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를 느끼다 ] 나태주의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시인은 자신의 병보다 아내의 딱하고 불쌍한 모습이 더 마음이 아프다.옆에서 알뜰히 간호하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아픈 자신보다 부인이 더 안쓰러워 쓴 詩다

2021-08-13     권정숙 기자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 나태주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어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더불어 약과 더불어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장롱에 비싸고 좋은 옷도 여러 벌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는 여자지요. 자기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 밭 한 귀퉁이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는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돈을 아끼느라 꽤나 먼 시장 길도 걸어 다니고 싸구려 미장원에만 골라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잘 들어 응답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출처: 계간 [시와 시학] 2007년 가을호

 

나태주 시인의 이 시는 시인이 많이 아파 사경을 헤맬 때 쓴 시다. 옆에서 알뜰히 간호하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아픈 자신보다 부인이 더 안쓰러워 쓴 시라고 한다. 평생을 가난한 교사의 아내로 살면서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발을 동동거리며 산 아내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과 측은지심이 그대로 시에 녹아들어 있다. 부부는 남과 남이 만났지만 어떤 관계보다 돈독하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처럼 피로 맺어진 관계보다 더 가까우니 어디에도 비교가 불가하다. 조강지처란 말이 있다. 쌀겨와 술지게미로 끼니를 이을 때 아내란 뜻으로 몹시 가난한 시절 고생을 함께한 눈물겨운 사이다. 그러므로 그런 아내는 어떤 경우에도 버릴 수 없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시인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보다. 그런 아내가 남편이 아파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오로지 매달리고 기댈 곳은 절대 능력의 하나님 밖에 없었으리라. 시인은 자신의 병보다 아내의 딱하고 불쌍한 모습이 더 마음이 아프다. 하나님께 항변하듯이 시시콜콜히 말하는 모습에서 부부의 곡진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어느 부부가 다르랴마는 이 부부의 사는 모습에서 우리 모두 자기 부부의 삶이 오버랩 된다. 평소 남편의 무관심에 아내들은 서운해 한다. 남편들이 왜 아내의 고생과 마음을 모르랴. 알고 있어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표현하지 못할 때도 있으리라. 시인은 하나님께 애원하면서 아내의 기도에 응답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남편이 운전을 못하니 버스만 타고 다녔고 장롱 속에는 비싸고 좋은 옷도 없고 신발마저 별로 여유가 없이 살았다. 여자로서 가꾸고 싶은 욕심도 접어두고 싸구려 미장원만 다닌 불쌍한 여자라고 남편은 말하고 있다. 평생을 병과 더불어 약으로 살았다. 세상적인 욕심도 별로 없었기에 죄도 덜 만들었을 거라 말하고 있다. 그런 아내가 자기 때문에 지금 고통을 받고 있으니 너무 가련하고 마음이 아팠나 보다.

부부로 산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 같다. 들은 바로는 시인 자신도 여태껏 너무나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고 유머감각과 겸손이 몸에 배인 사람이라고 한다. 세상이 다 알아주는 유명한 시인이 되었으니 수입도 엄청 늘었을 텐데 그런 초심으로 사는 것도 쉽지는 않을 터이다. 그런 마음 바탕에서 나온 시가 어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을 수 있으랴. 시인의 시심은 겸손한 마음과 검소한 생활과 더불어 돈독한 신앙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았나 감히 추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