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원종,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1970년 KBS공채 9기로 입사 50여년 연기생활 450여편 작품 출연, 40년 농촌드라마 단골출연 KBS우수프로그램 연기상, SBS연기대상 우수조연상 수상, ‘ 대추나무사랑걸렸네’ 배역이 대추고장에서 실제 삶으로 이어져, 2017년 경산시립극단 창단하여 예술감독으로 지금까지 활동
1990년부터 2007년까지 17년 동안 농촌의 순박하고 정다운 이야기를 전해준 KBS1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는 수많은 에피소드를 낳았다. 후속작으로 7년동안 농촌 드라마의 명맥을 이었던 '산 너머 남촌에는'도 농촌에 뿌리내리고 사는 이들의 삶의 모습과, 현대 농촌의 현실을 소박하게 보여주었다. 24년 동안 이어 온 농촌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한결같이 사랑받은 이유는, 급속한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이농현상으로 무조건 농촌을 떠나 타관객지에 사는 출향인들에게는 농촌드라마를 보며 향수를 불렀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산 너머 남촌에는' 등 40여 년을 농촌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친근한 이웃집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오면서 국민배우로 각광받았던 이원종(76)를 만났다.
- 바쁘신데도 불구하시고 시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생 및 성장 과정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1944년 9월 15일 경산시 남산면 하대리 148번지에서 대구를 오고 가며 운송업을 하던 부모님 슬하에서 4남 4녀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린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지금의 대구 동인초등학교를 3년간 다니다가 부모님께서 고향인 경산시 남산면 하대리에 정착함에 따라 저도 남산초등학교를 거쳐 5학년때 삼성분교가 개교되면서 삼성초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자인중학교를 거쳐 대구 대륜고등학교를 1964년 졸업했습니다.
1년 재수한 후에 부모님한테는 법대에 들어간다고 하고는, 연극을 하기 위하여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였습니다. 그후 2학년 때에 제가 공부는 하지 않고 연극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갑자기 부모님이 등록금과 하숙비를 끊어 버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남은 1년을 교수들의 배려로 청강생으로 마치고, 다음해에 육군에 입대하여 3년간 군생활을 마쳤습니다. 1969년 제대 후에 고향에서 농사짓기에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무조건 상경하여 서울극단(창조극단)에서 연극을 배웠습니다. 1970년 3월 공채 9기생으로 KBS에 입문하여 1971년 드라마 ‘고향’으로 데뷔하여 그해 ‘ 여로’ 에 출연하였습니다.
1970년대 중반에 ‘ 전우’ 에, 1980년대 TV문학관에, 1989년 ‘ 왕룽일가’ 로 연기대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2000년 SBS ‘ 왕룽의 대지’ 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004년 ‘ 토지’ 에 그리고 1990년~2007년까지 17년간 ‘ 대추나무사랑걸렸네’ 에, 2007년~2014년까지 7년간 ‘ 산너머남촌에는’ 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 근래에는 경북 경산에 새 둥지를 틀고 인생 2막을 고향에서 연극을 만들고 후배양성을 하고 계신다는데 궁굼합니다.
▶저는 연기 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고향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짙어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2015년 서울에서 활동하는 경산출신 연예인들을 규합하여 향토예능인향우회를 조직하여 경산시민의날에 공연을 하였습니다. 저의 이러한 고향사랑, 연극사랑을 경산시장이 알게 되고, 고향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수준 높은 연극공연 관람기회를 주고자 뜻있는 분들이 동참하여 의기투합하면서 2017년 3월 경산시립극단을 창단하여 지금까지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연극을 처음 시작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가 어린시절에 우연히 아버지를 따라 대구 시내 모 극장에서 '에밀레종'이라는 연극을 관람하면서 아기를 용광로 속으로 집어넣는 장면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연극인이자 배우로 발돋움하게 된 피할수 없는 운명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 과거에 고향에서의 연극공연에 대한 추억담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가 자인중학 재학시절 고향마을인 남산면 하대리 지금의 도동서원 마루에 담요막을 치고 책에서 사본한 시나리오를 들고 처음 신파극을 연습하였습니다. 고등학교때에는 남천면 하도리 천정규 친구와 유치진의 ‘조국’을 공연하였습니다. 1964년도에 극단 「태백산맥]을 창단하여 대경대 김삼일교수, 정정화 아나운서 등 3명이 주축이 되어 대구역 옆 당시 대구방송국의 대구KG홀(현 대구시민회관)에서 크라보젠코 원작의「나는 자유를 선택하였다」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경북도내 순회공연에 나서는 등 그 시절 저는 오로지 연극이 저의 전부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학 진학도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를 선택하였습니다.
- KBS공채 9기로 입사한 후에 활동사항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1970년도에 탤런트로 입사한 후에 50년 연기생활을 통하여 고향, 토지, 젊은이의 양지, 왕릉일가, TV문학관, 산넘어남촌에는 등 450여편의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그러면서 KBS우수프로그램 연기상, SBS연기대상 우수조연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9년 경산대추 홍보대사, 한국방송연기자협회 감사 등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초창기에는 저의 고향이 경산인데 공고롭게도 ‘ 대추나무사랑걸렸네’ 에서 17년동안 대추나무를 타이틀로한 드라마에서 구수한 연기를 한 것이 극중 인물이 아니라 실제 삶을 표현한것 같아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 그동안 맡은 배역과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에 대하여 소감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 토지’ 에서는 김서방 역으로, ‘ 여로’ 에서는 문중할배로, ‘ 전우’ 에서는 한국군 하사로, ‘ 젊은이의 양지’ , ‘ 분이’ 에서는 훈훈한 아버지역 등을 맡았습니다. 50년 가까운 연기자생활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박연한 원작의 ‘ 왕룽일가’ 입니다. ‘ 토지’ 의 김 서방으로 PD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 심의에 걸리던 시절이라 큰 역할을 맡지 못하다가, ‘ 왕룽일가’ 로 89년 연기대상 후보에 오르며 연기를 시작한 후 가장 큰 관심을 받았어요. 그러나 시청자 인기투표에서 최주봉에게 밀려버렸어요. 그러다가 10년 후인 2000년 SBS가 개국하면서 ‘ 왕룽일가’의 속편으로 ‘왕룽의 대지’ 을 제작, 또 다시 최주봉과 연기대상 후보에 올랐어요. 이번에는 최주봉을 제치고 제가 연기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 KBS공채 9기로 입사한 후에 초창기에는 애로사항이 없었습니까?
▶ 입사후 6개월 동안 교육기간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보수도 없이 스스로 배역을 찾아 헤매야 했습니다. 그 후 1년여간 방송 데뷔 첫 작품이라는게 고작 엑스트라로, 또 출연자들의 그림자 노릇만 했지만 그나마 5~6백원의 출연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흑백 TV라, 26세에 입사한 저는 언제나 단역인 80대 노인역만 맡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우연히 저에게도 행운이 찾아와 KBS주말극 ‘ 고향’ 에 3개월 출연 데뷔하면서 저의 제2의 연기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 주로 향토색이 짙은 농촌드라마에서 구수한 사투리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는데 비결은 무엇입니까?
▶ 그 당시 향토적 드라마와 각색의 대가(大家)인 김원석 작가 작품을 주로 한 것 같아요. 그 당시 저는 배우 외에는 다른 직업을 생각 안 했어요. 40여년을 농촌드라마 배우만 오래해서 그런지 농사를 제대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주말농장도 운영해 보고, 농사도 몇 년을 지어보고 했어요. 뭘 하려고 해도 농촌과 고향 흙냄새는 벗어 날 수가 없었어요. 몇 년을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게 무대였고, 드라마에서 주어진 건 농촌에서 살아가는 역할이였어요. 늘 삶이 농촌이고 주로 그런 역할을 해 와서 그런지 몰라도, 배우의 삶과 일상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진솔하고 성숙한 연기가 나오나 봅니다.
- 경산시립극단을 창단하는데 애로사항은 없었습니까?
▶1년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평생 배우로만 살아와서 행정이 이렇게 어려운줄 몰랐습니다. 적극적으로 반겨줄 것 같았는데 의외로 난관이 많았어요. 경산시장은 굉장히 환영을 했는데, 의회 설득에 진통이 있었어요. 예산문제로 그분들 입장에서는 필요없는 예산이 편성된다고 생각할수도 있는 일이고요. 그래서 한분 한분 만나서 이제 경산시는 반드시 연극문화가 필요한 만큼 지역이 성장했다고 설득해서,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 경산시립극단을 창단한 성과와 의의에 대하여 한마디 해 주시겠습니까?
▶ 경산시에서 오래 사신분들 한테 물어 봤습니다. 평생 연극을 몇 번 봤는지요. 한두편 보신분들도 계셨지만 안 보신분이 더 많았습니다. 인근 대구에 비하여 고향의 연극문화가 상대적으로 뒤쳐져 있습니다. 경산인구가 27만으로 생활과 문화수준이 달라졌고, 이제는 연극문화와 병행해야 시민들의 삶의 질도 높아질수 있습니다. 연극을 관극하면 아름다운 심성을 갖게 됩니다. 또 인근에 20년 된 연극영화과가 있으며, 지역에서 연극전공 인재들을 흡수해야 하고 그것이 행정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 경산시립극단을 창단한후 지금까지 공연한 내용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인구에 비해 늦은감이 있지만 2017년 3월 1일 창단하여 그해 5월 16~17일 양일간 창단작품으로 「맹진사댁 경사」를 경산시민회관에서 공연하여 성황리에 마쳤으며, 계속하여 2019년11월 14~16일 3일간 제6회 공연인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를 경산시민회관에서 전석매진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경산시민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경산시립극단 운영에 대한 애로사항은 없습니까?
▶ 예산이 적으니 일단은 최소경비로 출발해 좋은 연극을 만들면 경산시, 의회, 그리고 시민들이 호응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산은 올라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연극으로 감동을 줘야죠. 공무원과 시민들이 우리 시에세 시립극단을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잘 해야죠.
- 전국에 국립, 도립, 시립 극단이 몇 개나 있습니까?
▶ 현재까지 「한국국공립극단협의회」회원으로 등록된 전국 15개 국공립극단 현황은 국립극단, 도립극단(경기,강원), 광역시립극단(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시립극단(경주, 포항, 경산, 전주, 순천, 목포)이 고작입니다. 그리고 매년 국공립극단 페스티벌을 개최하는데 2019년에는 제10주년 공연을 6.30~7.21까지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개최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전국민이 문화혜택을 누릴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시겠습니까?
▶ 각박해지는 현실에서 충, 효, 예의 심성을 기르고 그것을 바라볼수 있는 연극을 하고 싶어요. 또 우리지역은 대추, 포도, 복숭아 등 특산물이 많습니다. 이를 소재로 한 다양한 연극도 해 볼 생각입니다. 처음에는 시민들이 연극과 가까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의 특징과 정서를 잘 살릴수 있는 향토연극이라고 할까요. 지역연극으로 자리를 잡을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시민들이 공감할수 있는 연극을 하고, 소재도 차츰 넓혀갈 생각입니다.
연극의 불모지에서 지역문화 발전을 위하여 시립극단을 창단하여,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고향에서 남은 여생을 한편의 드라마와 같이 살아보고픈 그의 간절한 소망이다. 스스로 매가폰을 잡고 한평생 갈고 닦은 연기력으로 고향의 정겨운 이야기를 전하면서 풋풋한 인간미와 진솔한 이야기를 연기인생속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문화예술분야 예산 적극 지원으로 창의문화도시를 선도하는 그의 꿈이 마음껏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