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은 다음 주에나...!
어슴푸레한 새벽산길을 오른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늘 힘이 드는 여정이다. 그것은 높든 낮든 상관이 없다. 처음부터 차근하게 한발 한발 태산을 오르듯 올라야 한다. 무엇을 갈구하기보다는 늘 자신과의 싸움이다. 진정 위대한 사람은 포기해야 하는 시점에서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훤하게 드러난 길을 오르는 눈앞으로 남에서 북으로 길게 누운 산등성이 위로 하현달이 그림같이 떠 있다. 미세먼지가 등쌀을 부려 새벽운동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폐부를 채우는 시원함에 까맣게 잊는다. 산을 오르는 자만이 누리는 특별한 행복이다. 이것은 디스트레스(나쁜 스트레스)가 유스트레스(좋은 스트레스)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하다. 어려운 공부를 마친 뒤 좋은 성적표를 받는 뭐 그런 기분이랄까?
4월 27부터 5월 12일까지 철쭉제가 있다는 소식에 황매산을 오르는 것이다. 황매산은 경남 합천군 대병면, 가회면과 산청군 차황면에 걸쳐있는 해발 1,108m의 산이다. 수년 전만해도 약 2시간 이상의 고된 산행 길이었지만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이제는 20~30여 분이면 넉넉하게 오를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남녀노소가 공히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부지런한 관광객 몇 명은 벌써 올라와 이곳저곳을 살피고 돌아보니 뒤를 이은 관광객들이 꼬리를 물어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늘 빠른 것도 늦은 것도 없는가 보다. 밤 12시에 온들 빠르다고 할 수 있을까? 태양이 중천에 오른 정오에 온다고 늦다 할까? 내가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장소에 있는 것이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늦은 것일 것이다. 아예 텐트를 친 모습도 보인다. 20여 분도 채 걸리지 않아 목적지에 다다른다. 의외로 사람들이 적어 보인다.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보고자 했던 철쭉은 꽃봉오리를 굳게 다물어 아직 준비 중이다. 오늘 불어오는 봄바람에 꽃봉오리 안은 처녀총각들의 풋풋한 사랑처럼 부산한 요란을 떨 것이다. 그 요란함이 지쳐 미구에는 後園黃栗不蜂坼(후원황율불봉탁)처럼 부풀어 올라 굳이 벌이 날아다니지 않아도 절로 터질 것이다.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섭섭함이 있지만 진달래 무리들이 군락을 이루어 반겨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 화려한 모습을 직접 보려면 철쭉이 제 모습을 갖추어 홍수를 내듯 산비탈에 흐드러져 장관을 이루는 4월 27일 이후라야 가능할 것 같다.
구름사이로 태양이 얼굴을 보이자 진달래 이파리가 수정처럼 눈이 부시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철쭉을 잊는다. 꿩 대신 닭이라지만 마음이 가는대로 만족한다면 그것 또한 좋은 관광인 것이다. 철쭉은 다음날에도 불이 난 듯 산봉우리마다 붉게 물들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