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은 “인간은 되어 가다가 죽는다” 라고 하여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모든 인간은 본래부터 뭐든지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고 이것은 바로 궁금증이라고 하며 새로운 것을 알아 가려는 본능이 있다고 했다. 이는 다른 말로 배움의 본능이 아닌가 생각된다.
소설가 이외수는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그런데 모르는 줄 알면서 배우지 않는 게 잘못” 이라고 했다. 그렇다. 배움은 몰랐던 사실을 앎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배움은 끝이 없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도 한계가 없다. 또한 배움엔 기간도 없고 때도 없다.
지금은 사회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삶을 위한 생활주변에서 꼭 배워서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흔히 말하는 지식이 과거엔 생활 경험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생활경험이 많은, 오래 산 어른들이 대접을 받는 사회로 노인이 곧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 빨리 변하고 발전하는 정보화 사회가 되어 누가 더 빨리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활용하느냐의 경쟁이다. 이제 세상은 생각 즉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정보의 격차 시대가 되었다. 생각의 격차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정보의 격차는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이로 살지 말고 생각으로 살라는 말도 있다. 이는 나이가 아닌 열린 생각으로 세상을 보라는 뜻으로 고착화된 편견과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이야 말로 우리 어른들이 꼭 명심하고 실천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육체의 건강관리를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하면서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소홀하다. 아무리 육체가 건강해도 정신건강이 따르지 못하면 조화를 이루지 못해 온전한 건강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는 평생교육시대로서 배우는 장소나 시기, 시간이 따로 없다. 내 모르는 것을 알려 주는 사람이 곧 내 선생이요, 내 모르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 곧 내 학교이다.
그런데 문제는 배우고 익히고자하는 의욕 즉 자발성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스스로 배우고 익히고자 하는 마음이 따르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쉬운 예로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인 ‘스마트폰’을 보자. 수백 가지의 생활에 편리한 기능을 가진 전자 통신기기지만 우리는 각자 스스로 몇 가지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가 생각 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세상은 넓고 배울 것도 너무나 많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따라서 죽을 때까지 변화 사회에 적응하고 배우며 살아가는, 결국 되어가다가 죽는 게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