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유도회 월배 지부에서 충남 서산에 있는 해미읍성 답사
월배 유도회 시니어들의 해미읍성 탐방
성균관 유도회 대구광역시 월배지부 유도회(회장 우신남)는 5월 9일(화) 월배지부 유도회 회원들의 견문을 넓히고 단합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충청남도 서산 해미면에 있는 해미읍성을 답사하였다.
해미읍성은 조선 제3대 태종대왕이 1416년에 군사를 이끌고 도비산에 올라 서산 태안지방의 지형을 살펴보면서 덕산에 있던 병마절도사영을 해미로 옮기도록 지시했다. 태종 17년(1417년)부터 세종 3년(1421년) 사이에 해미읍성을 쌓았다.
해미읍성은 성곽 둘레 1,800m, 높이 5m, 면적 약 20만㎥의 규모로 조성됐다. 해미읍성은 ‘탱자성’으로도 불린다. 적군의 접근을 어렵게 하려고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성 주변에 심었다.
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남문)과 함께 동문과 서문이 있다. 성안에는 동헌, 어사, 교련청, 작청, 사령청 등의 관아 건물들이 분포되어 있다.
해미읍성은 병인박해(1866년) 당시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1,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였던 역사적 슬픈 사건이 일어났던 순교 성지이기도 하다.
현재 전하는 우리나라의 읍성 가운데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닌 유적지이다. 1974년에는 동문과 서문을 복원하였고, 1981년에 성안의 일부 지역을 발굴하였다. 발굴한 결과 현재의 동헌 서쪽에서 객사 터가 확인되었고, 아문 서쪽 30m 지점에서 옛 아문 터가 발견되었으며, 관아를 둘러쌌던 돌담의 자취도 확인되었다.
해미읍성은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석성으로 충청도 지역의 군사 방어를 담당했던 병영성으로 국방은 물론 내란 방지 등의 임무를 맡았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72호로 지정된 수령 300년 된 회화나무(호야 나무)가 아직도 자라고 있다. 병인박해 당시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이 회화나무 동쪽으로 뻗어 있던 가지에 매달아 고문하였던 나무이다.
이 회화나무 동쪽 가지는 1940년대에 부러졌고, 가운데 줄기는 1969년 6월 26일 폭풍으로 부러졌으나 여러 차례 외과 수술을 하고, 토양을 개량하여 보호,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