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카타콤바’ 충남 당진 신리 성지

2020-07-16     강효금
너른

 

충남 당진군 합덕읍에 위치한 신리 성지는 박해시대의 교우촌으로 성 손자선 토마스가 나고 자란 곳이다. 신리에 천주교가 처음 전파된 것은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이 세례를 받은 이후다. 마을에는 밀양 손씨가 많이 살았는데 그들을 중심으로 천주교가 전파되었다. 1865년부터 조선 교구 제5대 교구장을 지낸 다블뤼 주교가 신리에 둥지를 틀었고, 그 즈음에는 마을 주민 전체가 신자였다. 신리는 조선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교우촌이자, 내포 천주교의 거점이었다.

 

성당

 

1972년 합덕의 한 마을에서 과수원을 만들기 위해 무덤 40여 기를 파묘했다. 그곳에서 묵주가 쏟아져 나왔다. 그 묵주를 모으니 한 됫박이 넘었다. 시신 중 32구는 목이 없었다. 그 작은 마을이 지금의 신리 성지이다.

 

순교자

 

처형장의

 

다블뤼(1818-1866)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마카오에서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와 함께 1845년 조선에 첫발을 내디뎠다. 1866년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선교활동을 하며 조선의 언어와 풍습, 사람들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였다. 그는 교우들이 쉽게 교리를 배우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성교요리문답’(聖敎要理問答), ‘천주성교예규’(天主聖敎禮規), ‘천당직로’(天堂直路) 등을 번역했다. ‘신명초행’(神命初行), ‘회죄직지’(悔罪直指), ‘영세대의’(領洗大義), ‘성찰기략’(省察記略) 등의 저서는 신자들이 신앙을 이해할 수 있게 노력한 결과물이다. 그가 남긴 ‘순교자들의 역사’는 전 세계 교회 많은 신자들에게 ‘조선’이라는 작은 교회와 순교자를 기억하게 하는 디딤돌이 되었다. 다블뤼 주교가 조선 교회사 편찬을 위해 프랑스 파리로 보낸 그의 비망기는 후에 달레 신부의 ‘한국 천주교회사’의 기초가 된다.

 

주교관이자

 

신리 성지는 ‘한국의 카타콤바’라 불린다. 로마시대 박해를 피해 지하 무덤으로 숨어들어 신앙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기독교인과 신리의 신앙공동체는 닮아 있다. 그들의 죽음과 수난은 너른 들판의 십자가로 빛난다. 그렇게 그들은 오늘 우리에게 신앙을 증거한다.

 

순교자

 

 

이 기사 안의 사진은 이성호 작가가 제공했습니다.

 

이성호 작가는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개인전

2019 가톨릭 성지, 1898갤러리, 서울

2019 가톨릭 성지, CU갤러리, 대구

2017 정미소 프로젝트, 대심정미소복합문화공간, 예천

2016 空, 봉산문화회관, 대구

2015 空, 갤러리 나우, 서울

2012 청도 유등축제 초대전, 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