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3)

장가를 들 나이의 아들과 말 만한 딸이 한방을 쓰는 것에 대해 염려가 아니 되는 바는 아니었다 아비, 어미를 용서하라며 세 칸 방을 얻는 것으로 그간의 깊은 시름을 덜었다 걱정을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지만 벙어리가 냉가슴을 앓듯 자나 깨나 가슴앓이다

2023-09-11     이원선 기자
9월

“오냐! 오냐 올~치 그렇지!” 그 모습이 기특하여 머리를 쓰담-쓰담 할 때면 힘 잃은 눈동자로 무람없이 어머니의 얼굴을 뚫어질 듯 올려다볼 뿐이다. 그도 잠시 어머니가 등을 보이기가 무섭게 앞발로 밀어내고는 눈만 껌벅거린다. 사별을 알기나 한 것처럼 눈물만 줄줄 흘려 웅그려 앉았다. 그러던 삼 일째가 되던 어느 날인가? 새벽 눈을 맞으며 슬며시 자리를 비운 백구가 언제 왔는지 제집 앞에서 끙끙 앓는다.

의도했는지 아니면 우연인지 이웃서 쥐를 잡고자 놓아둔 사잣밥을 귀신같이 찾아 먹고는 단장의 고통을 홀로 감내하여 저승길을 재촉하더니 기어이 무지개다리를 넘는다. 떨궈진 고개 앞으로 놓인 밥그릇엔 햇살에 부서지는 돼지 뼈만 덩그렇게 하얗다. 결국에 하얀 옥양목을 수의로 삼아 할머니가 잠든 아래쪽, 양지바른 터에 잠들어 저승길의 길동무를 자처다. 늦었다며 잰걸음으로 레테의 강을 훌쩍 건너서는 할머니의 뒤를 달랑달랑 따랐다. 뒤를 이어 백구의 빈자리는 하룻강아지 모양 재롱둥이의 누렁이가 대신이다. 이번에도 감골댁이 장을 갔다 오는 길에 지인으로부터 공으로 얻었다면 묶어놓음으로써 허전한 빈자리가 채워졌다.

그로부터 보름달이 세 번이나 뜨고 졌을까? 언제까지나 함께 할 줄 알았던 성주댁네가 대처로 이사다. 우연한 결정으로 이사 갈 계획이나 생각 따위는 애당초 없었다. 장난처럼 맏아들이 친구 따라 대처로 나간 것이 그 시작점이다. 며칠을 놀기 삼아 다녀온다는 길에 생각지도 않은 일자리가 생겨 난 때문이다. 본인도 일자리가 생길 거라곤 생각지도 않은 가운데 숙명처럼 이뤄졌다. 영화 ‘죠스’에서 조연이 주인공이 되듯이 들러리가 주연이 된 격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기어이 농사꾼을 면해보려 연줄을 잡아 돈을 찔러 어렵게 부탁해도 하늘의 별을 따는 듯 아들의 취직이 용하기도 한 한편으로 대견한 성주댁은 아침저녁으로 맞는 조석이 시시때때로 걱정이다. 급하게 사글셋방을 얻어 잠자리는 해결을 보았지만 삼시 세끼, 먹는 일이 발목을 잡는다. 성주양반과 성주댁의 입장에서 그것은 여간한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촌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데 끼니를 걸러 몸이 상하게 이대로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는 것에 머리가 온통 뻐근하다.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은 물론 후일 제사상에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떠놓을 사람도 맏아들이고, 술 한 잔 칠 사람도 맏상제라는데 때를 굶어 몸이 상할까 싶어 자나 깨나 노심초사다. 며칠을 내외가 이런저런 궁리 끝에 냉정하게 내린 결론은 여동생을 올려보내기로 낙점이다. 남매지간이지만 장가를 들 나이의 아들과 말 만한 딸이 한방을 쓰는 것에 대해 염려가 아니 되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딸내미야 어떻게 되든 말든 아들이 우선이고 최고라는 것에는 어쩔 수가 없다 여겼다. 그와 같은 부모의 결정을 전해 들은 여동생은 물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생선처럼 펄쩍 뛰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눈물부터 앞세웠다. 오빠랑 부부도 아니고 어떻게 한 방에서 같이 잠을 자냐며 입에다 게거품을 물었건만 소용이 없었다.

“뽀드득뽀드득 발가락을 후빈 손가락으로, 어기적어기적 코딱지를 후벼낸 손가락으로 과일을 집어 먹는 추접스럽고 짐승 같은 오빠를 어떻게 믿어!” 죽기 살기로 반대 의견을 냈지만 한번 내려진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딸의 결사반대에도 워낙에 완고한 내외는 이구동성으로 집안을 위하고 가문의 대들보 같은 오빠를 위해 여동생으로서 그만한 희생은 당연하단다. 네 몸가짐은 철갑을 둘러치든 네가 알아서 잘 갈무리하란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단다. 딸자식이야 후일 시집을 가면 출가외인이라 남이나 다를 바 없다며 이런저런 구차한 이설을 달지 말란다. 어떻게든 모면해 볼 요량으로 이러니저러니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았건만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으로 씨알도 안 먹힌다.

“그렇게 오빠의 노리갯감으로, 짐승 취급할 바에 낳기는 왜 낳았어! 딸내미는 아부지(‘아버지’의 방언) 엄마 자식도 아니야!” 최후까지 어금니를 악물어 반항했건만 워낙 그 뜻이 완강하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항복이다. 비록 부모님의 뜻을 따랐다곤 하지만 억울하고 분한 한편으로 서러운 여동생은 꾸역꾸역 흐르는 눈물을 소매 끝으로 훔치며 사지를 기어들 듯 대처로 떠났다. 괴나리봇짐과 다를 바 없는 허름한 옷 보따리 하나를 가슴에 껴안고는 첫새벽에 일어나 설익은 밥을 젓가락으로 세어가며 먹는 둥 마는 둥 길을 나섰다. 뽀얀 먼지를 꽁지 끝에 매달아 가는 헌털뱅이 버스라서 더 서러운 첫차에 몸을 실었다.

한데 행운이 겹쳐 그랬는지 생각지도 않게 여동생마저 직장을 구한 것이었다. 평소 효녀란 소리를 심심찮게 듣고, 예의 바르고, 곰살궂은 여동생의 행동거지가 자취 집 안주인 마음에 흡족했던 모양이었다. 한날같이 생글생글 웃어 오라버니의 뒷바라지를 묵묵히 감내하는 모습이 당차서 대견하고, 알콩달콩한 살림살이가 예쁘게 보였는지 말을 꺼내지도, 부탁도 아니 했건만 주인집의 적극 추천으로 제법 그럴싸한 회사에 경리직이란 요직을 꿰차버린다. 일이 그렇게 생각 의외로 돌아가다 보니 아들과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내외는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이사가 결정되자 기다렸다는 듯 성주댁은 대처에 들려 방부터 구했다. 딸내미를 불러서는 그간 별일이 없는 것에 고맙다며 두 손을 부여잡고는 아비, 어미를 용서하라며 큰방에 딸린 두 칸의 방, 세 칸 방을 얻는 것으로 그간의 깊은 시름을 덜었다. 집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한시같이 마음을 짓눌러오던 무거운 짐을 덜었다며 베개를 높이 괴고는 팽팽하게 당기던 오금을 풀어 두 다리를 길게 뻗었다.

이윽고 이삿날을 맞아 성주댁을 에워싼 동네 사람들은 너나없이 생이별이 가슴 아프다고 하소연이다. 눈물이 앞을 가려 어떻게 보내냐며 손을 부여잡아 한마디씩이다.

“방만 얻어주면 그만이지! 뭣~하려 멀건 대낮에도 코를 베 가는 도적놈 소굴 같은 대처로 가길 가? 남매지간, 그렇지! 하여간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저들 둘이 알아서 밥 안 굶고 잘 살겠지! 공연히 따라나섰다가 찬밥신세에 구박-덩어리나 되지 말고 여기서 아웅다웅 정을 나누며 예전처럼 같이 사세!” 손에 손을 잡고는 애가 달다 눈물을 보였건만 어쩔 수 없었다.

“설마하니 산 입에 거미줄을 칠까요? 둘 남매가 벌어서 보태고 아직은 성주양반 힘이 그럭저럭해서 노가다(‘막일’의 비표준어) 판이라도 들락거린다면 먹고 사는 걱정 없어요!” 그렇게 이런저런 이치를 따지고, 고려하여 내외가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이사인 만큼 번복될 수는 없다는 데는 동네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여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말로는 몸뚱이를 들어 겹겹이 철갑을 치라고, 씻을 일이 있으면 낮 동안 씻고, 혹여 회사서 회식이라도 있어 술이라도 먹은 날에는 특히 조심하라고, 그런 날에는 소매조차 걷지 말라고, 금물이라 어르고 달랬지만 나날이 걱정이 아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걱정을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지만 벙어리가 냉가슴을 앓듯 자나 깨나 가슴앓이다. 간혹 걱정이 지나쳐 밤잠을 설치는 날도 수월찮게 늘어난다. 가위에 눌려 비명을 지른 날도 벌써 수일째다. 오누이도 따지고 보면 남녀 간인데 바람만은 안 된다고 길길이 날뛰던 자신이 맞나 싶었다. 그 지난한 시간에 마침표를 찍듯 이삿날을 맞아 화물차 한 대가 마을 어귀를 꾸역꾸역 돌고 돈다. 비좁은 고샅을 비실비실, 성주댁 대문 앞에 거짓말처럼 멈췄다. 촌구석 살림살이에 장정 몇이 몇 번을 들락거리자 화물차의 짐칸에 쌓이는 만큼 초가삼간이 썰렁해진다. 점점 비워지는 집안을 그리움으로 일별하는 성주댁 주위를 동네 아낙네들의 종종걸음이 떠날 줄 모른다. 그렇게 성주댁을 에워싸 손을 맞잡아 쓰다듬어가는 김천댁이

“이봐 동~생! 이제 자네가 솜씨를 부린 그 맛있는 음식들은 언제 어디서 맛을 볼 수 있을거나!” 눈물 글썽 바라다보는데 한층 무안한 표정에 고개를 숙이는 성주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