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위천 초등학교는 1912년 사립 고북 학교로 창립되어 지금까지 107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1959년 33회로 졸업한 동기생 20여 명이 남해로 졸업 60주년 기념 여행을 갔다. 칠순이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귀녀야! 용근아! 살아있었구나." 첫 만남부터 스스럼없이 이름을 부르며 악수도 나누고 포옹하며 천지 난만 학창시절 그대로다. 위천 초등학교는 뒤로는 덕유산과 옆으로는 금원산의 보호를 받으며 유명한 위천 수승대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학교 앞으로 흐르고 있다. 졸업생 유가형 시인의 회고담을 옮긴다. “우리가 입학했을 때는 송 반과 죽 반으로 나누어 가설 교실에서 2부제 수업을 했다. 가설 교실을 짓는다고 학교 갈 때는 대야 하나씩을 가지고 갔다. 한 줄로 줄지어 모래며 자갈을 머리에 이고 나르던 추억이 아직 살아 선명하게 떠오르고, 운동회 때면 생솔가지로 교문을 감싸고 큰 종이에 단풍잎이나 다른 모양을 놓고 다 쓴 파리 약통에 물감을 넣어 후_불면 여러 가지 무늬를 그려 장식하곤 했다.
큰 운동장엔 만국기가 휘날리고 마스게임 준비도 끝나면 설렘만 남았다. 운동회를 마치면 어른들이 꽹과리를 치며 넓은 들길을 걸어갔던 기억들. 당시의 놀이라야 팀을 나누어하던 기마전이 있었고 꼰뜨기(실뜨기), 줄넘기, 제기차기, 딱지치기, 연날리기, 자치기 등 그 시절에 맞는 놀이들이 있었다.
학생들은 나이가 천차만별이어서 아저씨 아줌마 언니 같은 동급생이 많았다. 월반이 있어 2학년이 5학년에서 공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2학년이나 5학년이나 별반 다를 것도 없었다. 농번기뿐만 아니라 집안일 때문에 결석했고 동생을 업고 수업을 듣곤 하던 시절이었다. 졸업식 때는 송사 답사도 끝나고 마지막 졸업가는 (1)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__라고 끝나고 (2)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졸업생이 노래를 하면 식장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들이 60년을 넘어 초로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고 본인들은 고생을 해도 아들 딸들은 모두 잘 키워 고급 공무원, 판검사, 의사 약사 등 사회에서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동안 졸업생이 7.813명. 지난해부터는 천진숙 교장이 위천 초등학교를 이끌고 있다. 현재 학교 병설유치원생이 4명, 초등학생이 2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8년 위천면 전체에서 2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고 하니 학교에 버티고 선 양버즘나무는 언제까지 서 있을까? 비껴가는 세월이 덧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