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노트] 독일⑦ 과거와 현재,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져 작품이 된 도시 베를린(Berlin)Ⅱ
[여행노트] 독일⑦ 과거와 현재,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져 작품이 된 도시 베를린(Berlin)Ⅱ
  • 강지윤 기자
  • 승인 2024.08.1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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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부르크문'과 박물관섬을 잇는 베를린의 중심대로가 '운터 댄 린덴'
보리수가 심어진 도로는 오랫동안 도시의 심장부로
역사적 건물과 학문과 예술 등 도시의 혼을 담은 역사적 현장 즐비
'브란덴부르크문' 앞을 가득 메운 관광객들의 모습.
'브란덴부르크문' 앞을 가득 메운 관광객들의 모습.

여행자가 ‘드디어 베를린에 왔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맨 처음 달려가는 곳. 그곳이 바로 베를린의 랜드마크 ‘브란덴부르크문’이다. 북유럽의 강국으로 성장한 프로이센제국이 국력을 과시하고자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1791년에 완성했다. 그리스 신전 같은 기둥이 받치고 있는 이 멋진 건축물은 베를린으로 향하는 5개의 도로로 뻗어 있었다. 그러나 완공 직전에 발발한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군이 베를린에 입성하고 첫 개선식의 주인공은 나폴레옹이었다. 그때 개선문 위의 사두마차까지 파리로 가져갔다. 나폴레옹 몰락 후 사두마차는 돌아왔고 이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거리의 앞쪽을 ‘파리저 광장’이라 부른다.

이후 냉전 시기 독일과 베를린 역시 둘로 나뉘며 ‘브란덴부르크문’은 동서 베를린을 가르는 기점이 된다. 1961년 동독은 이곳에 베를린 장벽을 세워 통행을 막았고 이에 따라 이 문은 독일분단의 상징이 됐다. 1989년 ‘브란덴부르크문’ 앞 장벽이 무너지면서 독일통일의 상징적인 장소로 변했다. 독일의 번영과 몰락, 분단과 통일 같은 역사적 사실이 켜켜이 쌓인 장소가 바로 ‘브란덴부르크문’이다.

과학기술 세계 1위, 수출입 규모 세계 2위, 국내 총생산 세계 4위, 길 위에서 매일 만나는 벤츠, BMW, 폭스바겐, 아우디의 생산국. 괴테, 니체, 쇼펜하우어, 칸트, 헤겔 같은 철학자 등이 교과서에 등장하고 바흐,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존, 슈만 등의 음악은 귀에 익었다. 현재 독일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발전과 국제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지금 세계에서 손꼽는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현대국가로 자리 잡은 것은 100여 년이 조금 넘었다고 한다.

독일연방의회 의사당. 국기 뒤편에 푸른색 돔이 조그맣게 보인다. 가는 곳마다 공사중이라 펜스를 쳐 놓아 사진 촬영이 여의치 않다.
독일연방의회 의사당. 국기 뒤편에 푸른색 돔이 조그맣게 보인다. 가는 곳마다 공사 중이라 펜스를 둘러 놓아 사진 촬영이 여의치 않다.

처음으로 독일 지역을 통일해 하나의 국가로 만든 ‘독일제국’은 건국과 함께 1894년 국가를 상징하는 ‘독일 국회의사당’을 완공한다. 브란덴부르크문 가까이에 있는 현재의 ‘연방의회 의사당’이 바로 그곳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제국은 무너지고 여기에서 ‘바이마르공화국’이 되었음을 선포했다. 이곳이 독일 역사에서 의미 있고 상징적인 장소라 불리는 이유다. 1차대전 후 과도한 전쟁배상금과 극심한 인플레, 극좌와 극우의 충돌을 겪으며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1933년 공산당원의 방화로 ‘독일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이 불타고 제국의 상징이던 돔이 철거된다. 이 방화 사건은 그동안 힘을 키우던 나치가 공화국을 나치독일로 이끄는 빌미가 되어 이후 나치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전쟁 막바지에 베를린과 이 ‘독일 국회의사당’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다.

그 후 냉전 시대를 거쳐 독일이 재통일 되자 1999년, 이 장소에 ‘연방의회 의사당’을 재건축한다. 이곳은 이제 황제에 의해 통치되던 제국과 나치독일, 분단된 독일을 거쳐 재통일된 독일 민주주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소가 됐다. 방문객과 시민은 예약하면 누구나 건물 맨 위의 유리 돔(전망대)에 올라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의회를 내려다볼 수 있다. 독일 민주주의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것일 것이다. 옥상으로 나가면 360도 파노라마 전경을 볼 수도 있다.

‘브란덴부르크문’과 박물관 섬을 잇는 베를린의 중심 대로가 ‘운터 덴 린덴’이다. 보리수가 심어진 넓은 도로는 오랫동안 도시의 심장부로 역사적 건물과 학문과 예술 문화 등 도시의 혼을 담은 역사의 현장들이 많다.

도심 한가운데서 베를린을 내려다보고 있는 '프리드리히2세 기마상'. 뒤편 건물이 '슈타츠 오퍼'다.
도심 한가운데서 베를린을 내려다보고 있는 '프리드리히2세 기마상'. 뒤편 건물이 '슈타츠 오퍼'다.

'파리저 광장’에서 인생샷을 찍는 여행객과 버스킹 그룹을 뒤로하고 천천히 내려가면 가장 먼저 ‘아들론 호텔’이 눈에 띈다. 초록 지붕에 연노랑 건물. 1907년에 베를린에 처음 대형 호텔로 지어졌으나 2차대전 때 파괴되었다가 1997년에 재개장했다. ‘연방의회 의사당’이 가까워 각국의 정치가와 명사들이 많이 투숙하며 영화나 소설 속 무대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 대사관, 미국 대사관, ‘코메르츠 방크’ 등이 있으며 이따금 집회가 열리기도 한다. ‘운터 덴 린덴’ 중앙 인도의 끝 지점에, 완벽한 고증을 거쳐 조각된 신하와 보필자 74명과 함께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2세 기마상’이 대로를 내려다보며 높다랗게 서 있다.

'훔볼트대학' 본관의 모습.
'훔볼트대학' 본관의 모습.

기마상 옆 대로변에는 1810년 훔볼트 형제가 설립한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훔볼트대학’이 있다. 비스마르크, 그림형제, 헤겔, 마르크스를 비롯해 수많은 인사가 거쳐 갔으며 5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19세기 현대 대학의 모델이 되었다. 각 단과대학은 흩어져 있으며 이 건물은 대학의 본관 건물로 18세기 바로크 양식을 보여주는 역사적 유적이면서 중심지에 있어 수많은 여행객이 찾는 베를린의 명소다.

앞쪽 광장에서는 ‘훔볼트 대학’을 배경으로 유튜버가 촬영 중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로 알려진 중앙 도서관 열람실을 찾는 여행자들도 몇 그룹이나 본관으로 들어가는 게 보인다.

'아들론호텔' 내부 풍경.
'아들론호텔' 내부 풍경.

‘훔볼트대학’을 보고 뒤돌아서면 ‘나치분서 사건’이 벌어진 ‘바벨 광장’이 나온다. 1933년 5월10일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의 주도로 국민 정신교육과 세뇌, 언론통제를 위해, 나치에 비판적인 책들을 모아 불태워 버린 사건이다. 당시를 기억하기 위해 ‘빈 서가’라는 작품을 설치했다. 2만여 권의 책이 불타버린 텅 빈 서고의 모습이 길바닥에 새겨져 있다.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는 세 곳의 오페라 극장이 있다. ‘운터 덴 린덴’ 한복판에서 베를린을 내려다 보고 서 있는 ‘프리드리히2세 기마상’ 옆으로 베를린 국립오페라 극장 ‘베를린 슈타츠 오퍼’가 있다. 1570년 창단한 궁정악단에 뿌리가 닿아 있다. 나치 시절 극장장을 비롯한 여러 음악가들이 정권에 저항해 극장을 떠났다가 종전 후 복귀하는 곡절을 겪었고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후에는 많은 음악가가 서베를린으로 떠나기도 했다. 통일 후 1992년 창단 250주년을 맞아 ‘다니엘 바렌보임’이 음악감독 겸 지휘자로 취임하면서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극장으로 변모했다. 그의 주도로 오랜 개보수 공사를 거쳐 2017년 재개관했다.

‘베를린 슈타츠 오퍼’ 옆에는 17세기 말에 지은 바로크 양식의 건물 ‘독일 역사박물관’이 있다. 무기고로 사용되다가 19세기 군사 박물관이 되었다. 이곳을 보고 나면 독일이 어떤 나라이며 베를린에서 무엇을 보아야할 지 정리가 된다. 그냥 전시물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생각하게 하는 장소다. 전쟁과 무기, 과학과 의약품, 유대인 학살과 동독시절, 1·2차 세계대전 당사국으로서의 수치심과 당시에 그들의 위상 같은 많은 것을....

과거의 왕궁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2021년 개관한 '훔볼트포룸'. 앞쪽은 고전적 모습, 뒤편으로 현대적 건물이 이어진 복합문화공간이다.
과거의 왕궁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2021년 개관한 '훔볼트포룸'. 앞쪽은 고전적 모습, 뒤편으로 현대적 건물이 이어진 복합문화공간이다.

아침 일찍 출발해 둘러본 동선이 2만 보를 넘어간다. 겹겹이 입은 외투 사이로 찬바람이 파고 들며 손끝마저 시리다. 조그만 분수대 앞에 앉아 에너지를 충전할 요량으로 초콜릿을 꺼낸다. 얌전한 분수대는 수줍게 물을 뿜고 팔랑팔랑 노랑나비가 이르게 핀 꽃들 사이로 날아다닌다. 멀리 베를린 돔과 우주선 기지처럼 보이는 TV 타워가 보이고 슈프레강을 사이에 두고 ‘훔볼트 포룸’도 보인다. 과거의 왕궁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2021년 개관한 곳이다. 고전과 현대적 건축이 조화를 이뤘다.

도심의 대로를 자전거로 떼 지어 출퇴근하는 사람, 여럿이 발맞춰 즐기는 페달을 밟아 나가는 여행객, 고색창연하고 웅장하지만, 실은 대부분 복원된 건축물들. ‘암펠만’이라 불리는 동독 시절의 신호등 도안이 갖가지 상품으로 태어나고, ‘오스탈기’라 부르는 동독 시절에 대한 향수, ‘트라반트’라 부르는 동독 시절의 자동차마저 호기심과 재미가 된 나라. 그 모든 과정과 경험이 녹아 이제는 역사가 된 도시.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현재 진행형 도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 또 다른 내일의 일정을 계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