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까치의 아름다운 동거
까치를 길조(吉鳥)로 생각하는 것은 영특하고, 꾀가 있고, 은혜(恩惠)를 갚을 줄 아는 의리의 새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까치의 행동을 돌 그림으로 남기는 여관구 시인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귀에 익은 다정(多情)하고 향수 어린 동요다. 어머니께서 밤잠도 안 주무시고 몇 날 며칠을 돋보기 쓰고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다듬고 지으신 설빔을 처음으로 입고 나서는 설날 아침이면 으레 까치가 먼저 반겨 주었다.
“깍, 깍, 깍,ㆍㆍㆍㆍㆍ.”하는 반가운 소리 아침 까치의 울음소리는 상쾌하기도 하거니와 공연히 반갑고 즐겁기가 그지없다. 흑백(黑白)의 단조로운 배색은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素朴)하고 간결하고 그 소리 또한 기쁨을 품은 듯이 경쾌하고 명료하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 주위에 살며 두려움 없이 사람을 따르는 데서 더욱 친밀감이 가는 새다. 이와 같이 까치는 겨레의 생활 속에 함께 있어 온 새 인만큼 까치는 우리들의 가족과도 다름이 없는 동물이다.
- 여관구 시인은 “까치 돌 그림 작품”도 우수하며, 시니어매일 기자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 여관구 씨를 만나 까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노후(老朽)로 접어들면서 취미 생활은 건강관리는 물론 노후생활에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관구 시인은 제2의 인생을 살면서 취미 생활로 돌 까치 그림을 선택했다. 많은 동물들 중에서 까치를 선택한 이유는 선조 때부터 우리 생활에 익숙해 져 있는 새이고, 돌 속에 까치와 풍경을 담아놓는 것은 자기 마음에 행복을 가득 채우는 방법이기 때문이라라 생각이 된다. 또한 여 시인은 대구 시니어매일 기자로서 시니어매일 전체 기자들(109명) 대상으로 뽑는 ‘이달의 기자 상’을 받는 2명에게 돌 까치 그림을 매달 각 1점씩 재능 기부함으로 어려운 시기에 본분을 다하는 기자들의 마음을 위로함은 물론 의욕을 일깨워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특별한 날’ 맞는 지인들에게도 까치 돌 그림 작품을 받는 분의 이름까지 작품 뒷면에 기록 축하선물로 드리고 있는 아름다운 기부 천사다.
까치 돌 그림 각 작품들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작품으로 기념이 될 것이며, 받은 분들은 정말 뜻깊은 선물이라고 고마워 하고 있는 모습들을 본다.
까치는 가치의 옛말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우리 생활에서 까치처럼 가치 있게 사는 삶을 누리자는 뜻으로 생각하면 좋을듯하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과 북부 아프리카, 북아메리카의 서부와 같은 곳에 굉장히 널리 퍼져 살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만큼 그 새를 길조(吉鳥)로 환영하는 곳도 드물 것이다. 영특하고, 꾀가 있고 은혜(恩惠)를 갚을 줄 아는 의리의 새로 추켜세우고 온통 좋은 뜻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까치는 몸길이는 45센티미터 안팎으로 그중의 반(半)은 꽁지이다. 어깨와 배의 하얀 부분을 빼놓은 다른 부분은 언뜻 보아 검은색인데 각도(角度)를 달리하여 보면 날개와 꼬리 깃이 아름다운 청록색을 띤다. 날개는 둥글고 작은 편이어서 나는 힘은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큰 머리에 단단한 부리 그리고 힘센 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격력은 꽤나 우수한 편이다. 따라서 매와 같은 강적을 상대로 맞았을 때에도 감히 공격해 물리치는 용감성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매와 벌이는 공중전은 정말 놀랍다. 조직적이고 기동력 있는 연함 전술은 까치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보기 드문 것이다. 집중 공격에 얼이 빠져 미처 달아날 구석을 못 찾는 얼간이 매 따위는 아예 공격한다기보다는 숫제 데리고 놀 듯이 놀려 주는 여유마저 보여 준다.
까치는 거의 한없이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새다. 곤충을 비롯하여 달팽이, 지렁이, 쥐, 과일, 나무 열매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가(人家)에서 버리는 먹다 남은 찌꺼기며 다른 새의 알이나 병아리까지 먹는다. 따라서 농작물(農作物)을 생산하는 곳에서는 적어나마 피해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충을 잡아먹기도 하고 때로 소, 양(羊), 사슴 따위의 등에 앉아 몹쓸 진드기를 잡아먹기도 하니 전체적으로 따져 보면 산림(山林)이나 논밭에 이로운 면이 더 크다.
이렇듯 여러 가지 면에서 이로운 새인 까치를 우리 겨레는 길조(吉鳥)로 아끼면서 행여라도 해치는 일이 절대 없는 전통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들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많아 생활 주변에 시설물들이 많다. 특히 전신주에는 까치들이 집을 짖기가 좋은 모양이다.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전기가 까치집으로 인하여 불이 나거나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가 문제이므로 까치집은 철거가 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모든 것을 감안하여 늦은 나이에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관구 시인은 주위의 까치들의 생활을 눈여겨봄은 물론 까치와 한 식구가 되어 가까이서 친근히 소통을 하면서 생활하고 또한 그 모습을 마음속에 영구히 담아두기 위하여 돌을 이용하여 그 모습들을 그리고 주위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면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돌 그림을 그릴 명목이 선다고 한다.
◆ 1) 까치에게 얽힌 전설(傳設)
음력 칠월(七月) 칠석(七夕)에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은하수(銀河水)에 걸린 오작교를 건너 일 년에 딱 한 번 만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전설이다. 여기에 나오는 오작교는 여러 마리의 까막까치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길게 뻗어 다리를 놓아 준 것이라는데 칠석이 지난 다음에 머리가 벗어지고 꽁지가 빠진 까치가 눈에 많이 띄는 것은 그 때문이라 한다. 전설은 전설대로 뜻이 있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머리가 벗어진 까치가 칠석(七夕)에 눈에 띄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까치는 이 고장에서 칠월 칠석 무렵에 털갈이를 하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전해 내려온다. 아닌 게 아니라 아침에 담장 위나 나무 꼭대기에서 까치가 상쾌하게 울면 손님이 오는 수가 많다. 그렇다면 그 말의 과학적인 근거는 무엇일까? 까치를 길러 보면 어느 새와는 달리 사람을 잘 따르고 아무것이나 잘 먹고 훈련만 잘 시키면 앵무새처럼 몇 마디 말도 배워 지껄일 줄 알고 더구나 까치와 접촉이 잦은 사람을 잘 알아본다. 또한 집 주변에 집을 짓고 사는 까치는 집안 식구나 동네 사람까지도 잘 알아보는 것이다. 낯익은 사람을 보면 짖지 않고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짖어 대는 것이 마치 개와 같다. 높다랗게 나무 끝에 앉았다가 낯선 손님이 올라치면 짖게 마련이니 까치에게 손님이 온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는 영감(靈感) 같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는 손님을 먼저 보고 낯이 설어서 짖는 것일 뿐이다. 그럴싸하기도 하고 어딘지 미심 찍기도 하지만 전혀 황당무계하지만은 않은 이야기다.
◆ 2) 까치에게 얽힌 전설(傳設) 까치밥을 남겨 두는 마을
장편소설 ‘대지’로 1933년 노벨 문확상을 받은 ‘펄 벅’여사의 한국 사랑은 유명하다. 그녀는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부모님을 따라 약 40년을 중국에서 보냈음에도 평생 한국을 가슴 깊이 사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 ‘살아 있는 갈대’에서 다음과 같이 한국에 대해서 예찬했다. ‘한국은 고상한 민족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다.’또 그녀가 남긴 유서에는 ‘내가 가장 사랑한 나라는 미국이며 그다음으로 사랑한 나라는 한국’이라고 쓰여 있을 정도이다. 그녀가 이렇게 한국에 대한 애정이 생긴 계기는 1960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있었던 몇 번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중 하나가 ‘짐을 서로 나누어지는 것’이라는 소재로 편리함과 합리성을 따지지 않고 오히려 소와 함께 짐을 나누어지고 가는 농부의 모습에 감탄한 그녀의 이야기가 많은 분들에게 공감을 주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까치밥’에 얽힌 일화이다. 어느 날 그녀는 따지 않은 감이 감나무에 갈린 것을 보고는 통역을 통해 근처에 있던 사람에게 물었다.“저 높이 있는 감은 따기 힘들어서 그냥 남긴 건가요?” “아닙니다. 이건 까치밥이라고 합니다. 겨울새들을 위해 남겨 둔 거지요.”그녀는 그 사람의 말에 너무도 감동하여 탄성을 지르며 말했습니다. “내가 한국에 와서 보고자 했던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었어요.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해요!” 감이나 대추를 따더라도 까치밥은 겨울새들을 위해 남겨 두는 마음, 지극히 작은 생명 하나도 배려하는 고상한 민족이 바로 우리 대한민족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봄철이 되어 씨앗을 뿌릴 때도 셋을 뿌렸다. 하나는 새를 위해 하늘에, 하나는 벌레를 위해 땅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나에게 그렇게 모두가 함께 나눠 먹기 위해 셋을 뿌렸다.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고 탓하지 말고 나부터라고 먼저 변하면 된다. 예전 우리 선조들의 까치밥 문화를 통해서 공존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취미는 생활의 힘’ (시)
(시인 여관구)
취미 생활은
내 인생의 윤활유이다.
운동, 공부, 그림 등 다양한 취미 생활 중
내 마음을 기쁨의 도가니로 끌고 들어가는 것은
역시 돌 까치 그림이다.
돌은 볼 때마다
그 자체만으로도 예쁘지만
돌 자신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림이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돌이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밖으로 꺼내는 즐거운 작업을 할 때가
제일 행복한 날이다.
각기 다른 마음의 색깔을 가진 돌들과
교감하는 것은 첫사랑을 만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