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꽃 이야기] 향기 품고 온 옥잠화

순백의 꽃을 피우다

2023-09-13     장성희 기자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솔솔 풍겨온다. 향기 따라 가보니 정자 옆에 있는 소사나무 아래의 꽃에서 난다.
긴 줄기의 꽃대마다 하얀색 꽃을 너무 아름답게 피워 놓았다. 보드라운 꽃잎은 화려하지 않으면서 아주 고고하고 청순한 자태를 자랑한다. 마치 길쭉한 모딜리아니의 여인들을 보고 있는 듯하다. 연약해 보이는 줄기와 잎도 고상하게 보인다.

옥잠화가

비비추를 닮은 저 화초는 바로 옥잠화이다. 비비추는 연보라색 꽃을 피우지만 옥잠화는 티끌 하나 없는 순백의 꽃을 피운다. 한없이 맑은 모습이다.
옥잠화에는 전설도 있다. 옛날 중국의 석주라는 곳에 피리의 명수가 살고 있었다. 어느 여름 저녁 그의 아름다운 피리 소리를 들은 선녀는 월궁의 공주님을 위해 다시 한번 불어주기를 간청하였고 그 기념으로 옥비녀를 뽑아 주었다.
그런데 피리 부는 사람이 옥비녀를 받으려는 순간 땅에 떨어져서 아깝게도 깨져버렸다. 그 자리에 이름 모를 흰 꽃이 피었는데, 그 꽃봉오리가 선녀가 준 옥비녀와 흡사하여 사람들은 이 꽃을 '옥잠화'라고 불렀다고 한다. 길게 나온 꽃 모양이 옥비녀 같다고 하여 그렇게 붙인 것이다. 길쭉한 꽃봉오리를 보면 영락없는 옥비녀다.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

모딜리아니의

옥잠화의 향기는 마치 아카시아와 라일락의 내음을 모아 놓은 듯 상큼하면서도 감미롭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은은한 향기라서 좋다.
​올해도 어김없이 옥잠화의 계절이 돌아왔다. 늦여름을 몰아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때에 순백의 꽃을 피우는 옥잠화는 해가 지는 오후에 피었다가 아침에 오므라드는 야행성이다. 그러니까 늘 시든 모습을 보기 쉽다. 일부러 밤에 나와 꽃을 살펴보기로 했다. 정말 몇 송이의 꽃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생기가 느껴지는 아주 싱그러운 모습이다. 모든 것이 잠드는 밤이어서인지 향기도 더 진해진 것 같았다.

밤에

옥잠화 향기로 시작하는 가을, 아침이 밝았다. 꽃말은 기다림, 추억, 조용한 사랑이란다. 세 가지 모두 적당하게 어울리는 느낌이다. 멀리서조차 그 존재를 확실하게 알게 하는  모습과 달콤한 향기가 발걸음을 끌어당긴다. 올해도 낮에는 오므리고 있다가 밤이 되면 얼굴을 펴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옥잠화​가 있어 삶이 더 아름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