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창]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2022-08-02     장기성 기자
헤르만

세상에는 읽으면 힘이 되는 명언(名言)들이 참 많다. 쉴러는 ‘기회는 새와 같은 것, 날아가기 전에 꼭 잡아라’라고 했고, 괴테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라고 파우스트에서 말했으며. 카프카는 ‘모든 죄악의 기본은 조바심과 게으름이다’라고 했다. 위에 제시한 명언들과 견주어 볼 때,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글귀도 명언이 된지 오래다. 이 명언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대사의 일부이다.

《데미안》은 1919년에 출간되었는데, 우스꽝스럽게도 이 책의 저자는 ‘헤세’가 아닌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假名)으로 출판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소설은 당시 권위 있는 문학상인 ‘폰타네상’을 받을 정도로 출판과 동시에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연히 ‘에밀 싱클레어’라는 정체불명의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고, 결국 1년 만에 한 독문학자가 문체 분석을 통해, 《데미안》은 헤세의 작품임을 밝혀냈다. 당시에 이미 유명 작가였던 헤세는 “오직 작품성만으로 평가 받고 싶었다”면서 가명을 쓰게 된 연유를 밝혔다. 헤세의 말대로 당시 이 소설을 접했던 많은 젊은이들은 ‘에밀 싱클레어’라는 소설가가 동년배의 애송이 작가라 확신했다. 작품내용이 온통 젊은이들의 얘기로 뒤덮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소설

작가 헤르만 헤세는 청춘의 고뇌와 휴머니즘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어느 작가든 자신의 직간접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쓸 수밖에 없긴 하지만 헤세의 경우는 유별나다. 이 《데미안》이란 작품도 헤세의 젊은 시절 삶의 궤적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 유독 눈길을 끈다.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작품 데미안 간에는 어떤 개연성이 숨어있는 것일까?

헤르만 헤세는 1877년 7월 2일 남부독일 칼프(Calw)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고, 어머니는 유서 깊은 신학자 집안 출신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재혼녀의 신분으로 헤세의 아버지와 결혼을 했다.

헤세가 4세 때, 아버지는 스위스 바젤(Basel)로 발령받으면서 가족과 함께 이주해 약 5년간 그곳에서 살았다. 얌전한 겉모습과는 달리 그는 활력이 넘치는 악동(惡童)이었으며 그가 7세 때 바젤의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초등학교에 들어갔으나 잘 적응하지 못했다. 13세 때는 라틴어 학교에 입학했고, 이듬해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역시 속박이 심한 기숙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신학교 생활을 하면서 헤세는 방황을 거듭했다. 탈출 소동을 벌이고, 신경쇠약에 걸리고, 자살 시도도 하게 된다. 결국 신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한동안 머물다가, 다시 일반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만두고, 공장 견습공, 서점 직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한다. 《데미안》작품에는 젊은 시절 헤세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고뇌가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헤세의

27세 때, 헤세는 9세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을 하게 되고, 스위스 접경 지역 작은 마을에 정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헤세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다. 헤세는 마리아와의 사이에서 아들 셋을 낳고 안락하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지만, 그는 그 안락한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방황을 거듭한다. 34살 때 헤세는 그의 친구와 인도와 스리랑카 등지를 여행했으며, 이 여행을 바탕으로 《싯다르타》라는 소설이 탄생한다.

37살 때는 아버지의 죽음과 아들의 투병, 아내의 정신병 등 고난이 이어졌고, 헤세도 신경쇠약에 걸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제자인 랑 박사에게 정신분석학을 집중적으로 배우게 된다. 이 정신분석학의 습득은 그의 작품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는데, 그 영향의 첫 시험대는 42살 때인 1919년 대표작 《데미안》작품이었다. 소년의 고뇌와 자기 인식을 탐구하는 과정을 그린 이 성장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혼란과 우울증에 빠진 독일 국민에게 큰 영향을 끼치며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이 발표되었을 때 그 파장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비견될 만큼 선풍적이었다. 성장기에 접어든 한 소년이 자신을 둘러싼 안락한 세계를 깨부수고 새로운 세상의 무대로 나서기 위해 탄생과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라는 명언이 여기서 태동한다. 새가 날기 위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낡은 세계를 극복하고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미안》작품은 아래와 같은 스토리를 담고 있다.

헤르만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나’(싱클레어)는 열 살 때 고향의 라틴어 학교에 입학한다. ‘나’의 생활 속에는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가 공존하고 있었고, ‘나’는 어두운 세계에 이끌려 크로머와 만나면서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다가 ‘나’는 데미안을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어둠의 세계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상급 학교에 진학한 후 데미안과 헤어진 ‘나’는 사춘기를 겪게 되고, 다시 어두운 세계에 빠져든다. 그러나 데미안의 편지를 통해 세상과 자신에 대해 깨닫고, 대학 진학 후 데미안을 다시 만난다. 그 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데미안은 죽고 ‘나’는 마음속에 데미안을 닮은 ‘나’가 있음을 발견한다.‘

한국에서 헤세 문학은 청소년 소설의 바이블로 수용되었다. 데미안의 경우 해를 거듭하면서 수차례 번역될 정도로 번역자나 독자들에게 큰 주목을 받았다. 1960년대 출판사들은 데미안을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문제작’으로 소개했다. “젊은 날의 고뇌의 상을 부각한 청춘의 바이블!”로서 “가혹한 현실 앞에서 참다운 자아의 운명을 찾고자 고독하게 모색하고 지치도록 갈망하고 죽음에 의하여 자기의 운명을 성취하는 인간상”을 제시한다고 소개했다. 전혜린은 데미안(1964)을 번역했으며 수필집(1966)에 실린 해설에서 데미안을 청춘의 고뇌를 표상하는 이데아로 파악했다.

결국 헤세는 인간의 본질적인 정신을 찾기 위해 물질문명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본질을 추구했다. ‘새는 알에서 빠져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명언이 여기서 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