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노인연령 상향되면 길어진 소득 공백 어쩌나
연령 상향과 함께 예비노인 일자리 마련이 답이다
생산가능인구 급감 추세, 노령인구 활용 서둘러야
몇 살부터 노인이라 부를까? 명확한 기준은 없다.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은 지하철 공짜다. 60세를 이순이라 하듯 65세를 우스개로 ‘지공(地空)’이라 한다. '지하철 공짜'라는 뜻이다. 소위 지공의 나이가 되면 기초연금, 노인 장기 요양급여, 동네병원 할인, 임플란트와 틀니의 건강보험 적용, 공공시설 이용 할인 등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게 된다. 그래서 이런 것을 향유하게 되는 65세부터를 통상 노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이를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슨 이유일까?
수명의 연장으로 노인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이에 소요되는 복지 비용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인 인구의 증가는 저출산과 맞물려 인구 구조상으로도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래서 노인연령을 70세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한다. 노인으로 인정하는 나이를 5년 더 늦춰 노인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65세 이상 70세 미만의 인구가 생산가능인구에 유입되고 상대적으로 노인 인구 비율은 감소하여 정상적인 인구 구조로 회복된다고 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근본대책은 아닌 것 같다. 나이를 제한하여 그 수혜 대상자를 줄이면 문제가 쉽게 해결되리라는 발상은 초등학교 수준의 단순 해법이다. 노인 인구를 일부 잘라내어 생산가능인구로 편입한다고 실제 경제활동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명목상의 숫자불림일 뿐이다.
그동안 노년층의 표를 의식하여, 대놓고 이 문제를 거론하지 못해 왔던 정부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모양이다. 지난 10일, 급기야 보건복지부가 팔을 걷어붙였다. 동네의원 진료비 깎아주는 노인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70세로 상향 조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노인연령 상향의 첫 사례가 곧 나올 전망이다.
그러나 급한 불부터 끄자고 노인 연령 기준만 상향할 경우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정년퇴직 후 노인 복지 혜택을 받기까지는 5년이 걸린다. 그런데 노인연령이 70세로 상향되면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퇴직 후 노인 그룹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주변인을 필자는 ‘예비노인’ 또는 ‘금빛 백수’라 칭하고자 한다.) 소득 절벽 기간이 늘어난 만큼 경제력 없는 예비노인들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덜하겠지만 이 또한 공백기가 있고 앞으로 그 수령 시기도 더 늦춰질 공산이 크다.
그런데 의외의 통계자료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보건복지부가 2017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86.1%가 노인연령 기준을 70세 이상으로 해야 한다고 답했다. 최근 리얼미터가 실시한,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기준을 70세 이상으로 상향 조정해도 되느냐는 여론조사에서도 60대 이상 응답자 72.3%가 긍정적으로 답변, 젊은 층 응답자보다 높은 찬성률을 보였다. 노인들이 스스로 각종 혜택을 포기하고 국가 재정 부담을 줄이는 데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나라를 생각하는 어르신들의 마음씀씀이가 실로 존경스럽지 않은가?
이제 해답이 보이는 것 같다. 그것은 노인 연령을 상향하되 정년퇴직 후부터 노인 연령에 이르는 중간계층인 금빛 백수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당장엔 청년실업이 큰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생산가능인구가 급감 추세인 것을 감안하면, 황금 세대인 예비노인들을 백수상태에 머물러 있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주축인 ‘노년세대(예비 노인을 포함한 개념)’를 다시 일으켜 꺼져가는 대한민국의 동력을 되살려야 한다.
정부 대책만 기다릴 순 없다. 개개 사업장의 경영진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지혜를 발동해야 할 때다.
젊은이들의 사고전환도 필요하다. 젊은이들은 처음부터 쉽고 편하고 근사한 일만 찾으려 하지 말고 힘들고 어려운 일부터 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른들이 경험과 노하우를 더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젊은이들은 몸으로 때울 수 있는 힘든 일부터 해보면 어떨까?
'경험이 선생'이란 말이 있다. 산업 현장의 산 증인인 어른들과 함께 배우면서 일한다는 자세로 임해 보자. 조화와 상생의 활기찬 직장 분위기가 창출되지 않을까?
일본에도 노인연령 상향 논란은 있다. 그러나 우리만큼 머리 아프진 않다. 2013년부터 65세 정년을 보장함으로써 소득 공백기를 없애 주었고 건강한 노인들이 원없이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취업난에서 구인난으로 바뀌었다. 노령인구가 총 동원되어도 일손이 달린다. 청년 구인난뿐만 아니라 노인 구인난까지 겪고 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도 노년 인력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임금피크제도 괜찮다. 계약직 시간제라도 좋다. 최저임금이니 정규직이니 따질 게 아니다. 서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 노령 근로자는 일할 기회를 얻어 감사해야 하고 사업주는 적은 인건비로 고급인력을 이용할 수 있어 감사해야 한다.
대법원이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65세로 판결했지만 사실상 대한민국 어르신들은 이보다 10년 이상 더 활동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 처한 어르신도 많다. 이들은 오늘도 소리 없이 외친다. “아직 일 더 하고 싶다.” “더 해야 한다.”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고 싶은 것이 어르신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짐이 되기보다는 힘이 되어주고 싶고, 움직일 수 있는 한, 일을 하는 것이 우리 어르신들의 꿈이다.
“일할 사람은 줄어드는데 노인 인구는 자꾸만 늘어나고..." "큰일이다.” “정말 큰일이다.” 부정적인 목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오고 있다.
한숨만 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늘어나는 노인을 젊은이들이 다 부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국민의 주류인 어르신들을 새로운 에너지로 활용하자. 금빛 백수들에게 일이 주어지면 결국 우리 사회는 건강한 시니어들이 연약한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것이 된다.
“젊은 사람도 일자리가 없는데 무슨 ....”이라는 말은 더 이상 하지 말자.
남북으로, 동서로, 좌우로 갈기갈기 찢어졌던 이 땅이 다시 노소로 갈라지게 할 수는 없다. 함께 가슴 뭉클해하며 함께 지켜가는 동방의 등불 코리아. 세대 간의 갈등이 사라지고 젊은이와 어르신이 어우러져 일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아아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이 되게 하자. 이게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