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길’
윤동주의 ‘길’
  • 김채영 기자
  • 승인 2019.04.11 17:0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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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7. 북간도 용정
2007.05.07. 북간도 용정

 

윤동주의 ‘길’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소와다리 2016.01.30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고 4월 11일 오늘은 임시정부수립일이다. 애국시인들이 많지만 나는 윤동주 시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토록 염원하던 해방을 불과 반년 앞둔 시점에서 눈을 감았으니, 이런 사나운 운명이 또 있겠는가. 오래 전 중국으로 문학기행을 갔었다. 그때 용정 방문이 첫 일정이었다. 한글과 한자가 병기된 ‘윤동주고향집’이라는 안내표가 반겨주었다. 여느 시골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도 왠지 아늑함보다는 쓸쓸함이, 푸근함보다는 불편함이 더 컸다.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황량한 바람이 일렁였다. 좁다란 마루에 걸터앉아 몇 컷의 기념사진을 찍을 때 얼굴에 미소를 머금는 것조차 미안한 일이었다.

시인의 유택을 찾아서 이동했다. 산비탈에 마련된 공동묘지였다. 일행들 발밑으로 황토먼지가 풀풀거리는 4월의 오름길은 등줄기에 땀이 흐를 정도로 경사졌었다. 빗돌은커녕 떼도 엉성한 시인의 봉분 위로 몇 포기의 잡풀이 나풀댔다. 중키의 벚나무 한 그루가 죽어도 죽지 못한 젊은 영혼을 지키고 있었다. 피어보지도 못한 채 떠난 억울한 청년을 기리듯이 여드름 같은 꽃망울들이 오종종히 맺혀있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만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운명인 양 생각보다 너무 초라한 무덤이었다. 무시무시한 절망과 고독 속에서 눈감았지만 무사히 돌아와 고향에 묻혔으니 그나마도 다행이라 여기며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이 시는 유작을 모아 1948년 ‘정음사’에서 펴낸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에 수록된 작품이다. 몇 년 전에 ‘소와다리’에서 복각본이 나온다고 했을 때 설레는 마음으로 예약하여 구입했다. ‘길’은 인생행로일수도, 산책의 도로일수도 있겠다. 시의 성격은 갈망하는 자유의 고백적 어조를 띤다. ‘잃어버렸습니다’로 시작된 상실은 무엇일까? 구체적 언급이 없어서 상징적 의미로 가늠해본다. 화자가 가는 길이 자아성찰의 공간으로 다가오지만 돌담, 쇠문과 같은 시어는 의지를 가로막는 장애물 또는 단절의 의미로 읽힌다. 풀 한 포기 없는 길이란 게 불행한 개인사를 넘어 참담한 시대상황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절망에 매몰되지 않고 극복의 의지를 나타냄으로써 젊은이다운 미래지향적인 희망의 자세로 갈무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