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6)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6)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10.02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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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야~ 어때~ 어~때? 맛있지러? 응? 다음에는 이만큼 많이~ 많이 꺾어 줄께!”
엄마 눈치를 보느라 몰~래 몰래! 치마 밑에다 어렵게 숨겨서 온 거야! 진짜 안 받을 거야! 그럼 나 또 울어
‘수처작주, 타초경사, 상옥추제, 수상개화’ 등등 기기묘묘한 계책을 빌려 올 수도 있을 텐데!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자 먹어!” 하는데 가만히 보니 찔레의 햇순 서너 개가 물기를 머금어 손바닥에 가지런하게 놓였다. 얼마나 꽉 쥐었는지 짓물러서 뭉개진 상태다.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이 싹 가시어

“이걸 어떻게 먹으라고! 이런 건 못 먹에 버려!” 했다가 가시에 찔리고 긁혀가며 어렵게 꺾어 온 정성을 몰라보고는 버리라 한다고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된통 혼이 났다. 결국에 울며 겨자 먹기로 눈을 질끈 감고는 한입에 털어 넣고야 사태가 해결되었다. 본래 찔레라는 것은 배를 채운다기보다 어린 햇순을 꺾어 풋풋하고 싱그러운 맛에 먹는다. 주전부리 겸 별미로 삼는데 입안에든 찔레순은 찐득하여 네 맛도 내 맛도 없어 밍밍하기만 하다. 하지만 말끝마다 색시를 자처하는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삼켜 쑥스럽게 웃자

“오빠야~ 어때~ 어~때? 맛있지러? 응? 다음에는 이만큼 많이~ 많이 꺾어 줄께!” 팔을 펴는데 난감하다. 영희엄마의 부탁과 엄마의 당부만 아니었더라면 투명인간으로 취급하여 못 본 척, 못 들은 척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영희가 울었다 하면 이유를 불문하여 한 살이라도 더 먹은 내 책임이라며 지청구 같은 엄마의 꾸지람이 뒤따른다. 이유 여하를 떠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뛰지도 걷지도 못하는 내 처지를 알아버린 영희는 아예 몸종 취급으로 노골적이다.

오늘도 점심 이후 저녁때까지 쫑알쫑알, 개미 똥구멍을 빨고, 달짝지근한 사루비아꽃(깨꽃)을, 인동초꽃((금은화)를 빨았다며 산골 살림을 노래다. 황골래(‘방아깨비’의 방언)를 잡아 굽고, 왕잠자리, 밀잠자리, 고추잠자리를 잡아서 장난감으로 삼고, 무당거미는 보기에도 징그러워 이유 없이 죽이고, 참개구리는 잡아먹었다며 자랑질이다. 봄이면 ‘뽀빼’란 이름 모를 풀을 뜯어서 껌처럼 질겅질겅 씹고, 잔대를 캐고, 더덕을 캐고, 산도라지를 캐고, 소나무를 꺾어 이빨로 훑어 송구를 씹었단다. 부끄럼도 모르는지 송구로 인해 변비에 걸려 삼사일을 고생 끝에 똥구멍을 어머니가 막대기로 파는데 뒈지도록(‘생명이 끊어지다’의 속된말) 아팠다며 피식 웃는다. 수치를 잊고는 눈을 깜박이며 쫑알거린다. 기구하달까? 험악하달까? 어린 가스나의 삶이 한 편의 드라마 같다. 그게 끝이 아니다.

하여튼 영희, 악동 같은 가스나의 눈에 띄고 손에 닿으면 모두가 먹는 음식으로 여름이면 시냇가를 훑어서 물고기의 수난 시대다. 뚜구리(‘동사리’의 방언), 피라미, 퉁굴래(‘퉁가리’의 방언), 연애각시((‘쉬리’의 다른 말), 버들묵지(‘버들치’의 방언), 돌마자, 개피리(‘금강모치’의 다른 말), 종개 등을 보이는 족족 잡았단다. 어쩌다 가재를 잡아 발갛게 구우면 껍데기 채 고소하여 별미라며 입맛을 다신다. 가을철이면 지천으로 널린 산 열매로 배를 채우고, 겨울이면 함박눈으로 갈증을 달래고, 해초시(亥初時)에 즈음하여 추녀를 뒤져 고이 잠든 참새를 잡아 굽었단다. 어느 여름날에는 길을 가는 독사를 잡아 모닥불을 피웠다며 멀겋게 웃는다. 또르르 말린 것을 과자처럼 똑똑 부러뜨려 먹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힌다며 군침을 흘린다. 종래는 날도래 유충을 잡고 오작인(仵作人)을 흉내 두꺼비 배를 갈랐단 말이 나올까 두렵다. 그런 한편으로 저 작은, 어린 계집아이의 한 줌 주먹 크기의 뱃구레가 얼마나 허전했으면 그랬을까나 싶어 동정 아닌 동정이다. 화전민으로 등골 빠지게 농사를 지어 보았자 입에 풀칠하기에도 힘든 삶에 절로 측은지심이 울컥한다. 먹기 위한 삶이 아니라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나무랄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만가지 잡것을 주식이자 간식으로 살아온 세월치고 뚜렷한 병치레가 없었다는 점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하여간 가만 듣고 있으면 어린 가스나가 못 먹는 음식이 없고, 못하는 짓이 없어 아프리카의 어느 원시 부족의 몬도가네만 같다. 죽지 못해 살아온 세월! 초근목피의 보릿고개의 굶주림이 무슨 자랑거리라고 입도 안 아픈지 두서없는 사연을 끝도 없이 조잘거린다.

그러는 중에 몇 년이 물 흐르듯 어물쩍 흘렀다. 그동안 영희도 나도 세월에 편승해서 변화를 거듭하는 중에 훌쩍 자랐다. 무엇보다 영희의 변화는 놀라웠다. 사회적인 동물답게 이웃과도 왕래가 번번하고 환경에도 적절하게 적응이다. 처음 강아지를 보고 맛있겠단 말 대신으로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을 줄도 알았다. 야생적인 삶을 버리고 도덕적인 삶으로 적응이다. 키가 훤칠하게 자람은 물론 까무잡잡하던 얼굴 피부도 본래의 속살이 서서히 우려나 보얗게 탄력을 더했다. 날이 갈수록 새침데기로, 다소곳한 소녀로 변신인 듯

“이것도 저것도 다 내가 다 먹을 거야~” 앙앙불락하던 식탐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어느 날은 감자를 삶았다며 두 알을 들고 와서는

“오빠야 참말 이상 타! 전에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드만 이제는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 그래서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라 했나 봐!” 피식 웃고는

“엄마가 많이 먹어야 키도 쑥쑥 크고 튼튼하다고 하는데, 아침으로 밥 반 공기를 차분하게 먹고 점심으로 감자 한 알을 요기로도 저녁때까지 든든 한께 참말로 이상 하제!” 살포시 눈을 내리깔고는

“자 이걸랑 오빠가 먹어!” 손을 쑥 내민다. 반달 모양의 숟가락으로 고이 깎아 삶은 강원도 감자라 그런지 하얗게 분이 일어난 감자 두 알이 고슬고슬하여 곱다. 그렇다고 넙죽 받기도 뭣해 물끄러미 바라다보는데 염치가 없어서일까? 이미 답이 정해진 까닭일까? 눈치 없는 군침이 목구멍을 넘느라 폭포 소리다. 민망을 감추려 짐짓 뒷짐으로 하늘을 보는데

“엄마 눈치를 보느라 몰~래 몰래! 치마 밑에다 어렵게 숨겨서 온 거야! 한 알이면 정 없다 할까 봐! 두 알이야! 진짜 안 받을 거야! 안 먹을 거야! 그럼 나 또 울어!” 하는데 벌써 눈가로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영화배우도 아닌 것이, 감정이 풍부해선지 눈물도 흔하게 어르고 달래서 윽박지른다. 그런 면에서 영희는 이것저것 마구잡이 식에서 편식 정도는 아니지만 혐오하는 뱀 등을 비롯하여 점차로 가린다. 영희가 나이만큼, 몸집만큼 정신연령이 성장했다면 나란 인간은 허우대만 멀쩡하게 허투루 나이만 먹었지 정신연령은 오히려 거꾸로 먹은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

“아~ 이런 날에 즈음하여 할머니는 어디에 계신단 말인가?” 평소에는 몰랐는데 처지가 곤궁하고 어렵다 보니 할머니가 사무치도록 그립다. 평소 무심하다가 어렵고 힘들 때만 할머니를 찾다니! 헬렌 피셔(Helene Fischer)의 ‘사랑의 힘(남편나무, The power of love)’처럼 마음속 어느 한구석에서 싹을 틔운 할머니란 새싹에 물을 줄 생각은 않고는 일방적인 이기심이 아닌가 싶다.

“에~고, 어이~구 내 똥강아지! 크는 아이들이 다 그렇지! 실수도 할 수 있지” 고기를 주던,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든 할머니의 그 말 한마디면 만사가 끝이란 사실에 눈물이 찔끔, 사무치도록 그립다. 평소는 생각조차 없다가 지금에서야 생시처럼 돌아가신 할머니를 오매불망 찾아 그 말을 기다리다니! 절로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건 그렇고 당면과제를 이제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기적이면 어떻고 욕심쟁이라면 또 어떻단 말인가? 이 위기를 슬기롭게 모면할 방법을 알려 준다면 신문지를 오리고, 달력으로 만든 딱지든, 종이비행기든, 무엇 하나, 유리구슬도 아깝지가 않다며 몽땅 내어놓고는 종만, 원철, 병식과 흥정을 하고 싶었다. 나는 소금 한 줌이면 족해서 원하는 소원을 전부 들어줄 수 있다고, 백골난망,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아 머리를 풀어서라도 갚겠다며 발아래 큰절이라도 넙죽 하고 싶다.

춘추전국시대의 손빈이라도 있었으면 ‘수처작주, 타초경사, 상옥추제, 수상개화’ 등등 기기묘묘한 계책을 빌려 올 수도 있을 텐데!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피해갈 마땅한 방법도, 기기묘묘한 비책도 머릿속으로 떠 오질 않는다. 심란한 마음에 머리를 팽이처럼 돌리며 투덜투덜 걷는데 심술이 양 볼 가득 ‘툭툭’ 불거진 영희가 새치름한 얼굴을 한 채 눈앞으로 둥실 떠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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