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국민의 30%가 65세 이상인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 일본에서 수년전 나온 영화 '플랜 75'가 있다. 한 젊은 남성이 노인을 죽이며 생산성이 없는 노인들은 없애야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신도 자살한다. ‘일본의 미래를 위해 노인들은 사라져야 한다’는 끔찍한 주장을 하며 노인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난다. 국가에서는 75세가 되면 건강한 사람도 죽음을 선택할 수 있고 정부가 그 비용을 지원한다는 법이 제정 된다. 말이 좋아 선택이지 담당 공무원들이 공원에 나가 노인들에게 죽음을 권유하고 ‘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어 너무 만족스럽다’는 광고가 TV에서 흘러나오고 이를 희망하는 자는 위로금으로 10만엔(백만원정도)을 받아 마지막 여행을 한다. 선택이라고 해도 동의치 않으면 정부는 모든 건강 및 복지혜택을 중지한다. 비록 영화지만 너무 끔찍한 상상이다.
우리나라도 벌써 노인인구 900만을 넘어서 2~3년 후면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는 현실이다. 야당 혁신위원장의 ‘2030청년 좌담회’에서 남은 기대수명에 따라 청년과 노인의 투표권 경중을 달리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취지의 말이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대한노인회 중앙회의 “노인비하발언 950만 노인이 분노 한다”는 성명서 발표에 이어 야당중진의원들의 줄을 이은 사과와 당사자도 4일 만에 대한노인회 중앙회장 앞에서 사과를 했지만 때늦은 사과가 더욱 어르신들의 분통을 터뜨린 결과를 초래했다.
노인 비하는 ‘60대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 곧 무대에서 퇴장할 분들이시니까, 50대에 접어들게 되면 죽어나는 뇌세포가 새로 생기는 뇌세포보다 많아서 사람이 멍청해진다, 부모님이 투표 못하게 여행을 보내드린다는 말에 효자라고 한 전직 장관의 이야기 등이 또다시 회자되고 있다. 남은 수명을 따져 투표권을 가짐이 합리적이라면 국회는 초선, 군대는 이등병, 직장은 신입사원, 가정에선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함이 합리적이라는 논리의 비약을 신문을 통해 보았다.
떠도는 인터넷에서 카이스트 이병태 교수의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가슴으로 호소합니다”란 글이 너무 공감되기에 간략히 소개한다. 본인도 무학의 땅 한 평 없는 소작민의 아들로 태어나 호롱불 밑에서 공부를 했으며 대학 4년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돈 한 푼 없이 결혼해서 서울 변두리의 전셋집을 떠돌았다. 미국 유학시절에도 아내가 남의 집 아이를 돌봐주고 살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젊은이들을 향한 호소문에서 “당신들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들은 초등시절 학교 다녀오면 책가방 던져놓고 5~6월 뙤약볕에서 김매고 땔감 찾아 산으로 갔었다. 광부로, 간호사로 국제미아가 되었던 당신들의 부모, 조부모, 월남전에서 생명을 담보로 돈벌이를 한 삼촌세대를 아느냐? 당신들이 누리는 풍요와 자유, 그 어느 것도 당신들이 이룬 것은 없다.
앞 세대의 성취와 피땀을 폄하 하지 말라.” 사실 지금의 노년세대가 안 먹고, 안 쓰고, 모은 덕분에 50~60년의 짧은 기간에 국민소득 600불에서 3만불의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부모와 조부모의 피땀으로 이룬 풍요 속에서 스타벅스커피를 마시고, 전자게임에 해외여행을 즐기며 살고 있다. 나이 많은 죄로 당신들에게 이렇게 조롱을 당해도 되나? 생로병사의 순리를 거역할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다. 울화통이 터져도 침묵함은 너무도 어이가 없기 때문이지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남녀노소 함께 어울려 박수치는 야구장의 응원석이 부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