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꽃 이야기] 백 일 동안 꽃을 피우는 백일홍
초백일홍과 목백일홍
여름 동안 화려했던 꽃들이 시들어간다. 그 화려함 뒤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추억을 잡아보려 하고 있다. 하지만 가는 세월은 막을 수 없고 기억은 잊히기 마련이다. 옛말에 '화무십일홍 인불백일호'(花無十日紅 人不白日好)란 말이 있다.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사람은 백일을 한결같이 좋을 수 없다는 말이다. 보통 권세를 부리거나 인물이 잘 나도 곧 시들게 된다는 취지로 이야기 할 때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백일홍은 백일 동안 붉게 꽃을 피워 사람들의 눈을 기쁘게 한다.
백일홍에는 배롱나무라는 나무에서 백 일 동안 꽃을 피우는 목백일홍과 화초에 속하는 초백일홍이 있다. 그래서 백일홍꽃이라고 말을 하면 어떤 꽃인지 헷갈린다. 어찌 보면 초백일홍이 본래의 이름에 걸맞다고 본다. 목백일홍은 가지마다 자잘한 꽃이 층층이 피고 지기를 거듭해서 오래 피는 듯이 보이고, 초백일홍은 한 꽃이 길게는 한 달 가량 꽃을 피우다가 지고 또 다른 가지에서 피고 지고 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면 석 달 열흘, 즉 백 날 피는 꽃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렇지만 두 꽃 모두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백 일 동안 아름다운 꽃으로 우리 곁을 지키고 있으니 시비를 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에는 보통 초백일홍보다는 목백일홍을 백일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배롱나무는 꽃이 귀한 여름철에 붉은 빛에 가까운 분홍 꽃을 오랫동안 예쁘게 선물하는데, 옛날 선비들이 지조가 있는 꽃이라며 정자나 향교 등에 많이 심었다. 요즘에도 서원이나 향교에 가보면 꼭 오래된 배롱나무가 있다. 우리 집에도 조그마한 배롱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몇 송이의 빨간 꽃을 피웠다. 하얀색 배롱나무를 한 그루 더 심어보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 목백일홍보다는 초백일홍이 더 정이 간다.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꽃이기도 하고, 흰색, 노란색, 주홍색, 오렌지색, 엷은 분홍색 등 다양한 색으로 피어나 눈을 호강시켜 주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꽃 속에 또 꽃을 간직하고 있어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백일홍도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것이 세상살이의 이치인가보다. 때 아닌 가을장마에 잎은 생기를 잃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가을의 문턱에서 백일홍을 바라보니 세월 참 빠르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벌써 쉰 중반을 달려가니 내 얼굴은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