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꽃 이야기] 매화 향기에 취하다

늦었지만 꽃망울을 터트리는 매실나무

2022-03-28     장성희 기자

봄이 되면 산과 들에는 꽃이 피기 시작한다. 농촌에서 일 년을 지내다 보면 사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데, 이런 변화를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니 행복하고 신난다. 계절 중에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가 가장 좋다. 상사리에서 가장 먼저 봄이 왔음을 전해주는 꽃이 매화이다. 매화는 난초, 국화, 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옛날 선비들의 글이나 그림에는 빠지지 않는 꽃이다. 왜 선비들은 매화를 그렇게 좋아 했을까. 그것은 아마 매실나무가 얼어 붙은 땅속에 뿌리를 뻗고 눈속에서도 맑은 향기를 뿜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 선비들은 대부분 가난하였다. '매화는 가난하여도 일생동안 그 향기를 돈과 바꾸지 않는다' 는 말처럼 진정한 선비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컸던 모양이다. 매화는 눈보라 속에서도 고고하게 피어나 그 고결한 기품을 유지한다. 그래서 소나무, 대나무와 더불어 세한삼우로 불리며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래서 우리도 꽃도 보고 매실차도 해 먹으려고 밭가에 십여 그루를 심었다.

분홍

죽장 상사리는 추운 곳이라 다른 지역보다 모든 꽃이 조금씩 늦게 핀다. 매화도 늦었지만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다섯 장의 순결한 백색 혹은 연분홍빛 꽃잎을 가진 아름다운 꽃이다. 하지만 꽃자루가 없고 잔가지에 바로 달려 있어서 꽃을 오래 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잠시 머무르는 꽃을 찾아온 벌들의 날개짓이 분주하다. 쉬이 가는 아쉬움에 옛 선비들은 매화나무를 분재로 만들어 서재에 두고 매일 보며 즐겼다고 한다. 오죽 좋아했으면 퇴계 이황 선생의 마지막 말이 '매실나무에 물을 주라는 것'이었겠는가. 매화는 줄기가 구불구불 틀리고 가지가 성글고 야윈 것, 늙은 가지가 괴기하게 생긴 것을 진품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우리 집에 심겨 있는 매실나무가 진품이 되려면 오랜 수양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얀

매실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것을 보니 다산 정약용 선생의 '죽란시사'란 시모임이 생각난다. 선생은 친구들과 봄에는 매화가 꽃망울 터트릴 때 한 번 모이고. 살구꽃이 필 때 또 모이고. 복숭아 꽃이 막 피면 또 모였다. 그리고 참외가 익을 무렵에 여름을 즐기기 위해 모였다. 날씨가 서늘해지는 가을에는 연꽃 구경을 하기 위해 모였고, 또 국화가 서리를 먹고 그윽한 향기를 피울 때 또 한 번 모였다. 그러다가 큰 눈이 내리는 겨울날에 또 한 번 모였다고 한다. 이렇게 일년에 일곱 번을, 술과 먹 벼루를 장만하여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우정을 쌓았다고 한다. 정말 여유롭고 멋진 삶인 것 같다. 우리는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이런 시간을 만들지 못했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바쁜 일손을 잠시 내려 놓고, 친구들을 만나서 차도 마시고 특별한 행사도 하며 살아야겠다. 살면 얼마를 산다고 돈만 쫓아가겠는가.

매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