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사르트르의 실존사상과 선택

현명한 선택이 개인의 본질을 바꾸고 개인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2019-07-01     김영조 기자
샤르트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이다. 그의 어머니는 노벨상 수상자인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와 사촌간으로 유명하다. 사르트르는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와의 계약결혼 및 노벨 문학상 수상 거부로 일화를 남긴 사람이다.

시몬

 

보부아르는 그의 저 ‘제2의 성’에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 프랑스의 소설가이며 여성운동가이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철학과 교수자격시험에 각각 수석 및 차석으로 합격하여 가까이 지내다 계약결혼을 시작하였다.

처음 2년간 계약결혼을 하기로 약속한 후 50년이 넘도록 그들의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들의 계약결혼 자체는 물론 계약의 내용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계약의 내용>

서로 사랑하고 관계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서로 허락한다.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한다.

 

사르트르는 1964년 ‘구토’로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수상자의 서양인 편중, 작가의 독립성 침해, 문학의 제도권 편입 및 차등화 등을 반대하며 수상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신의 라이벌인 카뮈(Albert Camus)가 1957년 ‘단두대에 관한 성찰’이라는 에세이로 최연소 노벨문학상을 먼저 받은데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카뮈

 

특히 사르트르는 우리나라와 관련하여 6.25 전쟁 당시 북한 측을 옹호하였다. 미국이 지원하는 남한이 북침했다는 김일성의 주장을 믿고 지지한 것이다. 그리고 1974년 사형선고를 받은 김지하의 시 ‘오적(五賊)’의 번역본을 받아 읽어보고는 곧바로 석방 호소문에 서명하기도 하였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하였다. 그는 “모든 사물은 본질이 실존에 앞서지만,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하였다.

의자를 예로 들면, 의자는 ‘앉기 위하여’ 만들어진 사물이다. 의자는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그 용도와 목적이 정해져 있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 의자는 이런 것이라는 보편적 개념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의자의 용도와 목적, 의자에 관한 보편적 개념이 의자의 본질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개개의 의자들은 그 모양이 어떠하든, 어떤 곳에 존재하든 이 본질에 일치하면 의자인 것이다.

반대로 작품 전시용 의자처럼 아무리 의자의 형태를 갖추고, 소파 앞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앉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면 그것은 의자가 아닌 것이다. 의자의 본질에 벗어난 단순한 의자 모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어떤 목적이나 이념이 정해진 바가 없다. 따라서 사물처럼 사람은 이렇게 되어 있어야 한다는 본질은 없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아무런 목적 없이 세상에 그냥 던져져 있는 하나의 존재일 뿐이다. 부자유스러운 상태로 태어난 것이다.

다만 사물과 달리 인간은 아무 이유 없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태어난 후의 끊임없는 선택에 직면하고, 그 선택에 따라 삶의 본질을 만들어간다.

세종대왕을 예로 들면, 세종대왕은 조선시대 3대 임금인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제4대 임금이 된 후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 등을 만들게 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항상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위하는 바른 정치에 힘을 써서 성군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세종대왕이 태어날 때 성군이 되라는 목적이나 이념을 안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본질이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태어나서 스스로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 성군이 되고 그것이 세종대왕의 본질이 된 것이다. 실존적 존재가 먼저 있고, 그 후 선택과 결정의 과정을 통하여 본질이 형성된 것이다.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이다”라고 하였다. 인생은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며, 선택은 중요하므로 각자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B

(Birth)

출생(삶)

C

(Choice)

인생-선택

D

(Death)

죽음

실존주의 사상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정형화(定型化)된 인간을 부정하고 개성과 고유성을 가진 개개인을 중시한다. 개개인으로서 인간은 태어나게 할 자유는 있으나 태어날 자유는 없다. 그러나 일단 태어난 이상 스스로 자유로운 의지를 가지고 선택을 할 수 있다. 개개인의 선택에 의하여 개인의 삶의 본질이 바뀔 수 있다.

선택이 자유의지에 의한다고 하지만 선택에는 책임과 부담이 따른다. 많은 선택 대안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있고,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또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슈워츠(Barry Schwartz)는 선택과 관련하여 사람을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언제나 절대적 최선만을 고집하는 극대추구자(maximizer)와 적당히 좋으면 만족하는 만족자(satisficer)이다.

극대추구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얻지 못하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이들은 하나의 결정을 내리기 전에 가능한 모든 대안을 모두 점검하며 선택의 폭을 극대화한다. 다른 선택대안이나 밟지 않은 길은 이들을 우울하게 한다.

경제학에서는 많은 대안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대안을 포기해야 하는데 이를 기회비용이라 한다. 따라서 대안의 수가 늘어날수록 포기하는 기회비용 역시 같이 증가한다. 이 때문에 선택에서 얻은 만족을 감소시킨다. 따라서 슈워츠는 선택이 주는 후회와 스트레스를 줄이고 선택의 참 효용을 높이기 위해서는 '만족자'로 사는 것이 행복을 찾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중요한 선택에만 관심을 집중하라, 웬만하면 만족하라, 일단 한 일은 후회하지 마라,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제약을 기쁘게 받아들이라”는 충고를 한다.

흔히 “백수(白手)가 과로사(過勞死)한다”는 말을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백수는 선택의 여지가 많고, 따라서 선택 과부하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직장인은 직장 일만 생각하면 된다. 백수는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 등산, 운동, 강좌 수강, 친구 모임, 장례식 문상, 결혼식 축하 등 선택 대상이 헤아릴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백수는 실제로 많은 것을 선택하고 참여하며, 따라서 활동 과부하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직장인은 어지간한 일은 바쁘다는 이유로 또는 근무라는 핑계를 대며 생략할 수가 있다. 그렇게 해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해가 되고 용납이 된다. 그러나 백수는 이해와 용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참여하고 활동해야 한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는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에서 두 갈래 길 중에서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하고 있다.

로버트

 

<가지 않은 길> (번역 : 피천득)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현재 내가 서 있는 위치는 과거에 내가 선택한 것의 결과이고, 현재 내가 선택하는 것은 미래의 나의 위치를 결정한다. 시시각각 직면하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용기를 가지고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이 개인의 본질을 바꾸고 개인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