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불행하다고/한숨 짓지 마/햇살과 산들바람은/한쪽편만 들지 않아/꿈은 평등하게/꿀 수 있는 거야/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살아있어 좋았어/너도 약해지지 마” 일본에서 100세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시바타 도요의 시 ‘약해지지 마’로 92세의 나이에 시를 쓰기 시작해서 98세 때 쓴 시다. 노년이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란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준 시인으로 2013년 타계(103세)할 때까지 몇 권의 시집을 내서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순수한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이제 노인을 싫어하고 증오하는 환경이 되고 있다. 과다한 복지비 지출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노인 스스로에게도 문제가 있다. 늙으면 몸과 마음이 약해져서 무엇이든 남에게 의지하려는 태도와 세상을 자기기준으로만 바라보는 자세 등이다. 이솝 우화의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를 보면 여우가 자기 생일에 두루미를 초대해놓고 접시에 담은 음식을 먹으면서 두루미에게 권하지만 두루미는 구경만 한다. 여우는 세상을 자기 기준으로만 바라본 것이다.
지금의 노년세대는 나이가 절대적 기준이 되는 유교문화의 인식이 머리에 굳어있는가 하면 오늘날의 사회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젊은이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왜 서글픈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이 아닌 나이에 걸 맞는 대접을 못 받기 때문인가? 변화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가 대체로 부모의 자식에 대한 마음가짐이다. 경로효친, 장유유서도 인간도리의 근본으로 인성교육의 근간이지만 실행에 따른 방법이나 형식은 시대 변화에 맞춰 달라져야한다.
부모의 인생을 위해 자기 인생을 희생할 자식도 없겠지만 그래서도 안 된다. 부모든 자식이든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혼자 사는 사람이 600만(독거노인 200만)이며 전체 가구의 37%가 1인 1가구로 자식과 부모가 함께 사는 가정이 사라졌다. 빈 둥지 가정으로 배우자와 덩그러니 둘만 남아서 서로 의지하고 지내다가 결국은 어느 한쪽이 먼저 가게 되어 혼자 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의 가정이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어느 한 순간 반드시 혼자 사는 시기가 온다. 고독을 친구로 내방식대로 돌고 돌아서 마지막 문턱은 결국 자기와의 싸움이다. 내가 나를 넘어서지 못하면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다.
절대 고독과 외로움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AI(인공지능)의 일상화 시대이다. 날로 늘어나는 키오스크(무인 판매기) 시대로 은행의 자동 수납기, 관공서의 제 증명 발급기. 안내자 없는 자동매표기, 음식점, 목욕탕 등 모든 장소에서 정보화 기기를 이용한 자동화 시스템이 생활화 되어 간다. 자존심이나 열등의식의 문제가 아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만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고 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배우고 익히며 살아야한다.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그래서 새로운 인맥을 만들 수도 있다. 취미생활이든 배움이든 한곳에 몰두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그리고 죽음과도 친숙해져야 한다. 이웃의 죽음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언젠가는 내 일이다. 자기 건강관리와 함께 평생 현역으로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자면 특별한 무장이 필요하다. 바로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하고 자신을 이김으로써 자신을 서글프지 않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