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자산어보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은 우정
연말이 다가오니 각종 시상식이 미디어를 장식한다. 그 중에서 지난 11월26일 금요일 열린 청룡영화제에서 청룡영화상을 받은 영화 한편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바로 「자산어보」란 영화이다.
요란스럽게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조용히 관객을 끌어모은 그래서 이 영화가 액션인지 스릴러인지 SF 장르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지만 비대면의 시대에 기꺼이 영화관을 찾아 관람한 관객이 300만을 넘은 영화이다. 나는 단 한가지 이유로 이 영화를 보러 갔다. 흑백 영화이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흑백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는 무엇일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고 긴 여운을 남겼으며 가슴이 묵직한 감동도 안겨주었다. 뿐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인문학적인 가르침과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뀌는 철학적인 깨달음도 준 영화였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액션과 화려한 색감과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자극적인 영화들이 대세인데 간만에 본 흑백 영화는 그 깊이와 순수함과 단순함만으로도 몰입도를 높였다. 움직이는 수묵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조선후기의 정세는 어지러웠다. 예술을 사랑하고 바른 사람을 골라 등용하던 정조가 죽자
천주교도를 박해하는 신유박해가 일어나고 천주교인이었던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된다.
그곳에서 그는 야심은 많지만 신분의 제약으로 인해 도약하지 못하는 어부 창대를 만난다. 정약전은 바다생물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갖고있는 창대를 보고 속으로 경탄해 마지 않는다.
영화의 한 장면을 소개하면,
이웃집 아낙이 가져온 청어를 보고 정약전이 말한다.
“ 동해에서만 잡히는 물고기가 서해에서도 잡힌단 말이냐?”
창대가 대답하기를,
“동해 청어는 등뼈가 74마디이고 여기 청어는 등뼈가 53마디이지요.”
그런 창대를 보고 정약전이 어떤 생각을 했을 것인지 누구라도 짐작이 갈 것이다. 원래 생물학자도 아닌 그가 창대가 알고 있는 바다 어종에 대해 지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창대에게 네가 알고 있는 물고기에 관한 지식을 다른 사람도 알 수 있게 글로 남겨야 한다고 그를 설득해 보지만 불공평한 세상에 과거시험도 볼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원망한다. 그러나 정약전은 그에게 외딴 섬에서는 접하기 불가능한 학문을 전수해 주고 창대로 부터는 어류에 관한 지식을 얻기로 하는 사상초유의 거래가 성사된다. 그 후부터 이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면서도 각자가 꿈꾸는 세상을 향해 한발짝씩 전진한다
이처럼 자산어보는 정약전과 창대라는 두 인물이 실제로 흑산도 연해의 해양생물을 탐구하고 연구하고 견문한 것을 엮은 어보인데 선진국에서도 그 당시 생각도 못했던 분류법으로 편찬한 서적이므로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흑산어보가 아니고 자산어보인가는 정약전이 서두에 밝혀놓았다. 자(茲)는 흑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으므로 흑이란 어둡고 두려움을 주는 느낌을 주는 글자보다 흑산 대신에 늘 자산이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영화는 올해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설경구), 각본상, 촬영조명상 편집상 음악상 등 5개부문을 차지했다. 모처럼 영화다운 영화, 생각에 깊이를 주는 영화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두말하지 않고 권하고 싶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