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42)

소금단지가 요즘의 냉장고를 대신하여 최적의 보관 장소다 철딱서니 없는 이것아 인자 이 어미가 죽고 나면 철 좀 들어야제! 우주에서 떨어진 깨알 하나가 지구에 박아 둔 바늘에 꽂히길 간절히 염원하는가

2023-11-13     이원선 기자
3월

두메산골에서 고등어는 연중행사 때나 맛볼 수 있는 귀한 반찬이다. 그런 만큼 전례에 따라 돌가루포대나 헌 달력 쪼가리에 말아서 소금단지에 묻었을 어머니다. 상할 것을 대비, 소금으로 염장을 한 고등어라 할지라도 며칠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의 보관은 힘들다. 따라서 소금단지가 요즘의 냉장고를 대신하여 최적의 보관 장소다. 수분을 흡수하는 소금의 성질을 이용한 방법으로 두세 달은 넉넉하다. 따라서 소금이 천연방부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돌가루포대라곤 하지만 고등어와 소금을 완전하게 차단하기는 불가능하다. 긴 시간 동안 서로의 피를 내어주는 융화는 어쩔 수 없다. 그런 가운데 돌가루포대에 쌓인 고등어의 수분이 빼져나간 자리를 간수(소금물에서 염화나트륨을 결정화시킨 뒤에 남는 액체)가 대신이다. 따라서 먹을 때 쌀뜨물에 씻는 등의 방법으로 염분을 제거한다고 해도 완전하지가 못해 무척 짜다. 어쩌면 소금보다 더 짤지도 모른다. 작은 토막 하나로 밥 한 공기가 너끈할 정도로 염분이 가득하다.

언젠가 무심코 젓가락도 푸짐하게 듬뿍 집어서 한입에 홀라당 물었다가 된통 혼이 난 적이 있다. 욕심이 화를 부른 순간이다. 입에 넣는 순간 입안이 완전 소금단지다.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상태가 흡사 소태를 씹은 표정이다. 얼마나 지독한지 아침에 먹은 고등어의 짠맛이 점심을 지나 저녁때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하루 내 소금을 입에 문 기분으로 지냈다.

그런 보관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정월 대보름날에 곧바로 구웠다. 이는 평소의 어머니답지 않은 행보다. 당장 3월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생신을 터부시한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 음식으로 부럼과 부침개와 삶은 돼지고기 등이 흥청망청 널렸는데도 말이다. 이는 다분히 고모를 배려한 것으로 보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어머니의 생각에 고모를 돌아가신 할머니에게는 효녀로, 아버지에겐 착한 여동생으로 변신시키려면 지금이 딱 적기라 판단한 모양이다. 고등어가 구워지며 풍기는 비린내가 온 동네 속속들이 스며들 듯 고모가 남기고 간 향기 또한 더불어 퍼져나갈 것이라 예상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그간 3~4년 동안 고모에게도 작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출가외인을 의식하여 가정에 충실했던 모양이다. 시댁의 귀신으로 남기로 마음을 다잡은 모양이다. 그런 와중에 고모는 과거를 지우개로 지우듯 말끔히 지워가며 은연중 효녀로 탈바꿈을 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장례를 기점으로 과거는 과거일 뿐 호곡과 함께 눈물 바람이 졸지에 고모를 다시없는 효녀로 만들었던 모양이었다.

오늘 아침을 기점으로 고등어 세손의 효력은 곧장 나타날 것이다. 어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의 수다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살을 붙여서 퍼져나갈 것이다. 그 와중에 영희어머니가 합세, 의기투합으로 일조를 할 것이다. 세상에 그런 효녀 딸에 그런 여동생에 그런 아가씨가 없을 거라고, 아니면 곁 보기에만 그렇지 진짜 효녀였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으로 자자할 것이다. 그 단적인 예로 고모와 할머니가 한바탕 소동 끝에 등을 보이는 고모를 두고 할머니는 늘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 이것아 누가 뭐라든 네가 효녀다. 남들이 머라든 네가 이 어미에게는 둘도 없는 효녀다. 손수건 한 장 안 건네고 죽어 자빠져 썩어간 것들이 어떻게 효자 효녀란 말인가?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 내 눈앞에서 죽은 듯 자빠져서 송장처럼 누워있어도, 모기처럼 알짱거려 피를 빨아가며 애간장을 말려도, 독사처럼 혓바닥을 나불거려 씨부려(‘씨붙이다’의 비표준어)싸도 네년이 참말로 효녀인기라! 딸로 엄마로 더불어 한 세월을 산 네가 이 어미에겐 최고인기라!” 이마에 팬 주름에 골이 깊어지게 웃었다. 할머니의 그 말은 임종을 맞아서도 되풀이다. 머리맡에 앉은 아버지를 보고는

“애비야 고맙다” 다정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은 뒤 어머니를 찾은 할머니는

“그래 철수 에미야 없는 집구석에 시집이라고 와서 호강 한번 못하고 그간 고상만 진탕으로 많이 했제? 이게 다 죄 많은 이 시에미 때문이다. 에미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용서해다오! 그리고 참말 고맙다” 두 손을 꼭 잡은 뒤 뒤쪽에 앉아 훌쩍거리는 고모를 불러서는 얼굴을 찬찬히 쓰다듬어

“철딱서니 없는 이것아 인자 이 어미가 죽고 나면 철 좀 들어야제! 내 올케언니에게 부리던 어리광도 낼부터는 그만 부리고!”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본 다음

“그래도 끝순이 네가 있어서 이 에미는 그동안 많이, 무지하게 행복했단다. 누가 뭐래도 네가 이 어미에게 있어서는 심청이보다 효녀다” 손을 놓은 뒤 발끝에서 훌쩍거리는 영천댁을 불러서는

“애~ 야! 오냐! 내 딸아! 우야 든지 잘 살아야 한다. 그래야지 저승에 들어 얼굴을 들고, 떳떳하게 청솔댁 형님을 뵐 수 있제!” 손등을 쓰다듬는데

“예~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이제는 옛날의 제가 아닙니다. 그런 소리 마시고 어서 기운을 회복하셔야죠!”

“오냐 고맙다. 하지만 때가 되면 아니 가고 싶어도 가야 하는 것이 저승길 아니더냐!” 아버지를 돌아보며

“애비야! 내가 없더라도 이~ 애, 내 수양딸, 내 딸 영천댁을 친여동생 이상으로 보살펴서 돌봐야 하느니라! 그랬으면 좋겠다. 애비야 꼭 그랬으면!” 어렵게 말을 마치고는 누군가를 찾듯 한참이나 방안 구석구석을 휘두른다. 그즈음 희뿌연 문살로는 겨울의 늦은 햇살이 오롯이 스며들어 불이라도 난 듯 온통 불그레하다.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는 듯 고요한데, 침묵을 깨듯 바람을 탄 낙엽 한 잎이 긴 그림자를 끌어와 문살을 대각선으로 흘러서 저편으로 팔랑 몸을 뒤집는다. 동시에 할머니의 손이 움찔하는데 얼굴로는 그리움 한 자락이 긴 여운으로 남아 찐득하다. 저 문으로 누군가가 불청객으로 불쑥 들어오기를 무람없이 기다리기라도 하는가? 하지만 소슬바람만 을씨년스럽게 지나갈 뿐 인기척이라곤 없는 문고리다. 인적이 끊어진 치악산 상원사 동종이 울 듯 저 문고리가 덩그렇게 울면 5억 7천만 년 후에나 나투신다는 미륵불이 날짜를 잘못 짚어 눈앞으로 현신이라도 하길 기다리는가? 미동 없이 노을빛이 불그스레하게 물든 문짝을 바라다보는 할머니의 눈에 애증의 그림자가 설핏하여 애달프다. 그토록 화두로 마음에 품어왔던 석장승이 옷소매를 휘둘러 너울너울 춤추기를 바라는가? 바닷속에서 천년을 기다린 거북이 마침내 솟아올라 구멍 난 판자를 만나고, 그 구멍에다 머리를 들어 밀기를 돈수백배(頓首百拜) 바라나? 우주에서 떨어진 깨알 하나가 지구에 박아 둔 바늘에 꽂히길 간절히 염원하는가? 다 부질없는 일, 소풍처럼 왔다가는 삶 속에서 나는 평생을 살며 삼독(사람의 착한 마음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로 욕심, 성냄, 어리석음 따위를 독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의 죄업을 얼마나 지었을까? 아쉬움과 미련과 후회로 가득하던 동공이 흐릿하게 힘이 풀린다. 이내 기다림을 접은 듯 가만히 자리에 누운 할머니는 눈물 한 방울로 이승에서의 마지막 흔적을 남긴다. 가슴 깊숙하게 들이마셨던 숨을 숨비소리로 마지막 한 줌까지 아낌없이 내놓는다. 그간 티끌이 구르는 소리에도 움찔움찔 민감했던 귀는 닫고, 한 번에 밝은 세상을 보고, 한 번에 어둠을 가져왔던 눈꺼풀을 천천히 내려놓는다. 허공을 휘둘러 애써 잡은 어머니 손에서 마지막 미련을 떨쳐 힘을 잃는다.

지나는 길에 바람처럼 들렸다는 고모의 그간 시집살이는 어떠했을까? 할머니도 돌아가신 마당에 뜬금없이 웬 고등어 선물일까?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안아서 머리 한번 귀엽다 쓰다듬어 준 적 없는 조카를 찾아서 학용품값에 옷값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보다는 할머니 사후 그동안 뻔질나게 드나들던 친정 나들이를 칼로 자르듯 발걸음을 끊은 고모의 그간의 사연이 궁금하기 짝이 없다. 풍문처럼 떠도는 소문에는 고모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는 전언이다. 믿어보자니 유언비어처럼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기연가미연가 의심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