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79)
지악한 발길질을 옹골차게 아랫배에다 내지르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악담에 주먹질로 내가 그동안 겪어오던 내 낭군이자 아이의 아버지가 맞나 싶다 누군가 소리라도 지르면 바스러져 깨어질 것만 같은 가을하늘이 시리다
“저기 저~ 이것 봐 복녀! 늦었구먼! 얼른 갈 준비는 안 코 시방 방안서 뭣 하고 있는감! 그새 잠이 든 거야! 아~ 아니 갈 거여?”
“...!”
“아~ 얼른 가자니까! 그러네!” 독촉에 마지못한 듯 복녀가 잠결에 게슴츠레한 눈을 비벼가며
“아~ 워디를 가자고 닦달에 얼라처럼 보챈데유?” 투정에 가시가 돋는다.
“아~ 워디기는 워디여! 저기 저~ 쩌어기지 워디여!”
“아~ 저기 저~ 거기는 그짝 말대로 아니 가도 된다면서유! 또 간들 누가 있어서 천한 이년을 임 보듯 반긴다고유!” 심드렁한데
“아~ 천하기는 누가 그래! 아~ 그라고 오라는 기별을 일삼아 받았는데 어쩔거여!”
“아~ 기별이야 받았제 만지만 서도 일삼아 아니 가도 된다면 서유! 또 기별을 받았다고 예주록 갈 일도 없다면 서유!”
“하기사 그렇지만 서도 내 아무리 생각해도 가는 기 맞기는 맞제 싶으이!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가는 이참에 아~ 어쩔거여, 고개를 숙여 가며 아쉬운 소리에 내년에 씨 종자라도 넣어가며 부려 먹을 땅이라도 이바구를 좀 해보고!” 주섬주섬 무언가를 챙기는 소리에 이어
“아~ 거기는 정 오기 싫으면 집에서 조용히 누워 쉬던가!” 부스럭거린다. 그때 복녀는 선문답(禪問答) 같은 덕배와의 대화가 어쩜 이렇게도 닮았을까 싶었다. 아직은 부부라서 거런가? 쓴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누워 쉬던가’란 말에는 조용한 미소다. 전날 같으면 불같이 방문을 열고는 사람 말이 말같이 않냐며 이년 저년의 쌍욕도 모자라 발길질에 오지게 손찌검인데 별일이다 싶다. 어쩌면 그때 복녀는 은근하게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분에 겨운 덕배가 방문을 열고선 지악한 발길질로 옹골차게 아랫배에다 내지르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허전한 마음보다는 다행이란 한편으로 잠을 떨쳐 온전하게 정신이 들 무렵이다.
“아~ 저 인간이 시방 무어라 했던가?” 씨 종자라도 넣어가며 부려 먹을 땅을 이바구 한다고, 연신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던 복녀가 눈을 동그랗게 재차 찬찬히 곱씹는다.
“씨 종자가 뭐~ 뭐라고!” 하지만 홀로 가는지 마당이 조용한 데는 궁금증이 일어 기어이 자리를 털며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더니 저 비루먹을 덕배 입에서 소작농을 이야기하다니!
그간 덕배는 바보천치 같은 놈들이라고 소작농을 싸잡아서 비꼬았다. 등골이 각궁(角弓)으로 휘어지는 고생 끝에 5할이나 떼어주고, 세곡을 내고, 장리벼에 대한 이자를 내고 보면 빈껍데기만 남는 삶을 왜 사냐고 선동하고 다녔다. 근 일 년 동안 날품을 팔고 보니 더 없이 팔자가 편하다며 자기 합리화다. 다시는 소작농 같은 팔푼이 짓은 않겠다며 큰소리를 땅땅 쳤다. 적게 먹고 작은 똥 싸면 그만이란다. 그때마다 복녀는 그래서 남은 것이 뭐냐고, 요 모양 요 꼬락서니냐고 앙앙불락했다. 산 입에 거미줄로 회색곰처럼 발바닥만 핥을 거냐고, 얼라도 아니건만 손가락을 빨고 사냐고, 뭐라도 입 다심을 해야 싸도 싸지를 일이 아니냐고 돌아앉았다. 혼자 몸도 아닌 처를 거느린 마당에 무책임하고, 무능하며, 한심하다며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런 물건을 남편이라 만났을꼬 홀로 자책이다. 그런 덕배가 뒤늦게 남편으로서 철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는가 보다. 게다가 복녀가 홀로 꼽는데 미향이 어미를 비롯하여 동네 아낙들도 여럿 모인단다. 입이 근질거려 참새가 어째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있을까?
마지못한 듯 방문을 열여 고개를 내미는데 지게를 진 덕배가 엉거주춤 삽짝으로 바라코(기다리고) 섰다. 어느새 세숫대야 물로 손을 보았는지 섬돌 위로는 회색빛으로 낡아빠진 고무신이 마당을 향해 코를 내밀어 가지런한 데는 가슴이 뭉클하다. 신발까지 세심하게 챙겨서 기다리는 덕배의 마음 씀씀이가 새삼스럽다. 진정 저 물건이 악담에 주먹질로 내가 그동안 겪어오던 내 낭군이자 아이의 아버지가 맞나 싶다.
부스스한 머리채를 손가락빗으로 빗어가며 대충 올려붙여 마당으로 내려서자 무심한 동작으로 앞장을 서는 덕배의 등판이 널찍하다. 조용히 뒤를 따르는데 아무래도 뒤처지는 복녀의 발걸음이다. 한참을 거리가 멀어졌는가 싶은데 저만치서 기다리고 서 있는 덕배다. 재촉도 없이 조용히 섰다. 오히려 천천히 오라는 표정만 같다 여유가 넘친다. 그러기를 몇 차례나 반복으로 어정쩡한 내외 끝에 솟을대문을 들어섰건만 싸늘한 눈빛으로 맞는 모양새가 진즉에 예상한 그대로 객꾼에 불청객 취급이다.
살벌한 분위 속에 엉거주춤하게 덕배가 한자리를 차지하여 상 앞으로 앉는다. 반면에 손사래로 일 없다지만 복녀는 자격지심이 일어 기어이 밥을 푸고 수저를 헤아리는 등 상 차리기에 정신이 없다.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자리에 앉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산해진미가 눈앞으로 가득하다. 어디에 수저를 둬야 할지를 몰라 먼저 국물부터 한 숟갈 뜨는데 속이 메스껍다. 가슴속이 울렁거려 온통 욕지기로 들끓는다. 참을 수가 없다. 참으로 못된 자식 놈이다 싶다. 그 아비에 그 자식만 같다. 진수성찬을 눈앞에 두고도 주저해야만 하는 자신이 죽여 버리고 싶도록 밉다. 아니 덕배란 아이 아비 놈의 머리털이란 머리털을 죄다 뽑아 버리고 싶다. 기어이 자리를 박차 안채의 모퉁이를 돌아가는 복녀의 발걸음이 어지럽다.
모퉁이를 돌아가기가 무섭게 벽에 기대선 복녀가 고개를 들자 겨울로 가는 햇살이 따사롭다. 누군가 소리라도 지르면 바스러져 깨어질 것만 같은 가을하늘이 시리다. 그새 속이 가라앉았는지 숨 쉬가 한결 편안하다. 길게 숨 호흡인데 문득 인기척이 느껴진다. 재차 머리를 매만지고는 눈가를 훔치는데 수돌 아낙의 얼굴이 모티(‘모퉁이’의 방언) 너머로 빼꼼하다.
“이보게 자네는 거기서 뭘 하는가? 왜? 뭘 잘못 먹었어? 속이 안 좋아?”
“아니어요! 밥상 앞에서 방정맞게 소피가 마려서유!”
“난 또 뭐라고! 속이 안 좋더라도 억지로라도 몇 술 떠봐!”
“야~!” 두말없이 곱게 뒤를 따르는 복녀가 고개를 늘어뜨렸다. 그렇게 잠시 속을 다스려서 그런지 입 다심을 할 요량으로 수저를 드는 복녀다. 하지만 밥알을 세듯 몇 술 못 떠서 가만히 배를 쓰다듬는 복녀다. 남편 복 없는 년이 자식 복인들 어째 있을까 한탄으로
“아가야~ 너는 어째 욕심이 너 아비처럼 그런다니! 너만 배가 부르면 다라더냐! 이 좋은 밥상을 두고 이 어미도 다문 몇 술이라도! 좀 떠야 할 것이 아닌 가베!” 속으로 읊조리는데
“이것 봐~ 자네 뱃속으로 아기가 섰지!” 단도직입 묻는 꺽쇠 어미다. 깜짝 놀란 복녀가 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아~ 아니! 성~님 아니 야유! 왕청스럽게 아기는 무슨 아기야유!” 급하게 얼버무리는데 거짓말 끝이라 그런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자신도 모르게 상 너머에 앉은 덕배를 넘겨다 본다. 수저를 들고는 먹을 생각이 없는지 멍한 표정이다. 괜하게 수줍은 복녀가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아기 아비라서 찾는 걸까? 급하게 고개를 돌리는데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딱 보니까 맞구 먼 뭘 그래!” 꺽쇠 어미의 추궁에
“아니 아니라니깐유! 다들 왜 그러셔유!” 재차 부정을 강조로 얼굴을 찡그린 복녀가 정색인데
“아~ 알았어! 뭔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몸조심 하드라고! 절대 다른 생각은 말고, 임신은 초기인 지금이 절대 고비여!” 사태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드는가 싶은데 이번에는 미향이 어미가 양손을 거머쥐며
“그라~ 복녀야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 싶으면 어려워 말고, 그저 언니다. 편하게 여겨 언제든 찾아오고! 응~!” 다정하게 귓속말이다. 그 바람에 온통 들썩이는 점심상이다.
그즈음 한참을 먹기에 열중하던 덕배가 상 저쪽으로 앉은 복녀는 어떡하고 있는가 싶어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데 아낙네들의 쑥덕거리는 모양새가 심상찮다. 웬일인지 복녀 주위를 에워싸서 분주하다. 그 모습이 과거의 어떤 기억과 겹치는데 온몸으로 전율이 일어 섬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