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피는 길
여름이 길수록 능소화가 더욱 만발하고, 지구 환경 개선을 위한 인간의 의지와 노력도 굳세고 강해질 것
추분이 지났다. 무더위 덕분에 절기를 잊고 살았다.
올여름은 가까운 대학교 체육관에 수영하러 다니는 재미로 더위를 이겨냈다. 수영장 가는 길에 만발하던 능소화는 이제 겨우 몇 송이가 매달려서 흔적만 남겨 두고 있다.
능소화(凌霄花)는 이길 능(凌), 하늘 소(霄)자를 쓰는 하늘을 이기는 꽃이다. 갈잎 덩굴성 목본식물로서 한여름 7월부터 9월까지 꽃을 피워서 8월에 만개한다. 삼라만상이 무더위에 몸을 도사릴 때 제 혼자 덩굴을 뻗어 높은 나뭇가지 위에 꽃을 피운다. 동백처럼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져서 지조와 절개가 있다고 양반꽃이라고도 불린다.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에서 상민 용이는 서희 아씨의 처사를 따지러 갔다가, 양반 아씨의 기세에 눌려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나오면서 옛날 최참판댁의 담장 길을 생각한다.
‘치수 도령에게 까닭없이 매를 맞고 능소화(凌霄花)가 흐드러지게 핀 긴 담장 옆을 울면서 가던 어린 소년의 모습이. 능소화보다 짙은 놀이 하늘과 강물을 미친 듯이 불태우던. 마치 엊그제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삼십 년도 전의 일이다.’ p396. 토지 5권(마로니에북스).
여름이 시작되면서 나무줄기를 기어올라 하나둘씩 피기 시작하던 능소화가 8월 15일, 광복절을 지나면 온통 만발해서 주변의 나무를, 담장을 덮는다.
일제의 압박과 굴레를 벗어나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光復節)은 반상과 계급이 타파되어 조선 왕조 수백 년 억압받던 민중들이 압제에서 벗어나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는 날이다. 때맞추어 만발하는 능소화는 광복을 기뻐하며 자유와 민주를 오래도록 누리고저 하는 우리 민중의 욕구와 희망을 대변하는 꽃이다.
더위가 극심하고 여름이 길수록 하늘을 이기는 능소화가 더욱 만발하고, 지구 환경을 개선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도 그만큼 굳세고 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