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교두보
에디슨 발명품 통해 역사적 가치 전하고파
‘미래의 에디슨’ 꿈꾸고 탄생하길
경북 경주시 보문로에 가면 낯익은 ‘빅터 유성기(Victor Gramophone)’의 ‘세상을 떠난 주인을 그리워하는 강아지 문양’이 새겨진 ‘에디슨 소리역사관’을 만날 수 있다.
‘에디슨’에 빠져 평생 유성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발명품을 수집해 온 석완일 수집가.
에디슨은 1941년 84세로 별세할 당시, 유성기· 전화기를 비롯해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전기 등 1천3백여 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발명품을 남겼다. 그 발명품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유성기 기술은 미국에서 시작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달되었다.
◆ 에디슨에 빠져 수집가의 길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에디슨에 푹 빠져 에디슨의 발명품에 큰 관심을 가졌고, 그 관심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취미로 이어졌다. 이윽고 은행에 취직한 이후, 월급을 받으면 하나씩 발명품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고, 외국에서 생산된 유성기와 같은 고급 기기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석완일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선진 문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 선진 문물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길 바라며”, 이 기기들을 하나하나 모았다. 그렇게 유성기며 유성기음반을 수집했다.
◆ ‘음악이 머무는 상자’ 유성기(留聲機)
‘음악이 머무는 기계’라는 유성기(留聲機)가 조선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질 때는 1899년 3월이다. 일제 강점기 때 기록에는 축음기(蓄音機)라는 말이 많이 나타난다. 미국에서 시작된 유성기는 일제 강점기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해방 후에야 본격적으로 대중적이며 상업적인 유행을 이끌었다. 당시 일본이 제작한 유성기음반이 먼저 유입되었고, 남인수· 백년설· 백설희와 같은 유명 가수들의 음반이 1940년대 처음으로 녹음되었다. 손으로 핸들을 돌려 태엽을 감고 쇠바늘을 꽂아서 소리를 듣던 유성기. 석완일 수집가의 꿈 공장에서는 여전히 1910년대 귀한 음반도 들을 수 있다.
“폐교를 구입해 자료를 보관하면서, 여기에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유성기음반은 LP판과는 달리 돌판이라 쉽게 부서진다. 처음 원통형 음반부터 그다음 등장한 원형 음반까지 ‘에디슨 소리역사관’에서는 음반의 변천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고 하는 석완일 수집가.
여기에서는 유성기뿐 아니라 맨 처음 등장한 벽걸이형 전화기부터 다이얼형 전화기까지, 에디슨이 최초로 발명한 활동 사진기와 카메라의 변천사도 만날 수 있다.
“나팔형 유성기는 미국에서 구입해서 가져왔다. 미국을 오가며 눈에 뜨이는 데로 수집한 것이 이만큼 많은 자료로 쌓였다”고 덧붙인다.
그가 손으로 감아 들려준 유성기에서 애잔한 선율이 흘러나온다. 가만히 멜로디를 따라 부르는 그의 얼굴에 살며시 봄기운이 퍼져 나온다.
◆ 과거와 현재 거쳐 미래를 잇는 다리
석완일 수집가는 역사적 의미가 담긴 유성기음반의 가치를 알아보고 소중하게 간직해 왔다. 그는 그가 에디슨의 발명품을 통해 꿈꾼 것처럼, 그가 모은 이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미래의 에디슨’이 탄생하기를 꿈꾼다. 청소년들이 와서 전시된 자료를 보며 영감을 얻고 새로운 창작품을 만들 수 있기를, 노년층은 잠시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에 잠겨 새로이 희망의 싹을 틔우기를 꿈꾼다.
그가 수집한 수많은 발명품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역사적 기록물이자, 에디슨이 인류에 남긴 혁신적 유산을 보존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에디슨 소리역사관’에 전시된 자료를 통해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미래를 여는 후세들이 에디슨의 발명품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거쳐 미래를 잇는 교두보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에디슨 소리역사관’은 에디슨이 인류에게 남긴 발명품을 통해 기술의 발전과 그 역사적 가치를 되새기려는 석완일 수집가의 열정과 노력이 녹아있는 ‘꿈의 공장’이다.
에디슨 소리역사관은 경북 경주시 보문로 529에 있다.
문의는 010-3503-1881로 하면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푸른신문 와이드인(www.prsinmun.co.kr)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