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의 봄을 알려주는 전령사, 전호나물
비수기에는 뱃삯이 30% 할인이라고?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셈을 한다.
수년 전 태하마을 펜션에서 며칠 동안 지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파도가 좀 셀 것 같습니다. 울릉도가 그리 쉬운 곳은 아니니 고려하십시오. 화려한 곳은 아닙니다만 스트레스는 다 풀어놓을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도는 충분히 받아 줄 아량 있는 바다입니다." 당시 용감하게 배에 올랐으나 초주검이 되어서 배에서 내렸다. 펜션 주인이며 후배인 K의 말을 생각하니 또 구역질이 난다.
얼마 전에 병원 신세를 진 딸아이가 바람 쐬고 싶단다. 그래, 떠나자. 귀밑에 멀미 패드 붙이고, 멀미약도 먹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 아침만 손수 해 먹고 나머지는 울릉도 음식으로 때워야 겠다. 몇 가지 반찬과 주류를 챙겼다.
배가 출항하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약에 취한 사람들은 잠들었는지, 자는 척하는 건지 모두 눈을 감았다. 두 번째 울릉도 나들이역시 내겐 고역이란 말인가. 푸른 바다 밀림 속에 나 홀로 내동댕이쳐진 기분이다. 아나콘다가 배를 친친 감고 마구 흔들었다. 나는 ‘죽을죄’를 지을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지켜줄 거야.
도동항 여객선 터미널, 어깨가 튼실한 바위 섬이 거친 숨소리를 낸다. 여전히 절벽 끄트머리에는 아찔하게 매달린 향나무가 묘기를 부린다. 후배는 그랬다. 울릉도는 자유국가에 속한 공산국가라고. 그 말을 한 번쯤은 곱씹어 봐야 했거늘. 비수기에 여객선 운항이 일정치 않은 것은 백번 이해하고도 남는다. 도동항에서 문을 연 밥집에 무조건 들어갔어야 했다. 맛집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린 게 육지 사람들의 욕심이었음을 절절히 깨달았다. 어떻게 밥 먹을 데가 이리도 없을까. ‘육지에 갑니다. 내년 봄에 만나요’라는 안내판이 얄밉다 못해 괘씸할 정도였다. “밥 좀 주세요.” “비수기에는 장사 안 합니다.” 사람을 빤히 보고서도 손님을 거부하는 식당 주인을 딱히 나무랄 수만도 없다. 결국 펜션에 도착하여 식사를 해결했다. 하루 종일 쫄쫄 굶다가 해거름이 되어서야 한 끼니를 먹은 것이다. ‘비수기’, ‘할인’이라는 말은 ‘불편함을 감소해라’라는 말로 해석해야 옳았다. 먹을 것은 흉년인데 울릉도 밤하늘에는 총총총 별이 풍년이다.
울릉도에서 즐겨야 할 것은 바다를 보는 일, 풍경을 보는 일이 전부였다. 아, 또 있다.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비탈밭에 쭈그리고 앉아 나물 뜯는 어르신들이 다문다문 보였다. 후배네 밭에 올랐다. 겨우내 몸을 웅크리고 있던 부지깽이나물이 햇살을 받아 푸릇하다. 부지깽이도 맛있지만 지금은 눈 속을 비집고 나온다는 전호나물 철이 아닌가. 산바람을 피하려 목도리를 칭칭 두르고 나물 사냥에 돌입한다. 나물 뜯으며 생으로 질겅질겅 씹는다. 쌉싸름하니 약초 향이 돈다. 나물로 배를 채운다. 입이 쓰다.
밥상에 찬을 올렸다. 전호나물 데쳐서 무치고, 전호나물에 초장 뿌려서 생채, 전호나물 부침개, 전호나물 씻어서 쌈장에 찍어 먹고. 내 생애 이렇게 푸짐하게 전호나물 포식하기는 처음이다. 동네 아저씨한테 전호나물이 왜 좋은지 물었다. “그냥, 몸에 다 좋은 나물입니다.”
울릉도 전호는 눈이 녹아 물이 뿌리에 스며들면 싹을 틔운다. 울릉도의 봄을 알려주는 전령 식물이라고 한다. 미나릿과 식물로 언뜻 보면 당근 잎과 비슷하다. 전호는 한약재이다. 감기 초기 증상인 발열, 천식을 일으킬 때 효과를 나타내고, 특히 폐에 작용하여 가래를 삭이고 기침을 멈추게 한다. 주의할 점은 기운이 지나치게 쇠퇴 되어 있거나 가슴에 열이 쌓여 번민 증상이 있을 때는 먹지 말아야 한다.
이번 울릉도 나들이는 만만찮은 여행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호나물을 만났다는 것이다. 비수기 여행길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먹을 것 챙기는 것은 필수.
Tip : 전호나물을 무칠 때는 독특한 향을 살리기 위해 마늘, 파, 등의 향신 양념은 넣지 않는다. 숙채는 간장, 참기름으로 무치고, 생채는 식초, 설탕, 소금으로 간해서 본래의 맛을 느끼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