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언론인, 저술가, 대학교수요 문화부장관까지 지낸 대한민국 지성의 아이콘인 이어령박사가 89세의나이로 2022년 2월 타계하였다. 문학평론가인 배우자(강영숙)의 말에 의하면 “남편은 항암치료를 거부했어요.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되는데 항암치료를 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남은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쓰고 싶다고요. 보통사람들보다 열 배 스무 배 예민한 예술가였어요. 고통과 죽음을 너무 민감하게 느꼈어요. 외롭고 두려운 심정을 자신의 글에 그대로 표현 했지요. ‘눈물 한 방울’이란 제목으로 마지막 책을 내려고 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손가락에 힘이 빠져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없게 되었어요. 더블클릭이 안 되는 거예요. 어쩔 수없이 손 글씨로 썼어요. 일어났다가 맥없이 주저앉아버리곤 했지요. 그러다 걸을 수 없게 된 것을 깨달았을 때 펑펑 울더라구요. 머리가 좋던 남편이 기억이 깜빡깜빡하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치매가 온다고 생각하고 또 펑펑 울었죠....”
‘눈물 한 방울’은 인간 이어령이 삶을 반추하고 죽음을 독대하며 마지막으로 써내려간 내면의 기록으로 “오늘도 기적처럼 숨 쉬는 내 숨 속에 숨어있는 꽃들이 일제히 핀다. 잠자는 동안에도 숨 쉬는 내 숨 속에 숨어있는 별들이 일제히 뜬다. 내일에 내 숨이 멎는 날 그 별들은 어디로 갈까 땅도 하늘도 없다....” 내 영혼이 살 집이 없어짐에 대한 안타까움을 잘 나타내고 있다. 몸은 내 영혼이 사는 집이다. 지식이나 영혼도 건강한 몸 안에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도 노년에 이렇게 말했다. "젊었을 때의 내 몸은 나하고 가장 친하고, 만만한 벗이더니, 나이 들면서 차차 내 몸은 나에게 삐치기 시작했고, 늘그막의 내 몸은 나의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되었다.” 맞는 말이다. 영혼은 자유롭게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지만 몸은 항상 현재에 머물러 있다. 자기 몸은 자기가 가장 잘 안다. 장수시대라고해도 건강나이는 70세가 못되고 평균수명까지 10년 이상을 병과 함께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우리는 모두 처음 늙어보기 때문에 질병과 노화현상에 서투르다. 집이 오래되면 비가 새고 담벼락이 무너진다. 수리 보수를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무슨 기계가 70년, 80년 써먹어도 고장 안 나는 기계가 있겠나. 늙으면 이곳저곳 노인성 질환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고 잘 관리하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함께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년의 나이엔 하루하루가 특별히 받는 보너스다.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이 행복이다. 내 몸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다. 늙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리자. 지금 이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일이 있어 늙을 틈이 없어야 한다. 노쇠현상에 의한 불편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자. 젊은이들보다 힘이 좀 더 들 뿐이다. 그리고 노년의 나이는 미움 받을 나이다. 어떤 자세로 여생을 보낼 것인가도 생각해야 한다. 어제가 오늘이요 오늘이 내일로 세월이 나를 데리고 가게해서는 안 된다. 오늘 하루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 늙는 건 내 탓이 아닌 세월 탓이다. 내 영혼이 머물 수 있는 집이 바로 내 몸이요 영혼이 내 몸을 떠나지 않도록 건강관리에 최선을 다하자.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다가 영혼이 내 몸을 떠날 때 후회 없이 눈을 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