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시집! 시집 그거 안 갈래! 엄마 나 엄마랑 평생 이렇게 살면 안 돼!
영 마뜩찮은 표정이다. 숙였던 고개를 들어 곁눈으로 힐끔 쳐다보고는 입을 삐죽이 내민다
“그럼 그렇지 인간 만사가 다 그렇지!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듯 모든 것이 완벽할 수야 없지! 색색의 온갖 능라(綾羅)를 몸에 걸치고는 호강에 뻗쳐 몸이 영화스러운데 그만한 것쯤은 능히 감당해야지! 그만한 마음고생마저 없다면 그건 신선의 세상이지 어디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라 말할 수가 있을까?” 하며 머리를 흔들고는 사주단자를 본래의 자리에 고이 갈무리하고는 방문을 여는데 여전히 마당이 좁다 바장거리고 있는 동네 아낙네들이다. 할머니가 섬돌 위에 놓인 꽃신은 뒷전으로 고무신을 끌다시피 꿰어 신으며
“이런 이~ 칠칠치 못한 여편네들아~ 아~ 저녁들 안 할 거야! 오늘 저녁은 식구들을 죄다 굶길 셈인가? 때가 늦었건만 저녁밥 지을 생각은 않고 다들 여기 모여 왜들 이러는가? 얼굴 반반한 처녀를 어찌해볼 고약한 심성을 품어 기다리는 왈짜패 모양들인가?” 하고 좌우를 휘둘러보는데 동네 아낙네들을 대신하여 어머니가
“어머님! 어머님께서도 왜들 이러고 있는지를, 내심으로는 다 알고 계시면서 어째 남 보듯 그러신데요!”
“어멈아 내가 알기는 뭘 안다고 그러니? 오늘따라 참말 별일이다. 아~ 감골댁아 자네는 또 왜 그러고 있는가? 그리고 이 사람들은 다 뭔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집에들 안 가고 마냥 이렇게들 서 있을 텐가? 벌써 해가 저물고 있구먼!” 하며 어머니와 감골댁을 돌아보며 힐책하듯 묻자 감골댁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그거야 철수 어미의 말처럼 성~님이 더 잘 알면서!” 하고는 물끄러미 할머니의 입만 쳐다보는데
“오라 내가 무당 집에 다녀온 것 때문에 다들 이르고 있는 게로구나! 지난번처럼 군입 다실 음식이라도 얻어 왔는가 싶어 이러고들 있는가? 하지만 오늘은 큰굿이 없어서 일 없네! 하긴 지난번에 이어 근자에 들어 좀 잦았지! 그렇다고 그렇게 생소해 보이던가? 한때는 내 집 드나들 듯 드난살이를 하듯 드나들던 무당집을 두고 오늘따라 별스럽게 왜들 이러는가?”
“아따 성~님은 우리가 그 때문에 다들 이러고 있다 여깁니까? 그만큼 애를 달구었으면 인자 그만 큼만 하이소! 고만 속 태우고 속 시원하게 털어놓으소! 언제 알아도 알 것을 뭐에 감추고 그래 샀소! 같이 알고 같이 걱정하는 것이 이웃사촌이제 괜히 이웃사촌이겠소! 좋든 나쁘든 이 마당에 흉이 될 것도 흠이 될 것도 없잖아요! 그간 나와 여기 이 사람들이 끝순이 신랑감을 찾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이유도 다 그 때문인 데요!” 하는 감골댁이 야속하다는 표정으로 정색을 하자
“근데 이 년은 이 중요한 날에도 어디를 천방지축으로 쏘다는지!” 하고는 주위를 둘러 어머니를 보고는 목마르다며 물을 청한 뒤
“이야기하고 자시고가 없네! 앞으로 자네들이 나를 많이 도와주어야 할 것 같네! 내 저것이 태어날 적부터 귀신형상에 밤낮으로 이불을 뒤집어써서 누웠을 적에는 인간 구실이나 제대로 하겠나 싶었는데! 한데 저년이 다 늦게 웬 놈의 대 복을 주렁주렁 달았는지 언감생심 부잣집 작은 마나님이 된다네 글쎄! 살다 살다가 이렇게 왕청스러운 경우는 겪다가 겪다 첨일세!” 하는데 어머니가
“그럼 철수 고모의 혼사가 그 집으로 정해졌어요? 그 집에서 승낙했어요?”
“오냐 그렇게 됐다. 안 그래도 내 오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는데 혼수 장만에 수월찮게 재물이 소용될 터인데! 앞으로 그 일이 크게 걱정이구나!”
“어머님 그런 일이라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 아드님이랑 상의해서 이리로 저리로 융통을 하면 또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오냐 말이라도 고맙다. 그간 그 고생 끝에 보릿고개 때도 배는 안 곯아 이제야 무난하게 사나 싶었는데 못난 시누이 때문에 너희 내외가 그동안 뼈 빠지게 기울인 공이 십년공부도로아미타불이 되는가 싶어 그저 미안하구나!”
“어머님 그런 말씀 마세요! 말뿐이 아니라 땅을 팔고 집을 팔면 또 어떻게 안 될까요! 한 가족인데 뭘요! 달랑 하나 있는 시누인데 그만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하는 것으로 때 이른 걱정은 일 단락이다. 뒤이어 할머니가 지금까지의 세세한 사연들을 자자구구, 질펀하게 펼쳐낸다. 다들 귀를 쫑긋 세워 할머니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서산으로 해가 넘는 줄도 모르고 정신 줄을 놓는다. 삽짝으로 고모가 들어오는지 백구가 반갑다고 앞발을 치켜들고는 낑낑거릴 즘에 이르러
“에구~머니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되었네!” 하는 호들갑으로 줄줄이 집을 향해 달음질이다.
다음날부터 할머니와 고모의 신경전이 재발 되었다. 할머니가 막무가내 재 너머 부잣집, 김 씨 도령과의 혼례 날짜가 잡혔다며 고모를 방안에 끌어다 앉힌 것으로 시작이다. 하지만 고모도 그간 할머니와 옥자를 비롯하여 친구 등을 통해 마음속으로 시집이란 단어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지만 여전히 별 흥미가 없다는 표정이다. 처음 얼마간은 할머니의 지청구 같은 꾸지람을 앞에 고분고분 따르는가 싶더니 열흘을 못 넘겨 사지가 뒤틀린다는 듯
“엄마~ 나~ 시집! 시집 그거 안 갈래! 엄마~ 나 엄마랑 평생 이렇게 같이 살면 안 돼! 시집이란 게~ 그거 뭐가 이렇게도 지겹고 골치가 아파!” 하더니 방문을 걷어 차버린다. 할머니가 기가 차는 중에 고모의 그림자를 사려서 열린 방문을 바라보며
“저런 저 발칙한 년 같으리라고! 서방님 너른 품에 한 번 안기고 나면 늙고 병들어 냄새난다며 이 어밀랑은 헌신짝 버리듯 버릴 것이,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함부로 내지르는 말본새 한번 보소!” 하며 고모의 미래를 생각하는데 이태를 못 넘겨 시집에서의 소박은 따다 놓은 당상처럼 여겨졌다. 시어머니의 눈매에 서린 매서움에 영문도 모르고 쫓겨 오리란 것은 필연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한편으로 할머니는 무당이 시어머니 자리인 마님을 향해 향후 마음을 어지간히 넓게 써야 한다는 말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것도 같았다. 어미야 본래부터 어미인지라 이래도 오냐! 저래도 오냐 하여 있는 흠도 감추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시어머니 입장은 엄연히 다르다. 과거를 일일이 들추는 것은 당연지사, 없는 흠도 일처럼 만들어서 따따부따 따지는 자리다. 그렇게 앙숙 관계를 형성하는 시어머니 자리인 만큼 며느리의 방종을 어찌 가만히 지켜만 볼 것인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고모의 행복을 위해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 할머니는 다음 날로, 다음 날에도 연신 고모를 붙잡아서는 다그친다.
배우네, 못 배우네 하여 할머니와 고모의 밀고 당김이 엎치락뒤치락 계속되는 가운데 함진아비가 삽짝을 향한다는 소식이 시시각각으로 날아든다. 이미 기별을 받은 터라 집안은 기름 타는 냄새와 갖가지 양념 냄새로 진동을 하는 가운데 가마솥으로는 살집이 통통한 암탉도 두어 마리 고아진다. 모처럼 만에 맞은 잔치를 두고 일을 핑계로, 호기심을 핑계로 동네 아낙네들이 마당으로 골목으로 지싯지싯 얼굴을 내밀어 붐빈다.
뒤를 따라 그동안 일등 신랑감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김 아무개가 함진아비를 앞장으로 썩 하니 마당으로 들어선다. 헌칠한 키에 시원스럽게 생긴 얼굴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머릿속에 든 지식이야 대학물에 한량노름이 참인지는 겪어보지 않고, 겉치레인지 시험을 치르지 않은 다음에 알 수 없겠지만 신언서판(身言書判) 만은 남에게 뒤지지 않아 보인다. 어찌 되었건 한눈에도 늠름한 풍채에 입이 함지박만 해진 동네 아낙네들이 제각각
“나는 우리 신랑이 인근서 최곤 줄 알았는데~ 호호호, 오늘에야 사람 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네! 시방 보니 헛똑똑이로 살은 갑네! 저 서글서글한 눈매를 보니 절로 가슴이 울렁울렁, 우리 신랑보다는 서너 곱으로 나아 보이네~ 이마가 훤하고 코가 큼지막한 것은 그렇다 치고, 꾹 다문 입술이 후일 한자리를 꿰찰 상으로 끝순이 저게 느지막하게 마님에 사모님으로 아주 복이 터졌네!” 하고 인물평을 곁들이다가는 하나둘 돌아가고 밤을 맞아 고모와 김 서방이 나란히 하여 앉았는데 고모는 영 마뜩찮은 표정이다. 숙였던 고개를 들어 곁눈으로 일별하며 입술을 삐죽이 내민다. 우리 집에는 어째서, 누가 있어 반긴다고, 왜 왔냐고 투정질을 하는 모양새가 다분하다. 하지만 고모부, 김 서방은 불그스레 상기된 얼굴에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거린다. 그 모습에 애가 단 할머니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저년 저 맹랑한 년! 저런 저 덜떨어진 년 같으니!” 하는 마음 한편으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듯 절로 찾아든 복인 줄도 모르고, 좀 웃어 주잖고? 아무리 애교가 메주라도 그렇지, 단순호치(丹脣皓齒)를 살짝살짝 열어가며 가식이라도 좋아 야들야들 예쁘게 보여 주잖고?” 하는데 안달복달로 연신 애가 끓어 보이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