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니어들이 쉽게 걷는 길: 올레리-고레빠니-푼힐전망대-따다빠니-간드룩
히말라야의 설산들, 다울라기리(8,167m), 안나푸르나 남봉(7,219m), 마차푸차레(6,997m)의 일출에 근접해서 보려면 고레빠니(2,860m) 마을의 산장(Lodge)에서 숙박한 후 새벽에 푼힐전망대(3,210m)에 올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일행은 8시에 포카라를 출발하여 4시간 동안 지프(Jeep)를 타고 올레리(1,960m)까지 간 다음, 5시간 동안 푼힐전망대가 있는 고레빠니 마을까지 도보여행(Trekking)해야 했다.
지프(Jeep)를 타고 가는 도로는 울퉁불퉁 잠시도 반반한 곳이 없어 차량의 요동이 심했다. 앞차가 일으킨 흙먼지 속에서도 멀리 보이는 푸른 하늘과 히말라야의 설산들이 오히려 신기했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세계 최초로 8,000m급 16좌를 완등하는 데 도움을 준 네팔인들의 자녀를 위해 세웠다는 ‘쓰리 비레탄티 세컨더리 휴먼 스쿨(Shree Biretanti Secondary Human School)도 가보았다. 휴업 중에도 학교 운동장에서 놀던 학생 두 명이 우리 일행을 무척 반가워했다.
올레리까지 가면서 지프는 계곡물을 건너기도 했고, 도중에 가게가 나타나면 차를 세우고 네팔 전통차인 깔로찌아(Black Tea)와 두드찌아(Milk Tea)를 마시며 잠시 쉬기도 했다. 길에서 만난 목동들은 바삐 염소 떼를 길가로 비켜 차가 지나가기 쉽게 해주었다.
점심은 산장 식당(Fishtail View Point Restaurant)에서 네팔 전통 정식인 달밭(녹두죽)을 먹었다. 매우 짜게 느꼈지만, 장거리 걷기를 생각해서 많이 먹었고, 수프처럼 보이는 것은 그릇을 다 비웠더니 이틀간 배탈이 좀 났었다.
올레리(1,960m)부터는 5시간 동안 도보여행(Trekking)을 했다. 맑은 날씨, 잘 닦아놓은 산길, 그리고 운반인(porter)들 덕분에 걷기는 무난한 편이었다.
산행하면서 산악자전거나 말을 타고 가는 사람들도 드물게 만났다. 마부가 딸린 말은 지정된 산장에서 요청할 수 있는데, 2시간 남짓에 5,000루피(Rs, 약 50,000원)를 요구한다고 했다.
오후 5시 30분 그럭저럭 고레빠니(2,860m) 마을에 도착했다. 난방은 되지 않지만, 방에서 설산이 보이는 전망 좋은 산장(Super View Lodge)에 짐을 풀었다. 히말라야가 험산임을 감안하면 오늘 낮 도보여행은 무난했었다고 안도하는 순간, 어둠과 추위가 갑작스레 닥쳐와 일행 중 두 명이 감기 몸살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온 등산객들은 일행끼리 산장 식당의 난로 주변에 둘러앉아 갑작스러운 추위에 대비하며, 식사나 술을 가볍게 마셨다. 저녁 식사로 주문한 소고기(Special Steak)는 너무 짜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지만, 이를 안주로 마신 현지 맥주(Tuborg)는 꿀맛이었다.
10월 23일, 아직 가을인데도 산장(2,860m)의 밤은 깊어갈수록 맹추위의 위력을 발휘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추운 날이었다. 겨울 내의와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가져간 침낭 속에 핫팩을 넣어 체온을 유지했다. 따뜻한 물병을 이용한 사람도 있었다.
이튿날, 8,000m급 안나푸르나 산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푼힐전망대(3,210m)에 올라 일출을 관찰하려면 새벽부터 일찍 서둘러야 했다.
감기가 심한 한 명을 산장에 남겨둔 채, 일행은 새벽 4시 30분 푼힐전망대를 향해 출발했다. 장갑, 빵모자, 패딩 차림으로 걷는 동안 어젯밤에 비해 큰 추위는 느끼지 않았지만, 전날 점심때 먹은 달밭(녹두죽) 때문에 속은 아직 편치 않았다. 세계 각지에서 온 2백여 명의 도보 여행가(Trekker)들이 좁은 산길을 따라 헤드라이트를 켜고 줄을 지어 걸었다. 추위를 뚫고 캄캄한 길로 그믐달과 쏟아지는 별빛을 보며 1시간 10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어둠 속에서 히말라야의 꽃 안나푸르나 산군이 차츰 밝아지는 모습은 흔하지 않은 장관이었다.
히말라야의 꽃들은 왼쪽부터 구르자피크(7,193m), 다울라기리(8,177m), 뚝제피크(6,920m), 닐기리(7,061m), 안나푸르나 남봉(7,219m), 히운출리(6,441m), 마차푸차레(6,997m)의 순으로 줄지어 늘어선 채 산악인들의 시선을 오랫동안 사로잡았다. 히말라야가 시시각각 눈앞에 펼치는 장엄한 연출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10월 24일 6시 15분, 해가 뜨면서 다울라기리(Dhaulagiri, 8,177m)가 맨 먼저 꼭대기부터 황금빛을 발산하며 시선을 사로잡더니, 히말라야의 꽃 안나푸르나 산군도 곧 화려한 자태를 뿜어낸다.
형형색색의 겨울 등산복을 걸치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2백여 명의 도보 여행가(Trekker)들은 일출 광경을 경쟁하듯 사진기에 담았다.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히말라야의 새로운 세계가 고요한 아침을 맞고 있었다.
푼힐전망대에서 고레빠니의 산장으로 다시 내려오는 동안, 새벽어둠에 볼 수 없었던 설산(雪山) 다울라기리와 안나푸르나 산군의 웅장한 모습을 지속해서 볼 수 있었다. 길가에는 해발 2,200m부터 3,400m 사이에서 주로 서식한다는 네팔의 국화 랄리구라스(Laliguras)가 군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오전 10시, 겨울옷은 화물 백(Cargo Bag)에 벗어 넣고 가벼운 가을 등산복 차림으로 고레빠니의 산장을 떠나 따다빠니(Tadapani)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겼다.
맑은 아침, 따다빠니를 향해 가는 길은 히말라야의 설산들을 계속 보면서 걸을 수 있는 환상적인 길이었다. 안나푸르나 산군의 찬란하고 웅장한 모습이 계속 이어졌다. 4시간의 도보 여행 중에 따발라(Thabala, 3,165m)의 산장에서 잠시 차를 마시며 바라본 설산(雪山)들은 이른 아침에 볼 때 보다 더욱 환하고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따다빠니에서 숙박하기로 했던 당초 계획을 수정하였다. 두 시간 일찍 번딴티(Benthanti)에서 머무르기로 하고, 중간 지점의 듀랄리(Deurali)에서 기념품도 사며 점심 식사로 컵라면, 밥, 만두를 맛있게 먹었다.
따뜻한 깔로찌아(Black Tea) 전통차를 마신 후, 옷차림을 더욱더 가볍게 바꾸고 오후 2시에 번딴티를 향해 출발했다. 길가에는 우리나라 산길처럼 돌탑을 쌓아놓기도 했고, 소들이 길을 막고 드러누워 있기도 했다.
고레빠니를 출발한 지 4시간 만인 4시 40분경 번딴티의 산장(Tranquility Guest House)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이곳은 아담하고 꽃이 많이 핀 깨끗한 집이었지만 해가 지면서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가벼운 패딩 차림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밤이 되자 일행은 나무 불을 땐 페치카(pyechka)를 둘러싸고 몇 시간 동안 3명의 운반인(porter)들 및 산장 직원들과 함께 노래와 춤을 추며 즐겁게 지냈다. 처음에 몹시 수줍어하던 산장 조리사 Mogar씨(20세) 부부가 레삼 피리리(Resham firiri) 등 네팔 전통 가요를 부르며 흥을 한껏 돋움으로써 흥겨움은 절정에 이르렀다.
밤에 침낭 속에서 잘 때는 한겨울 복장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이튿날 맑은 아침 8시, 따다빠니와 간드룩을 거쳐 포카라로 가기 위해 번딴티의 산장을 떠났다. 그늘진 숲속 좁은 길은 온통 말과 당나귀 똥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1시간 만에 따다빠니(2,630m)의 산장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했다.
라면과 깔로찌아(Black Tea)를 마시며 푸른 하늘 아래 선명하게 우뚝 서 있는 안나푸르나 Ⅲ봉, 히운출리(6,441m)와 마차푸차레(6,997m)를 여기서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들 거대한 설산의 얼굴들은 바라보는 시각과 위치에 따라 여러 얼굴로 다가왔다.
따다빠니를 출발, 걸어서 간드룩(Ghandruk, 1,940m)으로 가는 길에 인천시 부평에서 온 노인(75세) 부부를 만났다. 그는 “아내와 함께 안나푸르나 남봉(7,219m) 아래 4,200m가 넘는 곳까지 고산병약을 미리 먹고 갔지만 고통스러워 죽는 줄 알았다”라고 했다.
산길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에게 ‘너머스떼’라고 인사하며 4시간 만에 간드룩 주차장에 도착했다. 간드룩은 꽤 큰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여러 곳에서 새로운 산장을 동시에 신축하느라 분주했다.
간드룩에서 포카라(820m)까지 이동할 때는 4륜 지프(Jeep)를 이용했다. 두 시간은 비포장, 나머지 두 시간은 움푹 팬 곳이 많은 포장도로를 달렸다. 앞서가는 차와 마주 오는 차에서 솟구치는 먼지와 지프의 심한 요동, 그리고 창문을 열 수 없는 지프 내 더위 등으로 4시간은 무척 견디기 힘들었다.
산장서 한겨울 복장으로 이틀 밤을 보내고 다시 만난 포카라의 숙소(Hotel Moonlight)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