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 삼종경기, 암벽등반 하는 서문시장 열린 도서관 관장

정종달 주민해설사를 만나다!

2024-02-26     우남희 기자

서문시장은 우리나라 3대 시장이라고 할 정도로 큰 시장이다.

70년대에는 섬유산업의 발달로 서문시장은 전국 최대 의류 포목 도매시장으로 전국의 상인들이 몰려들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산업의 변화로 섬유산업이 쇠퇴하면서 전국에서 몰려드는 상인들뿐만 아니라 대구의 상인들도 서울로 물건을 하러가는 역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온 몸으로 겪으면서도 시장을 지켜 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인들을 위해, 시장을 찾는 지역민들을 위해 문화 공간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는 열린 도서관 관장 정종달(65)씨를 만났다.

서문시장

시장에서 일하게 된 동기라면?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했습니다. 4학년 1학기 학기말 이후 본격적으로 시장생활을 했습니다. 남은 2학기는 졸업학점인 3학점만 남았기에 야간수업을 들었으니 학과 친구들에 비해 조기 취업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내기 직장인이라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는데 그걸 보고 근무 경력이 짧은데도 불구하고 서문시장 내에 있는 출장소의 소장 소임을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장에서 일을 했고, 일을 하면서 혈기왕성한 마음에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포목상인 대원상회를 차렸고 지금까지 40년 동안 해오고 있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경기가 좋아 정말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상권이 많이 약해졌다는 걸 실감합니다.

장학 사업을 한다고 하던데요

▶어렸을 때의 꿈이 선생님이었습니다. 물론 꿈을 완전히 이루지는 못했지만 대학 1학년 때부터 입대하기 전까지 고등공민학교에서 중학교 3학년 과정의 영어선생님으로 교단에 선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학생들에게 제가 어떤 선생님이 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잘 가르쳐 주는 선생님’,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어 달라고 말하겠지 했는데 뜻밖에도 ‘수업을 빼먹지 않는 선생님’이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학생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배우고 싶어 왔는데 정작 가르쳐줄 선생님이 자주 결석을 했었나봅니다. 그래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석을 하지 않겠다고 제 자신과 약속했습니다. 물론 중도에 포기하고 취업하는 학생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하고자 하는 그 학생들을 졸업시켰으니 약속을 지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졸업한 다음 해, 한 학생이 찾아와 고등학교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했다며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학생의 신분이라 돈이 없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주었습니다. 그 학생은 공부를 끝까지 해 당당하게 대학교의 교직원으로 취직했답니다.

공부에 한이 맺혀 주경야독을 하러왔지만 끝내 졸업하지 못하고 취업전선에 뛰어 든 학생들도 있다고 앞서 말했습니다. 그 학생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돈을 벌게 되면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기부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40년 동안 S학교에 일정한 금액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부금은 한 걸음에 1원씩, 1년에 500만 원 가량 적립합니다. 기쁠 때나 몸이 아플 때는 쇼핑하는 기분으로 적립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철인삼종경기, 암벽 등반 등 과격한 운동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서른 살 때, 위와 십이지장을 절제하는 큰 수술을 받았으며 그 후, 척추 측만증, 심장병 등을 앓고 있어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몇 번 쓰러졌지요.

건강을 위해서도 운동을 해야 했습니다. 저보다 더 많이 아픈 사람도 많고,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저처럼 아프면서 격렬한 운동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처음부터 과격한 운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천천히 걷다가 빨리 걷고, 뛰기에 이른 것입니다. 운동은 무엇보다 꾸준히 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대구철인클럽에서 3.8km 구간의 수영, 180.2km 구간의 사이클, 42.195km 마라톤을 17시간 내에 완주하는 종목인 아이언맨 코스를 완주했고, 암벽 등반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스포츠클라이밍 청소년대표팀 코치 겸 단장을 지냈고, 암벽 심판 1급 체육지도자, 산악2급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운동 때문에 살아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도서관 한쪽에 마련한 암벽장에서 암벽등반을 한 번씩 합니다.

열린 작은 도서관을 운영한다고 들었는데?

▶앞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조심한다고 해도 제 몸이 과부하가 걸렸는지 2016년에 또 쓰러졌습니다. 누워있는 날보고 “누워있으면 죽는다”는 아내의 말에 은퇴 자금으로 창고로 사용하던 공간을 나만의 휴게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암벽장과 탁구대, 자전거로라, 그리고 3천여 권의 책을 비치했습니다.

휴게 공간을 본 친구가 도서관으로 등록하면 좋겠다고 해서 도서관으로 등록을 하게 되었고, 친구들이 기증한 책, 부모님의 책을 더해 지금은 1만여 권의 장서를 구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동서양사상과, 역사에 관한 책들이 적지 않은데 아마도 다른 어느 작은 도서관 보다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문시장 5지구 동편(대구 중구 큰장로26길 12-5)에 위치해 있어 눈에 확 띄는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입소문을 타고 내방객이 조금씩 증가했는데 코로나가 터져 방문객의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작은 도서관에서 천아트 동아리 회원들의 활동장소로, 상인들의 회의 장소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휴식 공간으로 방문객이 다시 증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열린 도서관(평일 오전 10시~오후 6시. 무료 이용)으로 지역민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도서관 입구에 야생화 사진이 많은데 직접 찍은 것들인지?

▶입구의 야생화 사진은 저의 호기심의 일부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도서관을 운영한다고 하니 대구야생화연구회 회원님들이 전시한 사진들을 기증해 준 것들과 제가 찍은 사진들이 있습니다. 연구회 회원들과 한 달에 한두 번은 촬영을 가곤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도 지금까지 해온 취미생활을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서관

주민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중구청에서 지역민들에게 그 지역을 알리고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주민해설사를 선발하였습니다. 지원하게 된 동기 또한 상인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아내와 아들이 포목점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무원 시험 공부하는 아들을 시장으로 오라고 꼬드겼습니다. 그 아들이 포목점을 하면서 주차장을 운영하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주차관리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주차관리를 하다보면 운전자들이 사고 싶은 품목을 말하며 어디로 가면 살 수 있는지 많이 물어봅니다. 서문시장은 1~5지구, 동산상가, 아진상가, 건어물 상가 등으로 구성되어 규모가 큽니다. 무작정 가서는 헤매기 일쑤인데 그때마다 친절하게 가리켜 주었습니다. 그때마다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제 손님이기도 하지만 아닌 분들에게도 안내해주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주민해설사 선발제도를 알게 되었고 기회가 되어 시장 홍보맨으로 나서게 된 것입니다.

 그는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아프다고 좌절하지 않고 의지로 극복한 의지의 남자, 시니어다.

중구 주민해설사, 서문시장 열린 작은 도서관관장, 야생화 연구회 회원, 고등학교 운영위원장, 대신동 교육 나눔 위원장, 중구 장애인 후원회장, 대신동 주민자치 위원, 서문시장 1지구 상인회장, 인천갑문에서 부산 하단까지 국토종주걷기, 세계청소년 등반경기 선수권, 아시아 선수권 코치 겸 단장, 대구철인클럽 회장, 대구철인삼종경기 협회 부회장, 등반경기 1급 심판, 산악 경기지도자 2급, 이탈리아 돌로미타산군 등반 아이어맨 코스 완주 등의 경력을 갖고 있다.

생업에만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살아온 그의 삶은 시니어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에게도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3월이면 서문 야시장이 재개장 되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길 바라며, 열린 작은 도서관을 만남의 장소로 해서 커피도 마시고 책을 보며 자투리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