품했다. 독특한 문양이 눈길을 끌었는지 여기저기서 문의가 들어왔다.

“어느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청와대’라고 하는데 거짓말인 줄 알았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때였다. 서둘러 들어갔더니, 경기도청을 통해 납품하는 상품을 봤다며 청와대 직원들이 사용하는 매점에서 판매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청와대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서 ‘책가도’, ‘화성행렬도’, ‘한글’ 등을 모티브로 한 넥타이를 만들었다. 이 대통령 남은 임기 3년 반 동안 제품을 판매하며, 여러 곳에서 제의가 들어왔다. ‘청와대’에서 지인에게 선물 받았다며 ‘관세청’에서 연락이 왔고, 전국 도처에 납품 기회가 주어졌다. 패션은 콘텐츠산업으로 가야하고 문화산업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정 대표의 소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대구경북패션사업의 리더로서의 책임

코로나 시기는 섬유업계에는 암흑의 시기였다. 회원사를 중심으로 한데 뭉쳐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때 생각한 것이 ‘디지털 패션쇼’였다. 무언가를 시도해야 했다고 표현하는 정 대표.

디지털 패션쇼를 통해 왕래할 수 없었던 세계 여러 나라에서 주문받고 판매로 이어지는 글로벌 시장을 체험했다.

드림모델도 빠질 수 없는 사업이다.

“드림모델의 원래 취지는 모델 체험입니다. 신청하면 워킹, 포즈 등 모델 교육을 받으며 ‘프로필 사진’도 찍고 하나의 좋은 추억으로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동아리에서 단체 신청을 하고 참가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신청자는 연로한 네 명의 친구였다고. 반짝이 옷을 입고 멋진 자세를 잡으며 활기차게 사진을 찍던 멋쟁이 시니어들의 기운은 패션센터를 즐거운 기운으로 가득 채웠다.

‘직물과 패션의 만남전’에서 멋지게 피날레를 장식한 백산자카드와 협업한 천상두 디자이너의 작품. 대구경북패션사업협동조합 제공
‘직물과 패션의 만남전’에서 멋지게 피날레를 장식한 백산자카드와 협업한 천상두 디자이너의 작품. 대구경북패션사업협동조합 제공

대구국제섬유박람회(PID)을 방문한 국내외 바이어, 프레스 및 관계자와 브랜드별 초청고객을 대상으로, '2023 직물과 패션의 만남전'도 개최했다. 직물과 패션의 만남전은 대구지역 소재기업에서 개발한 신소재를 활용, 지역 패션디자이너와 협업하여 개발한 패션의류 완제품을 바이어 및 관계자에게 제시하는 트레이드쇼 성격의 패션쇼다.

정 대표는 “이번 2023 직물과 패션의 만남전 패션쇼를 통해서 상호 윈윈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며, “참가한 디자이너들이 패션쇼에 선보인 상품들은 하반기 해외전시회 참가 지원을 통해 판로개척 기회가 주어진다”라고 얘기했다. 그는 패션산업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며,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미래 신산업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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