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 대구 문화지킴이회 이종원 명예회장
(사)문화지킴이회를 조직하여 11년간 회장을 역임하면서 (사) 대구문화지킴이회로 발전시킨 이종원 회장
이종원 명예회장은 11년 전에 42명으로 대구문화재지킴이회를 조직하여 11년간 문화지킴이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500여 명의 거대한 사단법인 대구문화지킴이회로 발전시켰다. 지난 14일 이종원 명예 회장을 만나기 위하여 대구문화지킴이회 사무실을 찾았다.
명덕로터리 부근에 있는 대구문화지킴이회 사무실에 찾아 가니, 토요강좌 연수물을 작성하고 있던 이종원 명예 회장이 하던 일을 멈추고, 반갑게 맞아준다. “문화지킴이회 사무실이 넓고 좋습니다”라고 인사를 한 후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하니 사무실을 얻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 봉사활동을 시작한 계기를 들려주십시오.
▶42년간 교직에 근무하다가 2000년에 퇴직을 하였습니다. 그 무렵이 교육공무원 정년퇴직을 단축을 할 때였어요. 많은 교사들이 명예퇴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200여 명의 퇴직교원들에게 봉사를 주 목적으로 하는 퇴직교원 모임을 만들기 위하여 취지문을 보냈습니다. 동참을 희망하는 50여 명이 2000년 9월에 진우회(進友會)를 조직했습니다. 진우회를 조직하고 나니 근무할 사무실이 없었어요. 진우회 사무실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문애서림 김종년 사장이 명덕초등학교에 사무실을 얻어 주었습니다. 몇몇 친구들과 의논하여 사무실 집기들을 마련하였습니다. 김종년 사장님이 명덕초등학교에서 자기 서점인 문애서림 3층으로 사무실을 옮겨주었습니다. 지금은 문화지킴이회 사무실과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봉사를 목적으로 하는 진우회를 발족하고 벌써 19년이 흘렀네요. 진우회에서 ‘進友(진우)’란 회지를 7호까지 발간하였고, 매년 봄과 가을에 2회 문화답사를 다녀오면서 회원들 간에 친목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후배교사들의 상담과 연말에 이웃돕기성금기탁 등 나름대로 지금까지 잘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 회장님의 학창시절에 대하여 듣고 싶습니다.
▶저는 1938년 1월 16일에 안동시 일직면 평팔1리 399 번지에서 4남 3녀 중 여섯 번 째로 태어났습니다. 1946(10살)에 평촌초등에 입학을 하였어요. 4학년 어느 날 밤중에 마을 건너편에 있는 학교에서 종소리와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습니다. 토착 공비들이 우리 마을을 습격했었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 모두가 뒷산으로 피신을 하였다가 마을로 돌아오니 "윗마을 오 아무개가 맞아 죽었고, 학교 등사판도 빼앗겼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 형님이 학교 교사로 근무했기 때문에 토착 공비들의 표적이 될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6km 떨어진 원호동 외갓집으로 이사를 갔었어요. 그곳에서 일직초등학교를 다니다가 공비들이 잠잠해지자 다시 평촌초등학교를 돌아왔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안동사범병설 중학교를 졸업하고, 안동사범학교를 다녔습니다. 안동사범학교시절에는 학생들이 직접 뽑는 학도호국단운영위원장(학생회장)에 당선되었어요.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생 339명 중 대구시내 초등학교에 4명이 발령이 났습니다. 저도 거기에 포함되어 대구서부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 회장님의 교사시절 이야기도 들려주십시오.
▶대구시내 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중등으로 전직하여 초, 중, 고에서 42년간 근무했습니다. 교사시절에는 주로 대구시내 고등학교에 근무했어요. 고3담임을 하면서 제자들의 대학진학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1986년 12월 28일 KBS 뉴스라인(23시 30분)출연하여 원서마감을 앞둔 지역분위기 좌담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매일신문사에서 1991년 11월 22일 ‘대입원서마감 앞으로 사흘, 긴급좌담회’, 1993년 5월 31일 ‘표류하는 고교교육’ 좌담회, 1994년 1월 29 ’94대입문제점‘긴급좌담에도 참석하였습니다. 2000년 9월에 42년간 교직에 근무하다가 대구과학고(영재학교)에서 정년퇴직을 하였습니다.. 퇴직을 하면서 1,000만 원을 장학기금으로 내놓았습니다. 장학금에 대하여 가족들은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학교장은 “수표를 받아들고 진심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부끄럽다는 말씀까지 하신 기억이 새롭습니다. 내가 낸 장학금으로 후일에 "대구과학고에 ‘왕대장학회’가 조직되어 많은 기금이 모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 회장님이 대구문화 지킴이회를 직접 조직하여 거대한 사단법인 대구문화지킴이회로 성장시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구문화지킴이회를 조직하게 된 연유를 알고 싶습니다.
▶2008년 2월 숭례문이 무뢰한에 의해 잿더미가 되는 것을 보고 그 동안 문화유산 해설사를 하던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회원 42명으로 문화재를 보호하고 가꾸는 ‘문화재지킴이’회를 조직하여 회장 일을 11년간 맡았어요. 내 손길로 소중한 문화재를 돌볼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문화재를 보호하고 가꾸는 일을 하였습니다. 회원들이 문화재를 보호하는 일에 긍지와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100여 명의 회원을 모집하여 사단법인 대구문화재지킴이회로 등록하였습니다. 지금은 회원 500여 명으로 거대한 사단법인 대구문화지킴이회로 성장하였습니다. 기금도 5천만 원 정도 쌓여 있습니다.
- 문화재 지킴이회에서 하는 일들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문화재지킴이회 회원들을 10개 팀으로 조직하여 요일별로 사적지인 경상감영지와 달성토성에서 문화재 보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와 문화재 주변 정화활동, 모니터링, 화재감시 및 순찰, 홍보 및 교육 등을 하고 있습니다. 문화재를 바르게 알기 위해 국내외 심화학습도 해마다 10회 정도 하고 있어요. 대구문화지킴이회에서는 매년 30종류 이상의 교육 자료를 개발하고, 학교방문 및 문화재현장에서 문화재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역점을 두고 있는 토요강좌는 연 35회 실시하고 있어요. 동영상 강의를 곁들여 문화재, 역사 등 다양한 주제로 전문가들의 수준 높은 강의를 통해 회원들의 문화재 보호에 대한 지식과 교양을 쌓고 있습니다. 대구문화재지킴이회에서 2006년에 카페(문화재는 내 친구:http://cafe.daum.net/jinwooh)를 개설하였습니다. 카페 회원이 현재 571명으로 하루 평균 300여 명이 카페를 통해 문화재지킴이회의 소식과 각종 유익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대구 문화지킴이회에서 2017년 대구인터불고 호텔에서 1박2일 ‘문화재지킴이 전국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전국에서 532명이 참석하여 성대하게 치렀어요. 대구문화지킴이회는 2014년에 대통령표창(상금: 500만 원)을 받았고, 2018년 ‘대한민국자원봉사 대상 국무총리상까지 받았습니다.
- 회장님이 글을 많이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동안 회장님이 발간한 문집과 블로그에 대하여 듣고 싶습니다.
▶집안 모임을 만든 후 ‘가첩’인 ‘삼밭회지’를 발간하였고, 개인 문집으로 ‘그래도 못다 한 이야기’(2004), ‘오늘 같은 내일’(2011), ‘가교’(2013) 등을 출간하였습니다. 각종 회지도 만들었습니다. 안동사범 9회 동기회지인 ‘사도339’를 6호까지, 진우회 회지인 ‘진우’를 7호까지, 문화재지킴이회 회지인 ‘문화재는 내 친구’를 10호까지 발간하였어요. 모두 내 손을 통해 발간된 것들입니다. 대부분 직접 원고를 모아 교정, 편집, 윤문, 비용까지 마련해야 하는 등 애로가 많았지만 다행히 재직 중 양손으로 워드작업을 익혀 둔 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블로그 ‘날마다 일상탈출’(https://blog.naver.com/jooyun11)을 2008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내외여행을 하면서 기행문과 사진들을 중점적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국내여행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이고, 해외여행도 23회, 35개국을 다녀왔습니다. 올린 글들을 메일로, 카톡으로 퍼 나르고 있습니다. 많이 본 글은 조회 수가 2,000회가 넘어요. 많은 사람들이 “책으로 출간하라”고 권합니다. 2013년 자녀들이 베풀어 준 ‘결혼 50주년 및 희수(喜壽)축하연’ 때 ‘架橋(가교)’를 출간했고 “사정이 허락하면 미수(米壽) 때 다시 출간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회장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그 동안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무리 말씀을 해 주십시오.
▶교육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후회가 없지 않습니다. 만일 다시 교단에 선다면 제자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보살피고 싶습니다. 수많은 제자들이 전국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행동과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사회에 여러 분야에서 훌륭한 일들을 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교사를 했던 보람을 느껴요.
문화지킴이회가 사단법인 대구문화지킴이회로 발전하고 500여 명의 회원으로 크게 성장한 것은 우연히 아니고, 이종원 명예 회장님의 열정과 땀의 결실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여본다. 이종원 회장은 올해 2월에 회장직을 후임에게 맡기고, 명예회장으로 문화지킴이회의 발전을 위하여 계속 노력하고 있다. 사단법인 대구 문화지킴이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대구문화지킴이회 사무실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