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초등학교
수비초등학교는 영양군 수비면 한티로 499번지로 1933년 수비 심상소학교로 출발, 1941년 수비 공립 국민학교, 1996년 전국 교명 통일로 수비초등학교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비초등학교는 영양군에서도 산간벽지의 소규모 작은 학교 가꾸기 대상학교다.
영양군 수비면 수비초등학교 전교생 33명 제주도 현장체험학습길에 나섰다. 올해 6월 칸막이 없는 학교 예산의 대응투자 및 총동창회의 후원으로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에서 현장 체험학습을 했다.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의 자연유산과 문화 콘텐츠를 둘러 본 학생들은 산골에서 드문 다양한 경험할 기회를 가졌다.
현재 이 학교는 2016년 부임한 이준복 교장선생님이 맡고 있으며 지금까지 83회, 5,764명이 졸업했다.
금태남 씨의 졸업 회고문이다. " 수비초등학교는 개교한 지 86년이 지났다. 19회로 졸업한 나는 벌써 64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버렸다. 우리 학교는 태백산 준령의 분수령으로 경북 최북단에 위치한 수비면 소재지 해발 500 고지에 위치한 두메산골이다. 입학 후 2학년 때 6.25 전쟁이 일어나 2학년 1 학기부터 학교에 등교하질 못했다. 학교에는 인민군이 주둔하고 학생들이 등교하면 인민군 노래를 가르치는 통에 중간학교를 하며 개천에서 가제와 피라미를 잡기도 했다. 동네 청년들은 모두 산속 깊이 숨었고 어린이와 노인들만 마을에 남았다. 전쟁이 끝나 3학년부터 정규 수업이 시작되어 학생 수도 늘어가고 졸업땐 600여 명 정도였다. 매년 졸업생이 100여 명은 넘었는데 최근 학교당국의 통계를 보니 현재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총학생수가 33명이고 올해 졸업하는 학생이 6명에 불과하다.
그 시절 학교 가는 거리는 평균 4~5km 정도 였으며 복장은 무명 한복에 짚신을 신고 원거리 등하교를 하였다. 나는 주월 맹호부대에 파월 근무한 뒤 전역해 지방 공무원 공개경쟁시험에 합격했다. 첫 발령지가 내 고향 수비면 사무소였다. 1년 후 대구시청으로 전출되어 대구시청 감사과장을 거쳐 수성구청 총무국장으로 정년 퇴임하고 또 지방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4년간 근무했다. 그리고 우리 학교 출신으로 15회 금계영시인과 16회 윤영호장군이 있다. 17회에 배영일 육군대령은 예편해 소방헬기를 제작하는 (주)화악 회장직을 맡고 있는 기업가다. 이 밖에도 수많은 동문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며 국가 기틀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언제나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
지난 부족한 역량에도 불구하고 2005부터 수비초등학교 총동창회 회장으로 4년을 지냈다. 이제 희수(77)의 나이에 그때 그 시절을 회고하니 어려웠던 격동기 시대를 참아내며 먼 길을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에서 간절한 바람은 선친(금연경)이 교장으로 재직했고 내가 졸업한 이 학교가 폐교되지 않고 영원토록 이어져 후생가외(後生可畏)의 후배가 배출되길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