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꽃 이야기] 잎이 꽃처럼 아름다운 설악초
볼품없는 꽃을 위한 희생
녹음이 짙은 요즘에 눈이 쌓인 듯 하얗게 무리지어 피는 꽃이 있다. 한여름이 지나갈 때에는 백일홍 외에는 눈에 띄는 꽃이 많지 않은데, 유독 하얀 빛으로 눈길을 끄는 꽃이다. 마치 동화 속 요정들이 하얀 꽃밭에 나와 노니는 듯하다.
몇 해 전에 씨앗을 받아 장독대 가에 뿌려 놓았더니 번식력이 강해서인지 작년에는 장독대를 침범하고 한 무리의 군락을 이루어 놓았다. 애써 돋아난 화초라고 그냥 두었더니 꽃이 피기 전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장독대에 풀이 왜 이렇게 많으냐고 할 정도였다.
설악초는 산에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얗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야광초, 월광초라고도 하는데 밤에 보면 더 새하얗게 빛난다. 정말 눈이 내린 것 같다. 무더운 여름밤에는 시원하게 보여서 참 좋다.
꽃보다 잎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데 얼핏 보면 꽃처럼 보인다. 그래서 꽃이 피어도 잎인지 꽃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면 하얀 잎 가운데 앙증맞은 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꽃들은 꽃을 자랑하지만 이 녀석은 잎을 자랑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보잘 것 없는 꽃을 위해 잎들이 희생을 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처음에는 회녹색의 잎이었다가 점차 가장자리가 흰색 테두리를 친 듯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이것은 꽃에게 엽록소를 빼앗겨 나타나는 백화현상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영양분을 꽃에게 다 주고 자신은 서서히 탈색되어 잎의 기능을 잃어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잎의 역할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볼품없는 꽃을 위해 잎을 꽃으로 보이게 하면서 벌과 곤충을 유인하여 수정을 돕는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하려는 전략이 신비롭기만 하다.
설악초의 꽃말은 환영과 축복이라고 한다. 올해는 장독대 가장자리와 진입로 양쪽에 심어 놓았다.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환영하고 축복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알록달록한 색깔은 아니지만 초록빛과 하얀빛이 만나 선명하고 산뜻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요즘 설악초가 한창이다. 하얗게 무리 진 모습을 보니 가을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