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02)
무덤가로 한줄기 흰 물결이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렸다 흰나비가 되어 나부죽이 엎어지는가 싶더니 까무룩 흔적을 지웠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지만 걱정을 잊는 법을 알지 못했다
좀체 동구 밖을 벗어나는 법이 없던 마을 최고 어르신이 머리로는 남색 중절모를 살짝이 눕혀서는 멋을 부리고, 잿빛 두루마기에 나들이복으로 날아갈 듯 차려입고 길을 나섰다. 길을 가는 동안 만나는 동네 사람마다 황송하다는 듯 양손을 다소곳하게 모아쥐어 읍을 하며 인사를 건넸지만 못 본체 외면하며 지나간다. 팔랑이는 두루마기 자락에서 때아니게 찬바람만 쌩쌩하다. 아이들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전날과는 달리 만나는 아이마다 노려보는 눈초리가 매섭다. 하지만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한나절이 지나 집으로 돌아온 그 어른은 술기운도 없는 얼굴이 불콰하게 연방 헛기침으로 방문을 닫아걸어서는 두문불출이다.
그즈음 소문 하나가 동네를 감돌았다. 어르신의 외출은 다름이 아니라 군청을 찾은 자리에서 높은 양반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지청구 인양 심하게 꾸중을 들었다고 했다. 나이도 새파란 군수가 30여 년도 연상인 어르신을 두고 아랫사람 다루듯 말하길 동네에 아무리 도둑이 없고 착한 사람들만 있으면 뭣 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할 말이 궁한 어르신은 머리를 조아려 죄수 모양 침묵으로 내내 일관이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조롱인 듯 질문과 비난은 집요하여 드난살이든 뭐든 마을에서 일가족이 죽어 나간 마당에 양심에 가책이 없냐는 것이다. 들은 바로는 오냐 오냐 떠받들어 키운 버르장머리 없는 어린것들이 더 문제라는데 앞으로 대책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마냥 송구스러워 고개만 주억거렸다는 풍문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사랑의 매를 들 생각이 없냐며 심각하게 생각해 보라는 충고를 힐책당하듯 들었다는 얼굴은 똥 씹은 듯 일그러져 심각해 보였다. 한껏 조롱을 당해 돌아온 어르신의 무거운 침묵은 동네를 통틀어 찬 바람으로 쌩하게 일었다. 참새 떼가 모여들어 조잘거리는 방앗간에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어 버린 격으로 세월은 숨을 죽였다.
그날 이후 크고 작은 모임은 물론 사람들의 술자리에서조차 일가족의 애달픈 삶이 세인들의 입에서 묻히는 것으로 보아 인심을 동반한 세월은 진정으로 무정, 무심했다. 그렇다고 영영 잊힌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나브로 몇 년이란 세월이 물 흐르듯 흘러갔을까? 산골짜기로 겨우 내내 얼었던 얼음이 풀리고 해토머리가 지난 어느 해의 초봄이었던가?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을 맞을 즈음에 무덤가로 한줄기 흰 물결이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렸다. 큰 봉분에 술 한잔을 올려 따르고는 줄곧 작은 봉분 앞에서 눈물짓는 여인은 후줄근한 옷차림만큼이나 얼굴 전체로 잔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씨줄과 날줄을 따라 굵고 잔잔한 거미줄로 일그러진 모양새가 모진 세월을 건너왔음이 물씬 풍긴다. 나이보다 한눈에도 10여 년이나 겉늙어 보였다. 떨리는 손끝으로 큰 봉분을 돌아 물기 가신 잡초를 뜯으며 원망 가득한 눈길을 때때로 보내는 여인은 작은 봉분을 쓸어서는 어깨를 들먹였다. 얼굴 가득 처연한 눈물이 때맞추어 찾아든 햇살에 윤슬로 부서지는데 얼음장처럼 번들거렸다. 그런 가운데 보금자리를 튼 듯 언제까지나 떠날 줄 모르고 앉았다가 홀연히 흔적을 지운 자리로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부질없이 일었다가는 스러져간다.
그로부터 달포가 지난 어느 날이었던가? 무덤가에도 그간 무명초가 찾아들어 형형색색으로 꽃을 피운 날이었다. 천사처럼 하늘에서 내려왔을까? 팔랑팔랑 흰나비가 날아들어서는 ‘나비야~ 청산 가자!’범나비야 너도 가자며 너울너울 날고, 토종벌이 분주히 꽃을 찾는 봄날을 맞아 봉분 앞으로 불현듯 흰 그림자 하나가 어른거린다. 처음 왔던 여인과는 달리 몸 둘 바를 몰라 안절부절 못하는 여인은 약관에도 못 미쳐 보이는 듯 양 볼이 발그스레한 것이 한층 앳돼 보였다. 얼굴은 자리가 자리인 만큼 간단하게 마무리한 기초화장으로 봄 햇살을 닮았고, 몸에 걸친 의복은 궁벽한 산간 벽촌을 찾아든 소복치고는 꽤 값비싸 보였다. 옷차림만큼이나 무덤에 예를 취하는 행동도 앞선 초로의 여인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작은 봉분은 본체만체 오로지 큰 봉분 앞에 철퍼덕 엎어져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다. 때때로 설움이 복받치는지 꺼이꺼이 애달프게 울부짖는다. 봉분이 생겨난 모든 연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듯 기초화장 차 옅게 바른 호분(胡粉)을 눈물로 씻는다. 어둑살(‘땅거미’의 방언)이 길 때까지 망부석으로 퍼질러 앉아 보이던 여인이 돌연 사라졌다. 흰나비가 되어 나부죽이 엎어지는가 싶더니 까무룩 흔적을 지웠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순리에 내맡겨졌다. 본래의 자연으로 돌아가기 시작이다. 원래부터 그 땅도 내 땅이 아니라 자연을 들어 빌려서 누웠던 모양이다. 살은 물로 씻고 뼈는 흙으로 녹아 사위어가는 중에 하늘 떠받히던 봉분은 평지로 스러지는가 싶더니 잡풀이 자라 흔적을 지운다. 그것도 잠깐, 어느 순간 잡목으로 우거지는가 싶더니 크고 굵직한 참나무 몇 그루가 솟아올라 낙엽을 떨구어 계절을 헤아려갈 뿐이다.
그 기막힌 사연에 앞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마님은 은전을 베풀어 얼마간의 재물을 더 얹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기가 찼다. 속수무책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 같았다. 대명천지에 이런 일도 다 있단 말인가? 이대로 그 잘난 집안의 도련님 혼사가 정해지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한심스러웠다. 그즈음 할머니에게 이상한 버릇하나가 생겼다. 시시때때로 앞산을 넘는 재를 바라보며 육두문자를 섞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까재비(‘애꾸 또는 가자미’의 방언)처럼 홉뜬 눈으로 노려보는가 하면 철천지원수를 대하는 듯 인상을 찌푸리다가는 팔을 휘휘 내 젖는다. 감골댁이 이유를 물어도 그저 멀겋게 쓴웃음을 지을 뿐이다. 어느 때는 차마 쳐다볼 수가 없다는 듯 아예 고개를 숙이고 지난다. 날이 지날수록 버릇은 습관이 되어간다. 보다 못한 고모가
“엄마 왜 그래! 저 앞산하고 무슨 원수를 졌어?”하고 묻자
“이게다...! 이년아 너는 몰라도 돼!”하고는 입을 다무는데 입술은 여전히 실룩, 옆으로 가늘게 치켜든 눈초리는 앞산 고갯마루에 머물러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댁으로부터 현재까지는 아무런 해코지가 없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할머니도 일에 묻혀 돌아앉은 듯 잊고 사는 것이 상책이라 여겨 눈만 뜨면 호미를 들었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지만 걱정을 잊는 법을 알지 못했다. 죽은 아이 불알 만지는 격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시시때때로 치미는 부아가 불쑥불쑥하는 데는 방법이 없었다. 잊을 만하면 잠잠하던 걱정이 억하심정으로 불쑥 솟을 때는 가슴이 쓰려서 아리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지심을 잡는다며 텃밭을 오가며 답답한 가슴을 말끔히 비워서 긁어내듯 따닥따닥 긁어갈 뿐이다.
여름이란 계절은 알곡이 살을 붙여 불어나는 만큼 잡초도 덩달아 극성이다. 비가 잦고 무더운 날에는 하루가 무섭게 밭이랑은 이랑마다 진녹색으로 흐드러졌다. 뽑고 또 뽑아도 한정 없이 흐드러져 질펀하다. 그뿐만 아니라 강렬한 자외선을 동반한 뙤약볕도 농부들을 괴롭히기는 마찬가지였다. 등허리가 따갑다 싶으면 며칠을 못가 살갗은 뱀이 허물을 벗듯 벗어져 내렸다. 모기의 입도 모질고 따가웠지만 벗겨진 피부는 간지러움을 너머 쓰리고 아려 때로는 밤잠까지 설치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간 집안 명의로 문서를 닦은 논밭이 얼마간 생긴 탓에 일에 재미가 붙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